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소동

by 심지훈

새 학기 우리집은 막둥이 바론이, 큰애 라온이 할 것 없이 영어 소동이 일었다.

바론이는 어린이집 가장 큰 형님, 일곱이다. 이 나이가 되면 아이들 일부가 어린이집을 떠나 영어유치원으로 진학하거나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바론이는 그 친구들을 보고 다섯에 다니다 그만둔 영어학원을 다시 다니고 싶다고 했다.

형 라온이는 초3이다. 초3이 되면 교과에 영어가 시작된다. 영어 첫 수업에서 라온이는 무척 당황했다. 공 넘기기를 하면서 선생이 “Stop”을 외치면 걸린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사전에 미션이 주어졌다. 이름을 말하고 꿈, 숫자, 동물 등 4개 중 2개를 골라 말하게 했다.

라온이는 “My name is Shim Raon.”만 말했다. 선생님이 곁에서 도와주어 겨우 자기소개를 마칠 수 있었다.

“My favorite animal is the tiger.”
“My dream is to be a cook.”

라온이가 당황스러웠던 건 영어 선생의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중에 반 친구들은 선생의 말에 뭐라고 쉘라쉘라 답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당황했다.

두 아들에게 적절한 처방이 필요했다.

일단 라온이에게는 “걱정할 것 없다”는 사실을 다각도로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넌 영어학원을 다닌 적이 없고, 따로 영어를 공부를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너는 그동안 열심히 국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초3 영어 정도는 금세 배울 수 있다.”
“다만 영어 듣기는 시간이 좀 걸릴 거다. 너가 우리말을 익힌 건 아기 때부터 엄마아빠 말을 수없이 듣고 그 말을 배워 따라 했기 때문이다.”
“영어도 사실 그렇게 익히면 좋은데, 여긴 한국이고 우린 한국 사람이 아니다. 결국 영어로 말할 수 있으려면 일부러 자주 들어야 한다.”
“그리고 들어 익힌 걸 입으로 뱉어야 한다.”
“초3 영어는 아직 쉽다. 대부분 3~6개 단어가 한 문장이다. 그 정도는 너도 들을 수 있다. 사실 언어라는 건 그 범위가 없다. 그래서 어렵다면 어렵다.”
“결국 자주 듣고 가능하면 입밖으로 뱉어서 익히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게 회화다.”
“넌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까 등교 전 매일 10분을 들어보자. 여름방학 전에 기본적인 회화는 할 수 있을 거다.”

바론이는 한글 학습의 정도, 상황 판단력, 사교성 등이 형 라온이보다 1년 이상 빠르다. 그걸 고려해 영어학원을 다시 다녀도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했다. 영어학원 이틀째 학원에서 엄마를 호출했다. 바론이가 운다는 거다. 엄마가 가서 보니 사정은 형 라온이와 비슷했다.

“원어민 선생님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친구랑 같이 다니고 싶어.”

두 가지 이유로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잘했다. 일곱 살 아이가 무슨 영어학원인가. 초3 형이 하는 것 곁눈질만 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어린이집에서도 주5일 매일 영어를 가르친다.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건가. 부족하다면 복습이 부족하다.

다섯 바론이가 영어학원을 처음 간다고 했을 때, 아빠는 결사 반대했다. ‘저 어린 걸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건가’ 싶었다. 결국 1년 만에 그만뒀다. 일곱 바론이 말에 휘둘려 또 한 번 학원 실패의 경험을 주었다. 엄마도, 아빠도 반성해야 한다. 애들 양육과 교육에는 누구 탓이 없다. 탓을 하는 쪽도 늘 잘못은 비등하게 있다. 요인은 다양하다.

오늘 아침 바론이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서 제법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바론아, 영어학원을 안 가는 대신에 태권도를 다시 갈거야, 아니면 일찍 하원해서 아빠랑 영어를 할까?”
“음….”
“하원해서 놀고 영어 조금 하는 거지. 영어책은 샀잖아.”
“놀고 (영어) 조금….”

아빠의 제안에 뭔가 마뜩잖다.

“그래. 그럼 화목은 일찍 하원해서 그렇게 해보자. 또 아니다 싶으면 다시 태권도장을 가면 돼.”
“근데, 아빠. 내가 다니고 싶은 영어학원은 베러마미(다섯에 다닌 학원)야.”
“그래?”
“응. 그러면 베러마미를 알아봐?”
“근데, 자리가 안 나. 사람이 빠져야하는 데 안 빠져.”
“아닐 걸. 그건 주말 이야기고. 주중에는 아빠랑 가면 돼. 그럼 태권도장을 갈지, 베러미미를 갈지 고민해봐.”
“응. 그럼 오늘 3시에 데리러 와.”
“오늘? 왜?”
“하원해서 어떻게 할지 좀더 대화를 해보게.”

영특한 아이다. 놀고 싶은 마음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한다.

“아니지, 오늘은 도장가는 날인데. 그건 주말에 이야기해도 되고, 천천히 이야기하면 돼.”

바론이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 건, 바론이는 어린이집 수업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업이 많다. 그 수업이 버겁고 때론 싫다. 그냥 좀 놀고 싶다는 신호다. 화, 목은 일찍 데려와 함께 놀아야겠다.

라온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유명 영어유치원 교재를 구했다. 교재가 정말 좋다. 커리큘럼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전방위로 걸쳐있다. 미국 아이들이 배우는 것보다 정교해 보인다. 라온이가 아침마다 하는 영어공부는 공부도 아니다. 이 정도 공부하면 미국 원어민도 능가하겠다 싶다.

환상은 잠깐. 곧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니, 여긴 한국인데 이 많은 걸 그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면, 그것도 예닐곱 살이, 그 시간에 경험할 신체놀이, 우리말 등 다른 것들 언제 한단 말인가. 학원가를 전전하는 애들 모습이 아른거려 어찔하다. 아이들 뇌가 정상으로 굴러가진 않겠다 싶다.

다행인 건 라온이는 스스로 영어학원을 안 가는 쪽을 택했다. 아침마다 10분씩 열심히 듣고 따라 하고 있다. 학원을 그만둔 바론이는 아침마다 형 옆에 앉아 같이 듣고 따라 한다. 목소리는 바론이가 더 우렁차다. 이 쾌활한 성격이 어째서 원어민 선생님 앞에서 죽었다는 건지. 아빠는 그게 신기할 따름이다. 밝고 명랑한 게 매력인 우리 바론이. 하마터면 학원에서 시들 뻔했다.

“그럼 오늘 3시에 데리러 와.”
“오늘? 왜?”
“하원해서 어떻게 할지 좀더 대화를 해보게.”

똑소리난다.
/심보통 2026.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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