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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Jun 25. 2024

사막 한가운데 나를 던져놓을 용기

애거서 크리스티 <봄에 나는 없었다> 서평


고대하던 여행 내내 하릴없이 비가 내린다면, 성심성의껏 준비해 온 행사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긴다면? 좌절하고 스트레스를 받을만한 상황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비가 내리는 순간, 문제가 생기는 순간, 순식간에 생각이 자동으로 전환되어 버린다. 마치 처음부터 간절히 비를 바랐던 사람처럼, 애초에 문제를 예상했던 사람처럼. 궂은 비도 원치 않은 문제들도 결국은 나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앞사람이 빵을 다 사가버리는 바람에 (빵이 새로 구워지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 기다려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 구운 새 빵을 받을 수 있어서 럭키비키(?)하다고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장원영. sns에서 처음 '원영적 사고' 짤을 보고 나는 '소영적 사고'와 정말 유사하다고 느다. 골프를 치는데 날이 맑으면 맑아서, 흐리면 시원하고 선크림을 안 발라도 돼서 내가 바로 날씨요정이라고 주장하는 나. 심지어 비가 오면, 안 그래도 배가 무지 고팠는데 빨리 홀아웃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갈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른다.


우습지만 어릴 때는 내가 하나님의 딸이거나 하늘에서 잠시 내려온 천사일 거라고(???) 믿었던 적도 있다. 재벌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정말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나는 내가 남들보다 가진 것이 너무 많고,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지나치게 행복하고,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며 살고 있다고 느끼고 믿으며 자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의 모든 삶이, 나의 가정이, 내가 가진 모든 자격과 능력이, 갓 태어난 나의 딸조차도 완벽한 것만 같다. 정말 나는 특별한 존재라고,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고, 내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고.


참된 진실보다는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나는 쭉 내가 있던 자리에 있었어 - 블란치가 옳았어 - 나는 세인트 앤을 떠났을 때 모습 그대로야. 쉬운 삶, 나태한 사고방식, 자기만족, 고통도 감당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두려워했지....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는 그 어떤 호러물보다 섬뜩하게 다가왔다. 내가 믿고 있는 이 행복이 사실 거짓이라면, 한쪽 눈을 가린 채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나 자신조차 속이고 있는 것이라면? 그럼 정말 어떡하지. 나는 좋은 딸, 좋은 언니, 좋은 친구, 좋은 아내, 멋진 여성이 맞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주인공 조앤은 굉장히 많은 면에서 나와 닮았다. 자신이 특별하고 완벽한 삶을 꾸리고 있다고 굳게 믿는 모습도, 뚜렷한 직장은 없지만 다양한 사교활동을 하는 공사다망함도, 가족의 행복을 무기 삼아 남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면도 그렇다. 에이버릴이 조앤에게 자신은 유모가 다 키워주고 고생해서 돈을 버는 것은 아빠인데, 엄마는 자식들에게 무얼 해주었느냐 묻는 장면에선 뼈를 맞은 듯 얼얼했다. 그리고 정말 부끄럽지만 종종 '내 기준에서' 나보다 못한 면이 있는 사람과 내 자신을 비교하 우월감을 느끼고 내 행복을 추켜세웠던 것도 같다.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독서모임을 시작하고 많은 책들을 접하면서 다양한 인물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중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도 있고, 반가운 모습도 있고, 내가 잃어버린듯한 모습도 있다. 뜻밖에 상상치 못했던 모습을 만나기도 한다. 그중에서 조앤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많이 닮아있는 인물이다. 


조앤이 사막 속에서 홀로 고립되어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되었던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마치 사막에 내던져진 듯 갖가지 구멍 속에서 튀어 오르는 도마뱀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그 사막에서 그녀가 그토록 외면하고 싶어 했던 진실을 - 레슬리에 대한 로드니의 사랑을 - 마침내 인정한 것처럼, 나 역시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 유년기 시절의 상처를 용기 내어 들추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는 견디기 힘든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의 행복에 더 집중하는 방법을 치열하게 연마했던 것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조앤을 경악스럽고 한심한 인물이라 평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조앤이 너무도 가엾게 느껴졌다. 그녀가 진실을 똑바로 마주하며 반성하고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면서는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막을 떠나자마자 그녀는 조금씩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주인공은 오래도록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속 결말을 철같이 믿는 어린아이처럼, 그녀는 전쟁의 가능성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도 클레이민스터를 떠나지 않았던 것 마냥, 완벽하게 본래의 그녀 모습으로 돌아와 버린다. 


"아무도 전쟁을 바라지 않는단다. 얘야"
"네, 하지만 사람은 때로 바라지 않던 일을 당하기도 해요."


아름답기만 한 세상이 있을까. 고통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 어른이 아이와 다른 것은 동화와 현실을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고통을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 현실을 바로 마주하고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지 못한 조앤은 중년이 된 지금도 '불쌍한 아기' 상태에 머물러있다. 그리고 그녀는 나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기만과 현실 외면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여 자신만의 동화에 스스로 갇혀버다. 그것이 사무치게 외로워지는 길일지라도. 외로움 역시 그녀의 동화 속에서 그냥 쓱 지워버리면 그만일 테니.


