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게임 체인저’가 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평일 유튜브 시청은 금한다고 어제 통보했다. 막둥이 바론이에게는 어제 아침 출근길에 이야기했고, 큰애 라온이에게는 수영 가기 전에 전했다.
태권도장과 수영장에서 오후 6시~6시 20분쯤 돌아오면, 그간은 30분에서 1시간, 길게는 1시간 30분 정도 유튜브를 봤다.
‘20분’이란 기준은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고, 아빠엄마도 이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했다.
물론 그 사이 유튜브는 때가 되면 점점 줄여야 한다는 점은 수시로 알려주었다.
오후 6시에 집에 와서 유튜브를 보기 시작하면 저녁 시간을 활용하기 힘들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는 의미의 유튜브 시간은 늘 달콤하다. 달콤해서 쏙 빠져든다. 빠져들어 정해진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아빠엄마는 그 시간에 늘 곁에 있을 수 없다. 저녁 준비 등 각자의 시간이 있다.
한 번 잡은 유튜브는 저녁 먹을 때도 이어진다. 저녁을 먹고는 샤워하기가 귀찮아진다. 놀이가 시작된다. 밤은 점점 깊어간다. 샤워하고 큰애는 수학문제집을 푼다. 작은애는 뭘 할지 모른다.
어릴 때 독서를 강조하지만, 세 살 터울 아이 둘 키우면 독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둘째가 크면 서로 다른 책을 읽고 싶어한다. 큰애한테 맞추려니 작은애에게 미안하고 작은애에게 맞추려니 큰애가 섭섭해한다. 서로 고집을 피우면 아빠가 지친다. 그럼 둘 다 읽자는 때보다 둘 다 읽지 말자는 때가 더 많다.
사실 아이들 독서는 놀이이자 자장가다. 어릴 때부터 자기 전 엄마아빠가 책을 읽어준다. 그게 습관이라면 습관인데, 아이들은 으레 책은 자기 전에만 읽는 줄 안다. 초3이 된 큰애는 아직도 책은 침대에서 읽는 것 줄로 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 “침대에서 읽으면 안돼”하고 자세를 흐트린다.
큰애와 함께한 독서시간만큼 작은애에게 줄 수 없다. 살아보면 아이가 하나일 때와 둘일 때 삶의 전개는 예상하기 힘들다. 작은애는 정말 그냥 큰다, 알아서 큰다 싶을 때가 많다.
큰애라고 예전 같지 않다. 작은애에게 신경을 쏟으면서 큰애의 독서시간도 부지불식간에 무너졌다. 그리 작은애는 독서욕구가 분출할 시기라 엄마아빠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해 읽고 자지만, 큰애는 그냥 잔다.
초3이면 진짜 독서를 서서히 시작할 때다. 초5까지 독서습관을 길러주면 그다음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런데 초3 들어 독서시간은 가뭄에 콩 나는 식이다.
태권도장, 수영장에서 돌아오면 유튜브 보기-저녁 먹기-샤워하기-연산·사고력 1장 풀기-놀기를 하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그것도 11시를 넘기기 다반사다. 10시 취침의 규칙도 쉽게 무너졌다.
문제는 유튜브와 스마트폰이다. 하지만 ‘유튜브와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있는가.’ 반문하면 그럴 수 없다. 아이들은 유튜브와 스마트폰 환경의 세상에 살고 있다. 남들 다 보는 유튜브와 스마트폰을 말릴 이유는 딱 하나 혹은 둘이다. 부모가 그 모습을 보기 싫어서(혹은 근거 없는 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부모의 감정이다. 감정대로 아이를 키울 순 없다. 그건 각자가 ‘유일무이한 존재’인 아이들에 대한 정서적 폭력이다.
유튜브와 스마트폰이 일상의 걸림돌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져야 한다. 아이들과 대화가 필요하다.
얼마 전 작은애가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스마트폰 없으면 어때?>를 읽었다. 스마트폰을 자주, 많이 사용하면 나타나는 문제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책이다. 작은애가 그걸 읽고는 스마트폰을 멀리해야 한다고 형아에게 알려주었다. 그리 형아도 이 책을 따로 읽었다.
