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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Feb 28. 2023

합리적인 사고를 위한 체크리스트

롤프 도벨리 <스마트한 생각들> 서평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52가지 심리법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얼핏 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을 알려줄 것 같지만, 사실 저자가 알려주는 특별한 기술은 없다. 다만 저자는 우리가 평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쉽게 빠질 수 있는 52가지 생각의 오류를 지적하며 어떻게 하면 더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부제 그대로 52가지 오류/편향에 대해 간략한 사례를 곁들여 한 주제 당 3-4페이지 이내로 설명을 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글이 깔끔하고 호흡이 짧다 보니 짬시간에 읽기가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할 때 잠깐, 잠들기 전 잠깐, 시간 날 때마다 몇 챕터씩 부담 없이 읽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공감되었던 주제는 '상호 관계 유지의 오류'와 '확증편향'이었다.


사회심리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버트 치알디니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전략을 연구한 끝에 ‘상호성의 법칙(Law of reciprocality)’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면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상호성의 법칙이 누군가에겐 강박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상호성의 법칙을 잘 이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대표적인 것이 카톡으로 매년 오고 가는 생일 선물. 평소에 연락 한번 잘 안 하는 사이면서 카톡으로 주고받는 선물이 의미 없고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바쁜 일상에서 생일을 핑계 삼아 - 내가 무언가를 받았으니 또 갚아야 한다는 상호성의 법칙을 핑계 삼아 - 안부를 주고받으며 호의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좋다.


다만, 책에서도 설명하고 있듯이 나와 잘 맞지 않거나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친구/지인임에도 빚지는 마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의미 없는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소모적인 일인가를 많이 느낀다. 마음 잘 맞는 사람, 내게 더 소중한 사람을 챙기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니까.


또, 배달의 민족 등을 이용할 때 리뷰이벤트에 참여해서 빵이라도 한 조각 더 받게 되면 솔직한 리뷰를 쓸 수 없게 되는 것도 이 상호성의 법칙 때문인 것 같다고 느꼈다. 리뷰는 솔직하게 쓰는 것이 맞는데, 솔직한 리뷰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참 어렵다. 그래서 수많은 비정부기구들이나 종교단체에서 이 '상호성의 법칙'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호의를 가장한 부드러운 압박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주문을 하고, 기부를 하고, 교회에 가게 만든다는 것. 합리적인 사고와 선택을 방해하는 요소라는 것을 알면서도 참 피하기 어려운 오류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새로운 정보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이론이나 세계관, 그리고 확신하고 있는 정보들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다. 이것은 모든 생각의 오류들의 아버지다.


저자가 유일하게 1편과 2편으로 나누어 길게 설명하고 있는 주제가 바로 '확증 편향'이다. 나 역시 가장 쉽게 그리고 자주 빠지는 오류라서 이 챕터를 인상 깊게 읽었다. 특히 저자가 서두에서 든 예시가 매우 공감이 됐는데, 확증편향에 잘 빠지는 사람들은 전 날과 비교하여 몸무게가 줄었으면 살이 빠졌다고 기록하고, 늘었으면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변화 없음으로 기록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것이 확증편향이고,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이 쉽게 잘 빠진단다. 정말 내 행동을 놀랍도록 잘 설명하는 이론 같아서 - 예시도 나를 보고 쓴 것 같다고 느낄 정도 - 책을 읽으며 계속 뜨끔했다.

친한 친구 하나는 자기 검열이 (내 기준에서) 지나친 편인데, 이 친구는 정확히 나와 성향이 반대다. 그 친구는 아마 확증편향에 잘 빠지지 않으려나..?


확증 편향에 빠지면 기존의 지식이나 믿음과 모순되는 새로운 정보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걸러내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지고, 남의 말은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못된 버릇이 생겨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리고 나의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내가 원하는 정보들만 검색하고, 편집해서 기억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다. 합리적인 사고뿐 아니라 나의 인간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신경 써야 할 오류라는 생각이 든다. 책갈피 해두고 가끔 꼭 다시 읽어봐야지 :)


“도벨리 씨, 당신은 생각의 오류 없이 살아가는 일을 어떻게 해냅니까?” 대답인즉, 나도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나는 그렇게 하려고 시도한 적이 전혀 없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저자가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피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런 것들 하나하나 다 신경 쓰면서 어떻게 살아? 저자의 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 책이야말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확증편향'과 '권위자편향'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본인은 주장하는 바의 예외적 사실들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면서, 이 책의 52가지 심리법칙들의 반증은 애써 무시하며 오로지 이것들이 절대적 사실인양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예컨대 정말 단체활동에서는 항상 사회적 태만이 일어날까? 단체 줄다리기에서 서로의 응원을 들으며 엄청난 괴력이 발휘되는 경우는 왜 무시하는가? 여기서 주장하는 많은 이론과 오류들이 허점 투성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에필로그에 쓰인 저자의 말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그래, 저자도 아주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규칙을 정했다. (중요한 개인적 결정이나 사업상의 결정처럼)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질 수 있는 상황에서는 가능하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해 결정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내가 수집한 생각의 오류 목록을 꺼내서, 마치 파일럿이 체크리스트를 보듯이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 나간다. ...(중략)...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별로 크지 않은 상황일 때는 (예를 들어 BMW를 살지, 폭스바겐을 살지 결정하는 경우) 최적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직관이 작동하도록 내버려 둔다. 머리로 분명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피해 가능성이 적다면 그런 일에 머리를 싸매지 말고 오류가 생기더라도 그냥 두어라. 당신은 그렇게 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자연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안전하게 우리의 인생을 헤쳐 나가는 한, 그리고 중요한 결정일 때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한,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이 완벽한지 그렇지 않은지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글을 읽는 내내 저자가 싫었는데(?), 에필로그를 보고 나니 다시 좋아졌다. 허허. 에필로그 마지막 문단인 이 글이 좋아서다. 그래, 세상살이가 이렇게 바삐 돌아가는데, 중요한 일들만 신경 쓰면 되지. 이 분야 전문가(?)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해주니 조금 더 안심이 된달까? 어쩔 수 없이 또 '권위자 편향'에 빠지게 됐지만, 저자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별로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이 아닌 것 같으니, 오류에 빠진 채 그냥 두기로 한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대할 땐 좀 더 편하게 대하되, (그리고 그 시간을 인생을 즐기는데 쓰되)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두었을 때는 내가 오류에 빠져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겠다.  


2023년 2월 25일, 두 번째 낭독회♥
[발제문] by KMS

1. 책에서 이야기하는 생각의 오류'를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2. 나의 본업을 잘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개념이 있는가?

3. 책에 쓰인 인지적 오류들을 고려할 때 인간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또한 이 오류를 인지한 상태에서 오류에 순응하는 것과 피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4.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럼 기업 또는 공동체 내에서 사람들은 인센티브 이외에 동기부여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5. '스마트한 생각들'에서 다룬 개념을 기반으로 할 때, 스마트한 생각들이라는 책은 스마트하다고 생각하는가?

6. 이 책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스마트하지 않은 것인가?
이 책에서 정의하는 스마트함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스마트함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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