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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Feb 05. 2023

퇴사하면 뭐가 될까


퇴사를 하기 전 가족들에게 내 뜻을 비쳤다.

그러자 엄마는 나의 퇴사를 반대했다. 왜 멀쩡한 회사를 관두려 하냐며 조금만 참으라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나 만병통치약인 듯 나오는 '시간'을 말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하지만 난 알았다. 결정하지 않으면 시간이 오히려 나를 병들게 할 거란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왜 퇴사하려는지 사정 이야기를 대략 했다. 그래도 참으다. 나는 서운한 마음에 소리쳤다.


엄마, 내가 미칠 것 같다니까!


엄마는 나를 위해서라며 이렇게 말했다.


니, 그러다 폐인 된다.



엔 일리가 있었다. 혼자 살고, 회사도 안 다니면 폐인되기 십상이란 말.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다. 밥도 제때 챙겨 먹지 않고, 청소도 자주 하지 않는다. 친구가 그리 많지도 않다. 잘못하면 뉴스에 나오는 고독사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얼마 뒤 내 뜻대로 퇴사를 했다.

한 달 동안은 푹 쉬었다. 여행 다니고, 책 읽고, 영화를 봤다. 사람도 간간이 만났다. 마음을 다쳐서 퇴사를 하는 거라 내 마음에 수액을 놔주어야 했다. 회사 다닐 때 생활습관이 있어서 새벽 늦게 잠을 자도 아침 출근 시간이면 눈이 떠졌다. 그게 너무 피곤해서 일어나 다시 잠들 때가 많았다.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나는 불면증이 심한 편이다.


두 달째인 1월부터는 보통 새벽 3~4시경에 잠들고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일어났다. 정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루틴을 만들려고 애썼지만 루틴을 만들면 다음날 수면부족으로 더 힘들어졌다.


'퇴사한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지!'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하루를 길게 보내기 위해서 무조건 아침 7시, 늦어도 8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고질적인 불면증이 있는 내겐 쉽지 않았다. 아침 7시나 8시에 일어나려면 3시간밖에 잠들지 못할 가 많았다. 며칠 도전 끝에 바꿨다. 좋은 컨디션 속에 알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 오히려 루틴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오전 중에만 일어나면 되고, 어나면 한 시간(아침 준비 시간이 길어지면 1시간30분) 내로 집을 나기로. 낮동안 걸어야 우울하지 않다. 그리고 매달 목표 정하기로 했다.


한 달 동안 꾸준히 해나갈 목표 하나.

1월엔 월말까지 매일 글 한 편을 쓰기로 했다. 글은 어떤 글이든 좋다. 사실 처음에 목표를 정할 땐 초고라도 완성 하는 걸 목표로 했지만, 쉽지 않아서 중간에 바꿨다. 성과까지 목표로 잡으면 중간에 포기하기가 쉬운 것 같다. 여의치 않으면 단 몇 줄이라도 쓰고 잠드는 걸로 바꿨다.


1월에 가장 늦게 일어난 시각은 오전 11시. 보통은 9시면 일어났다. 11시에 일어난 날은 유독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 6시에 잠들었다. 그리 늦게 일어난 날도 게으른 나를, 혹은 나의 불면증을 책망할 필요가 없었다. 불면증인데 어쩌겠는가. 엄마도 불면증이다. 난 이리 태어난 사람이다. 글 몇 줄만 쓰면 내가 정한 1월 목표는 달성하니 괜찮았다. 오히려 늦잠 잔 날엔 일어나자마자 바로 목표달성부터 했다. 글부터 썼다는 의미. 여행 다녀와 피곤한 날도 목표 달성이 가능했다. 어차피 늦게 잠드는 사람이라 자정이 지나도 오늘 목표를 다 못채웠다고 초조해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안다, 나의 새벽이 얼마나 긴지를. 느슨한 목표였지만 목표 하나만을 한 달 동안 꾸준히 했더니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2월에도 큰 목표 하나와 작은 목표 하나를 정해두었다. 이름하여 (원)대한 목표와 소소 목표다. (원)대한 목표는 여기에선 말하기 곤란한 목표이고, 소소 목표는 일어 회화다. 일본 여행 갈 때 간단한 일어 정도는 해보고 싶다. 누구나 한 달 꾸준히 연습 하면 여행 갈 때 몇 문장 정도는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소소 목표는 쉽게 달성할 수 있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는 목표다. 이달에 큰 목표와 작은 목표가 있는 이유는 내 생각에 이달 큰 목표는 지난달보다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패했을 때 2월이 허망하게 끝났다고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작은 목표도 함께 정했다. 지난해 심리상담을 받은 후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나를 치어업 시켜주려고 애쓰는 편이다.


이제 취업은 자신이 없어졌다. 두 곳에서 제안이 들어왔지만 아직 내가 완전히 회복한 것 같지 않아서 거절했다. 대신에 앞으로 무엇을 하고 생활을 이어나갈이달엔 체적인 준비를 하기로 했다. 사를 반대했던 엄마조차도 막상 그만두자 당분간 푹 쉬라며 격려해주었다.


내 집은 되도록 지저분해지기 전에 치우고 있다. 책상만큼은 예쁘고 깨끗하다. 거기가 내 작업실이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한 끼 정도는 간단한 요리를 한다. 오늘은 유튜브에서 본 건강 다이어트식 '마녀스프'를 해봤다. 맛도 괜찮았다. 친구들과 가끔 만나고 있고, 2주 전에 만났는데 또 만나자는 친구에겐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싫어하는 친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을 자주 만나면 마음이 흐트러져 내게 좋지 않아서다. 혼자서 책 읽고, 영화 보고, 여행을 다니는 지금이 좋다.


가끔 영화 <리틀포레스트>가 떠오르곤 한다. 김태리는 도시에서 받은 상처를 시골 집에 내려가 회복했다. 느린 요리를 해가면서. 는 반대다. 내 고향은 지방 소도시다. 하지만 난 시골에 내려가지 않을 생각이다. 서울에는 1000만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만큼 풍부한 세계가 넘쳐난다. 아직 못 가본 세계를 구경하는 일이 내가 회복하는 방식이다. 지방 여행도 즐긴다. 지방 여행을 하기 제일 도시는 단연 교통 좋은 서울이다. 나의 리틀포레스트는 서울이다.


며칠 전에 들었는데 운세기준으로 보면 새해는 입춘부터 시작이란다. 올해 2월 4일 오전11시 43분부터. 올해가 아직 지나지 않았다. 1월엔 조금 우왕좌왕했지만, 2월 4일부터 시작 된 올해 나는 내 루틴에 맞게 잘 지낼 것 같다. 가끔 내 지인들이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그럴 때 난 그들에게 답장 대신 아름다운 풍경 사진 한 장 보낼 생각이다. 지금 머무는 곳이라고, 내 마음이 이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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