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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Jul 25. 2024

사라진 새들은 돌아왔을까.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서평


사망자 1,740명, 부상자 5,902명


도합 7,642명. 이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신고된 사람들의 숫자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에 의해 의문스러운 폐질환이 처음 인지된 것은 2006년, 그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였음이 비로소 밝혀진 것은 2011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17년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폐질환과 섬유화증상으로 사망했다. 국가기구인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신고되지 않은 사례를 모두 포함할 경우, 1994년부터 2011년 사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는 20,366명, 건강피해자는 950,000명, 노출자는 8,940,000명에 이를 으로 추산하였다. 1-2차 조사에서 인정된 폐 손상 피해자(221명)의 57%(125명)가 5세 미만의 영유아, 16%(35명)는 임산부였다.


“기이한 질환, 2006년 시작된 공포… 공기 중 떠다니는 그 무엇이 문제였다” - 경향신문 (khan.co.kr)

[단독] "가습기살균제로 건강피해 95만, 사망 2만 명 추산" - 경향신문 (khan.co.kr)

[단독] 역대 2위 화학물질 참사…99%가 구제 제외 (imbc.com)

가습기 살균제 폐 손상 피해자의 살균제 노출 특성 -태아와 임산부 노출을 중심으로 - (kci.go.kr)

‘가습기 살균제 참사’ 막을 수 있었던 7번의 기회 - 경향신문 (khan.co.kr)


살충제 관련 코너에 커다란 해골과 엇갈린 뼈다귀 표시가 그려져 있다면 소비자는 적어도 이곳이 독극물과 관련한 물건을 다룬다는 사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살충제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모습으로 소비자를 찾아온다.


레이첼 카슨이 살아있었다면, 아마 <침묵의 봄> 개정판에 이 화학적 참사를 가장 먼저 싣지 않았을까. 그녀가 그토록 열렬히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균을 죽이는 독을 호흡기로 직접 들이마시다니. '사후적으로' 보면 정말 위험한 일 같지만,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가습기 살균제는 유해물질 표시가 없는, 대기업에서 판매하는, KC인증마크가 붙은, 슈퍼에서 언제든 편하게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아픈 가족이 더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사랑하는 아이가 조금 더 깨끗한 공기를 삼키기를 바라면서, 부푼 배로 인해 숨쉬기 어려운 아내가 더 편하게 호흡하기를 바라면서 구매한 물건이 살인병기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다.


기업은 흡입독성 평가도 거치지 않은 화학물질을 안전한 제품이라 홍보하였고, 유해물질을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는 손을 놓아버렸다. 가습기살균제의 주요 물질인 PHMG의 흡입독성을 경고하는 연구자도 있었으나 무시당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소아폐렴 30건이 학계에 보고되었으나 정부는 역학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그 사이 가습기살균제는 계속해서 팔려나갔다. 또 다른 주요 물질인 CMIT·MIT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 이전에 출시됐다는 이유로 유해성 심사를 20년 동안 면제받았으며, 피해가 드러난 뒤에야 2012년에 유독물질로 지정되었다. 살균제에는 아주 작은 글씨의 경고도 없었다. 그녀의 책이 나온 지 무려 50년이 넘었음에도,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그녀가 지겹도록 언급한 수많은 예시들과 참 놀랍도록 닮아있다.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우리 환경에 등장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먼저 좀 더 편하고 손쉬운 생활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둘째 화학물질의 제조와 판매를 경제와 산업의 한 부분으로 편입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친구의 어머니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해 심한 천식질환을 얻으셨다. 항암치료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진 어머니를 위해 친구는 매일 가습기를 청소하고, 깨끗한 물을 받아 살균제를 넣었다. 어머니의 암은 완치되었으나 천식으로 인해 컨디션이 계속 더 나빠지셨다. 아주 나중에야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친구는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했던 자기 자신을 원망하며 괴로워했다. 좀 더 편리하게 모든 세균을 죽이고 보다 깨끗한 수증기를 마시고자 했던 욕심이, 돈에만 눈이 먼 무책임한 기업들을 만나 인간의 폐를 딱딱하게 섬유화 시켰다.