아이가 아이인 까닭은 아직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아서이다. 아이는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있고, 선생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있다. 우리 아이들 경우 큰애는 아빠 말을 잘 듣고, 둘째는 선생 말을 잘 듣는다. 아이는 어른과 달리 교화가 된다. 교육이 되고 교육을 하는 까닭이다. 이끄는 대로 가르치는 대로 되는 존재가 아이다. 아이는 부모를, 선생을 잘 만나야 한다. 부모와 선생은 바른 부모, 바른 선생 되도록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아무나 부모, 선생 되면 안 된다.
아빠는 게임 체인저가 되기로 했다. ‘Game Changer.’ 어마무시한 말이다. 기존 시장 질서의 판도를 일거에 뒤엎은 사람을 이른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크버그 등이 대표적이다.
가정사에서 유튜브와 스마트폰을 금지하는 일은 게임 체인저만이 할 수 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빠 말을 잘 알아들었다. 저네들이 봐도 밤에 계획대로 되는 것 없는 날들이 일상이라는 건 문제다. 일곱 바론이도 그걸 안다. 열 라온이가 모를 리 없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원래 계획대로 돌아갔다. 초3 큰애와는 유튜브 보는 시간에 ‘3권×10분 독서’를 시작했다. 일곱 작은애는 영어학원 등록만 하고 도로 끊으면서 가져온 영어책을 풀기로 했다.
뭔가를 하려면 결국 시간을 나누거나 대체해야 한다. 유튜브로 빼앗기는 시간에 큰애는 본격 독서에 들어갔다. 큰애는 5~6년 이야기책만 꾸준히 읽었다. 초3이 된 올해부터는 이야기책, 과학책, 철학책을 1권씩 골라 10분씩 읽기로 했다. 뇌를 자극하는 독서법이다. 이 방법은 읽고 요약하는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지식과 상식이 교차하는 걸 체험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10분씩만 읽어도 각각의 책의 향기 정도는 맡을 수 있다.
이야기책, 과학책, 철학책 모두 그동안 읽지 않은 책 중에서 고르라고 했다. 어차피 과학책, 철학책은 어떤 걸 골라도 처음 읽는 것이고, 이야기책은 글밥이 많은 책을 고를 수밖에 없다. 5~6년 독서의 힘을 바탕을 지식의 탑 세우기에 나섰다.
우리 뇌는 지속하는 힘과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힘이 약하다. 어린아이의 뇌는 두 힘이 더 약하다. 10분 동안 이야기를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 아이는 부담이 적다. 그런 중에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뇌에 전달돼 자극을 준다. 뉴런과 스냅스가 강화되는 원리다.
큰애는 이 방법을 무리없이 잘 따랐다. 이야기책은 한 번에 다 읽었다. 스토리의 힘이다. 재미있으면 애든 어른이든 빠져들게 돼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 모를 때, 잘못한다고 느낄 때 애든 어린이든 그만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영어학원을 이틀 만에 그만둔 작은애는 집에서 엄마와 영어문제집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막상 하니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작은애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철봉에 달아놓은 턱걸이 끈으로 그네타기를 하고 싶다. 그럼 그네를 태우면 된다. 일곱에 무슨 놈에 영어공부인가. 아빠가 말한다. “됐어. 그냥 아빠랑 놀아. 때가 되면 다해.”
영어학원에서 환불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주었다. “바론이는 말하는 걸 보면 일곱이 아니라 여덟은 된 것 같아요. 사용하는 단어가 남달라요. 어떤 건 수준이 아주 높아요. 사실 영어도 국어를 잘해야 잘하거든요. 바론이는 자기 의사를 분명히 전했을 거예요. 사실 영어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하기 싫으면 말아야죠. 조금 늦게 시작하면 레벨 테스트에 걸려 들어갈 반이 없는 건 맞지만, 과외 등 다른 방법이 또 많잖아요.” 영어학원 선생의 말은 지극히 옳다.
영어가 그리 중한가. 그렇지 않다. 인생은 다면평가다. 저 잘하는 거, 저 좋아한 거 하며 살면 된다.
그러나 우리글을 읽고 쓰고 요약하는 기본기는 어릴 때 탄탄하게 다지는 게 좋다. 이건 삶의 근간이다. 뿌리가 시원찮으면 삶도 시원찮다. 맥락읽기가 안 되면 삶의 맥락도 못 잡는다.
/심보통 2026.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