"나태한 사고는 금물이야, 조앤!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게 가장 쉬운 길이라고 해도, 또 그게 고통을 면하는 길이라 해도 그래선 안 돼! 인생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 돼!"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캐스팅되어 무려 만 14살에 데뷔한 장원영. 고작 스무 살인 그녀는 벌써 데뷔 7년 차이. 평소 그녀의 뛰어난 외모 외에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없었지만, 원영적 사고에 깊이 공감하며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 보니 가히 놀라운 경력이었다. 그리고 최근 한 프로그램에서 본인은 어린 시절부터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무대에서 단 한 번도 긴장해 본 적이 없다고 한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유년기 시절에도 욕심이 많았고, 뭐든 잘했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의 단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그런 건(단점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진심으로 본인을 사랑하면서 단점보다 장점을 보려고 노력한다'라고 대답했다.


감히 당대 최고의 아이콘인 그녀와 나를 비교하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평소에 내가 가졌던 생각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내비쳤던 말들과 너무 유사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알 수 없이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정말로 힘들었던 적이, 떨렸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아무리 그녀라 한들 (그녀라면 정말 단점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모든 순간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기만 할 수 있었을까. 쿨함과 무례함이 어떤 면에서 궤를 함께 하는 것처럼, 원영적 사고와 자기기만도 어쩌면 한 끗 차이가 아닐까.


초긍정적 사고방식인 '원영적 사고'는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여러 가지 유익한 요소가 많을 것이니, 각박한 요즘 사회에서 특히 장려될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불쌍한 아기'에서 벗어나 성숙한 어른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 인생에서 어느 날은 빵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끔은 예기치 못한 슬픔과 고통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날은 내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때때로 자신을 사막 한가운데에 던져놓고 스스로에 대해 성찰할 용기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때 우리에겐 '원영적 사고' 뿐 아니라 '희진적 사고''명수적 사고'도, '동원적 사고'도 모두 필요할 것이다.


2024년 6월 25일, 스물여덟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JSY
1. 책의 초반부에서는 주인공인 조앤과 동창 블란치의 삶이 꽤나 대조적으로 그려집니다. 다소 불행한 듯 하지만 본능이 이끄는 대로 자유분방하고 즐겁게 살아온 블란치 vs. 정숙하고 우아하지만 틀에 갇힌 채 단조로운 삶을 살아온 조앤. 당신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누구와 가깝나요? 당신이 꿈꾸는 중년은 어떤 모습인가요?


2.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무진장 중요하거든. 안 그래?”
“상황에 따라 다르지. 사람은 많은 것들을 고려하며 살아야 하니까.”

유능한 변호사인 로드니는 도시를 벗어나 농사를 지으며 한적하게 사는 삶을 갈망하지만, 조앤의 만류로 좌절하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조앤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당신은 남편의 꿈을 지지할 것인가요? 아니면 조앤처럼 '둘을 위해 한 사람이라도 현명해야 한다'며 남편을 설득할 것인가요? 배우자 혹은 자녀가 당신이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할 때, 그것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3. 사랑에 모든 것을 - 자식마저 - 내던지며 충동적으로 살아온 천박한 블란치,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 결국 암으로 생을 마감한 레슬리, 독선과 자기기만에 빠져 거짓된 삶을 살고 있는 외톨이 조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쟁취하지 못한 채 반쪽자리 삶을 사는 허수아비 로드니. 당신에게 있어 가장 이해되지 않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4.  "나태한 사고는 금물이야, 조앤!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게 가장 쉬운 길이라고 해도, 또 그게 고통을 면하는 길이라 해도 그래선 안 돼! 인생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 돼!"

조앤은 로드니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통을 피하기 위해 그 사실을 외면하고 스스로를 기만하였습니다. 떠올리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경험이 있으신가요?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였을 때, 당신은 그 고통을 똑바로 마주함으로써 극복하는지, 피하고 외면하여 잊어냄으로써 극복하는 스타일인지 궁금합니다.


5. 사막에서 발이 묶이자 그것을 휴양치료라고 생각하기로 한 조앤. 결은 조금 다르지만, 조앤을 보며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 중인 '원영적 사고'가 떠올랐습니다. '원영적 사고'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결국에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 초 긍정적 / 낙관적 사고방식을 뜻하는데요. '오히려 좋아'라는 유행어와도 일맥상통하며, 대중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적 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 물이 반이나 남았네?
부정적 사고: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원영적 사고: 내가 연습 끝나고 딱 물을 먹으려고 했는데, 글쎄 물이 딱 반 정도 남은 거양!! 다 먹기엔 너무 많고 덜 먹기엔 너무 적고 그래서 딱 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럭키비키잔앙!!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원영적 사고는 정신승리일 뿐, 본질을 흐리게 만들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 책 역시 자기만족과 자기기만을 경계하고, 적당한(?) 자기혐오를 통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해야 함을 주장하는데요. 당신은 어떠한 사고방식을 선호하시나요? 원영적 사고방식과 조앤의 자기 최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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