가습기 살균제가 아닌, 내가 일상적으로 쓰는 다른 상품이 참사의 주인공이었을 수도 있고, 우리 가족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고 얄팍해서 아무리 떠들고 겁주어도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기 전에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렵다. 미세먼지와 각종 바이러스, 온갖 유해 화학물질에 매일 노출되면서도 오싹한 두려움은 잠시 뿐. 돌아서면 다시 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며 게으름을 피우고, 작은 벌레 한 마리에도 기겁하며 다음 소독 방제 작업일을 찾아본다. 당장의 비용과 편리함만을 생각하는 근시안적 태도가 나 자신과 이 계를 모두 망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19세기말까지 산업적 발암물질 6∼7종이 알려졌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했고, 일반 대중도 이런 물질과 쉽게 접촉하게 되었다. 포트 경의 연구 이후 2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의 주변 환경은 놀라울 만큼 변화했다. 비단 노동자들만 이런 화학물질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다. 화학물질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스며들고 있다.


이 책이 유독 나에게 와닿았던 점은 저자가 '자연'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을 위해서 행동해야 함을 강조한다는 점이었다. 나처럼 이기적이고, 편한 것만 찾는 인간들에게는 아름다운 나무와 새, 물고기의 이야기보다는 '너 잘못하면 백혈병 걸려서 개고생 하다가 죽을 수도 있어'라는 현실적인 경고가 훨씬 더 와닿는다. 책을 읽으며 내내 두려움에 떨고, 경각심을 가지고, 살충제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플라스틱과 유해물질, 호르몬제, 보톡스나 필러, 체중조절을 위한 영양제 등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는 부작용이 없을지라도 그것들이 계속 쌓여 어떤 위험을 초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 몇십 년 간 인간은 놀라운 과학발전을 이룩했지만, 그 기간이 짧았던 만큼 아직 충분한 임상과 검토를 거치지 못한 채 세상에 나온 것들이 너무도 많다.


점심식사용 샐러드에 들어 있는 양상추의 경우 7ppm의 DDT 정도는 ‘안전’하다고 여겨지지만, 점심에는 다른 음식들도 포함되어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런 음식은 우리가 경험하는 화학물질 노출에서 오직 일부분, 그것도 아주 적은 양에 지나지 않는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식품 속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양을 각기 더해서 그 전체량을 측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특정 식품의 ‘화학 잔류물 안전 기준’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 이 책은 '발암물질'이나 '유해물질'에 관한 나의 편협하고 순진한 인식을 바꿔주었다. '발암물질'이라는 단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듣다 보니 그 단어 자체에 무뎌진 것은 아닌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전까지 나는 유해물질은 어차피 피할 수 없고, 허용량 기준치 이하 거나 소량이면 전혀 상관없을 것이라 여겼었다. 아주 소량이어도 다른 화학물질들과 결합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소량이 쌓이면 결국 대량이 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먹이사슬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체내에 쌓이는 유해물질의 양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과 아주 소량의 살충제만 살포해도 그 영향력이 십수 년까지 이어진다는 것, 화학물질들 간의 나쁜 시너지 효과가 어떻게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등도 꽤나 큰 충격이었. 자연은 너무나도 오묘하고 체계적이고 또 섬세해서 살충제 살포 등의 복합적 영향을 정확하게 추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갓난아기가 받아들이는 화학물질의 양이 아주 적다고 해도, 아이들은 성인보다 훨씬 쉽게 독극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오늘날에는 인생을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화학물질들이 몸속에 계속 축적된다.


특히 <침묵의 봄>에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쉽게 넘길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아이가 없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분명 지금과는 느끼는 것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부화되지 못하고 죽어버린 새끼 병아리들과 젖소의 젖에 남아있는 잔류농약 등의 이야기는 끔찍하게 두려운 이야기였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지만, 내 아이는 살충제를 뒤집어쓰게 만들 수 없으니까. 내 아이만큼은 깨끗한 물, 깨끗한 공기, 깨끗한 토양 위에서 자랐으면 좋겠으니까. 아이의 부모로서, 한 세대의 어른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책이었다.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런 상황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자취를 감춘 새에 대해 이야기했다. 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쓸쓸했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몇 마리의 새조차 다 죽어가는 듯 격하게 몸을 떨었고 날지도 못했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 (중략) ...

