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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1)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감사한 점은?

[작가와 공동집필] 고마운 일상 C. 환경 및 상황_ 질문 11

by 쏘스윗 Mar 24. 2025

A ) 깨끗한 환경


세종시에 오게 된 건 조혈모 세포 이식을 앞두던 가을날이었다. 무균생활을 해야 하는데, 세종은 신도시였기에 깨끗했다. 집도 새 집, 상가들도 모두 새로 지은 건물들, 계획도시답게 산책로도, 공원도 아주 많았다. (물론 다른 지역도 더 많은 공원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사람이 정말 적은 편이다. (이게 장점인 것은 내게만 적용되는 것일 수는 있겠지만)


이식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때, 나의 하루 루틴에 꼭 포함된 산책을 하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

조금은 인위적이긴 하지만 깔끔하게 조성된 산책길과 공원을 걸을 때면 숨통이 트였던 것 같다.

소독된 방, 먼지로 인한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놓였던 가구.( 가구라고 말할 것도 거의 없었던 텅 빈 방안 ) 소독하기 좋았던 소파베드 하나였으니.


그 작은 방 안에서 느낀 답답함을 해소하는 하루의 달콤한 시간이 바로 산책이었고, 깔끔한 산책길에 마스크를 벗고 (마스크가 지금은 모두 쓰는 것이 익숙하지만 그때는 주변에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나뿐이었으니) 사람들이 없이 텅 빈 햇살 가득한 길을 걷고 있노라면 삶이 평화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10년 전이라 지금처럼 인구가 많아지기도 전이었어서 정말 텅 빈 동네였다. 그 좋은 환경을 홀로 누리고 있노라면 꼭 내 집안의 정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집 앞 공원에 워낙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나아지고 나서는 집안이 답답하여 자주 나가게 되었다. 계절을 느끼며 걷고 그날의 맑음을 사진에 담는 것이 좋았다. 혹은 도서관을 자주 갔다. 세종 국립 도서관은 내가 이식 후 조금 회복이 되고 나서 아지트가 되었다. ( 혹은 집 앞 복합커뮤니티센터의 도서관)  


도서관에 앉아 호수공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물멍) 호수에 비친 햇살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 반짝거렸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잠시 나가 산책을 하고.

1층에는 매번 이색 기획전이 있었고, 따로 어딘가로 가지 않고도 문화생활을 알차게 즐길 수 있었다.

가끔 호수공원에서 저녁에 무료 공연들을 볼 수도 있었다. (어느 봄날에 친구와 함께 들은, 가수 테이의 ‘같은 베개’가 떠오름)


최근에는 누리지 못하는 그 순간의 시간이 그립다.

어찌 보면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은 조심스러운 하루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약하디 약한 내가 조심스레 한걸음 한걸음을 걸을 수 있었던 순간이 귀하고 소중했다. 그 환경이 깨끗했기에 무탈히 잘 보냈던 것 같아 감사하다.


나는 다시 나의 몸을 살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저 정신을 살펴서 그 순간이 다시 오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의 병은 나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 가장 큰 병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첫째를 산책시켰다.

미세먼지가 많은 하늘이었지만 따스한 햇살과 포근히 부는 바람이 다시 시작된 이명을 잠재워 주었다.


지금의 집은 10년 전 동네보다 조금 더 오래된 동네라 조금 삭막하지만 금강이 가까워 조금만 걸으면 햇살이 반짝이는 금강의 윤슬을 보러 갈 수 있다.

엊그제 다녀왔는데, 또 가고 싶다.

(마음에서 외친다.

‘으이그, 무리하지 말어~.‘)


이 시간을 내게 다시 주는 이유는 그때의 마음을 기억하고 감사히 소중히 하루를 살라는 신의 선물일 지도 모르겠다.


나의 발 밑을,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을 다시 잘 살피라고.


운동화 끈에 밟혀 넘어지지 않게,

예쁘게 핀 몽글몽글한 것들을

소중히 마음에 떠올려보라고.

10년 전 동네 산책길에서
10년 전 세종 국립도서관의 가을
가장 최근에 마지막으로 여유를 즐겼던 세종국립도서관에서의 여름
첫째와 책과 함께하는 산책은 늘 평화롭다. 지금 집의 산책다리/금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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