이렇듯 세상은 비탄에 잠겼다. 그러나 이 땅에 새로운 생명 탄생을 가로막은 것은 사악한 마술도, 악독한 적의 공격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른 일이었다.


레이첼 카슨이 만든 그 세계의 새들은 모두 돌아왔을까. 지구의 봄은 여전히 침묵 중일까. 지금은 머리 위에서 무차별적으로 살충제를 뿌려대지는 않지만, 우리의 식탁은 더 많은 화학물질로 범벅되었다. 과학기술과 의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채 붙이지 못한 신종 질병들이 기승을 부리고, 대처가 불가능한 전염병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미래를 훤히 내다본 듯한 레이첼 카슨조차도 오늘날의 코로나 사태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무척이나 무더웠던 오늘, 감사를 마치고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을 나서는데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밑을 지나자 매미소리가 무섭게 귓가를 때렸다. 실로 엄청난 소리였다. 평소 같으면 시끄럽다 느꼈을 수도 있는데, 아니 평소 같으면 별 의식 없이 지나쳤을데, 이 책 덕택인지 며칠간 비가 계속 왔던 탓인지 그 소리가 참으로 반갑게 느껴졌다. 계절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과 곤충들의 울음소리를 아이와 함께 언제고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곧 걷게 될 아이가 밟을 땅 위로 더 많은 아름다운 꽃과 식물이 자라나기를, 좀 더 안전한 먹거리를 마음 편히 아이에게 먹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지우야, 엄마도 조금은 변해볼게. 지우를 위해서.


2024년 7월 25일, 스물아홉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SSM

1. 과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지구온난화 / 기후위기 / 생태계 교란 등의 말들은 (제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에는 경각심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그냥 흘려버리며 살아가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현실이 되어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최근 각자가 느끼는 자연환경 변화 중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영향을 받은 변화들은 어떤 것이 있나요?  



2. 저자는 “자연은 결코 인간이 만든 틀에 순응하지 않는다 “라고 말합니다. 또한 농작물을 지키기 위한 해충 방제가 얼마나 큰 역효과를 가져왔는지 언급하죠.

최근 서울 도심에서 이슈가 되었던 러브버그 떼는 이를 싫어하는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줬지만, 지자체는 ‘익충’이므로 방제를 최소화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는 레이첼 카슨의 말대로 어쩌면 우리가 최소한으로 자연으로 개입하여 생태계 교란을 막고자 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최근 기후가 변화고 글로벌화로 인해 국내에 없던 다양한 생물들이 국내로 넘어오면서 생긴 해프닝이기도 하죠. (황소개구리 사건 등)

그렇다면, 우리에게 해충과 익충의 기준은 정말 정확한 것일까요? 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준에 지나지 않아, 생태계 교란의 수단이 되지는 않을는지, 혹은 오늘날 해충이었던 것이 익충이 되고, 언젠가 익충이 해충이 되는 시기도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생명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3. 저자는 DDT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류의 화학물질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묘사합니다. 한 지식인은 방송에서 DDT를 플라스틱으로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야기한 적도 있죠. 각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 또는 사례는 무엇인가요? 혹은 가장 와닿았던 구절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4. 이 책은 1962년 9월 출간한 책으로,  DDT가 널리 쓰이던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 약 20년 후 DDT에 대한 악영향을 세상에 고발하였고, 약 10여 년이 지난 후 다양한 나라에서 DDT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세상을 바꾼 책으로도 유명해지게 되었죠.

이렇듯 한 연구자의 연구성과가 제대로 빛을 발하여 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까지 큰 영감을 주고 있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광우병 사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코로나 백신 이슈 등 지나고 나면 그 사건의 진실이 명백하게 드러나겠지만 그 당시에는 편협한 정보들이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전문가인 우리가 편협한 언론과 거짓이 섞인 사회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5. “우리의 목적은 폭력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주의 깊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올바른 방향을 향하는 것이다…(중략)…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 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후대에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하기 위해 각자가 노력하였던 작은 운동들이 있다면, 앞으로 이 책을 읽은 뒤 각자가 하고 싶은 작은 결심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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