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론이 유모차·라온이 다기

by 심지훈

#바론이 유모차

내달 23일 세상 소풍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둘째 바론이 유모차를 며칠 전 샀다. 그 유명하다는 스토케 유모차다. 근데 단돈 3만원 주고 샀다. 내가 애용하는 중고거래사이트 ‘당근마켓’에서 샀다. 스토케 신형은 150~160만원대다. 유형별로 다르지만 어떤 것은 6시리즈까지 나왔다. 4, 5시리즈는 상태에 따라 당근마켓에서 80~90만원을 호가한다. 못해도 30만원대다. 우리가 산 것은 1시리즈다. 이런 건 아마도 웬만해선 사서 쓸 부모가 없을 것이다. 너무 구형이란 이유로. 근데 우리는 샀다.


이 지점이 집사람과 내가 ‘대법원 재판부 전원합의체’ 판결처럼 무척 어려워 보이지만, 유별나게 같은 판단을 잘 내리는 곳이다. 부부일심동체라는 옛말이 통하는 곳이 있긴 있다는 점에서 우리도 참 금슬 좋은 부부라 할 만하다.(ㅎㅎ)


아내는 여자치고 명품에 관심이 좀체 없다. 나는 남자치고 차에 관심이 좀체 없다. 남녀가 대체로 선호하고 애호하는 명품백과 자동차를 두고 우리 부부 사이 욕망을 따지자면 아내가 조금 더 강할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차는 네 바퀴로 굴러가면 다라는 생각을 가진 남성계의 별종이다. 아내는 갖고는 싶지만 여러 현실을 감안해 그 욕망을 섣불리 발현하지 않는 쪽이라고 나는 파악하고 있다.(ㅎㅎ)


또 아내와 나는 우리 아들이 아무리 귀하고 예뻐도 “스토케 신형을 사야하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질문 앞에 단호하게 “그건 아니다”고 합창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들이다. 몇 번이나 탄다고 무턱대고 새것이고 고가의 것을 산단 말인가. 내가 중고마켓에서 30만원대 깨끗한 4시리즈 정도를 사는 게 어떻겠냐고 하자, 그것도 아내는 비싸다고 했다. 참 아름다운 답변이었다.(ㅎㅎ)


그러다 3만원에 올라온 1시리즈를 보고 둘 다 혹했다. 주저 않고 구입을 결정했다. 단 판매자에게 실물을 보고 구매를 결정할 것을 요청했다. 오래된 물건이면 천 색이 바랬을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실물을 보니 연식에 비해 깨끗했다. 차의 본질이 굴러가는 것이듯 유모차도 잘 굴러가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겠다. 핸들링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바론이 유모차를 사고 보니 라온이한테 무척 미안했다. 라온이가 태어나고 아내 직장 동료가 “유모차는 직접 써봐야 좋은 걸 안다”며 자기 아들 타던 것을 줬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갖고 라온이를 지금껏 키웠다. 이 유모차에 라온이를 태우고 거리로 나가면 짱짱한 스토케 유모차와 나란히 가거나 마주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새것을 사주자고 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헌데 단돈 3만원 주고 교체한 유모차를 먼저 시승한 라온이가 빵긋빵긋 웃으며 몸을 신나게 흔드는 모습을 보니 부모들이 왜 “어이구 내 새끼”하며 좋은 것만 사주려는 것인지 이해가 가긴 갔다. 이해는 이해고, 그래도 부모가 중심을 잘 잡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에선 이웃이 쓰던 유모차로도 라온이를 건강하게 잘 키운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라온이 다기

나는 타는 차에는 관심이 없지만, 마시는 차에는 관심이 많다. 얼마 전부터는 보이차에서 녹차, 홍차, 꽃차로 관심사를 넓혔다. 그 와중에 저렴하게 나온 차와 다기를 사 모았다. 물론 중고마켓에서 샀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 분야에서 트렌디한 덕을 톡톡히 보는 쪽이다. 고려·조선 1,000년 동안 차 강국이었던 이 나라는 역사의 부침으로 차를 즐길 시간이 없었던 시간을 지나왔다. 이건 팩트다. 본격적으로 먹고 살만한 시대에 이르러, 88올림픽을 그 기점으로 해도 불과 30여년 만에 차를 저 멀리 차버리고 커피를 일상다반사로 여기고 있다. 이건 현상이다. 나에게는 덕이나 한편으로 우리 국민들이 참 기괴하다 싶다.


중고마켓에서 유통기한이 1년 남짓인 녹차(잎차)는 2천원에 팔린다. 그래도 나 같은 차 애호가가 아니면 잘 안 사간다. 중국에서 들어온 잎차는 8천원 정도에 거래된다. 이에 비해 턱도 없는 보이생차는 기본 3만5,000원에 거래된다. 마셔도 큰 탈이 없는 차는 저렴하게 거래되고, 마셔서 몸을 망칠 수도 있는 짝퉁 보이차는 이 세계에서 명품(?) 취급을 받는다. 참 요지경 세상이다. 중고마켓에서 브랜드만 믿고 산 보이차는 거개가 버려야 할 것들이다.


한편 집집마다 다기 하나 없는 집은 없는 듯싶다. 유명작가가 만든 5인 다기도 기껏 5만원에 팔린다. 평균 8천원~1만원에 거래가 성사된다. 엊그제는 라온이 다기를 하나 샀다. 포장도 안 뜯긴 새것이다. 가격은 8천원. 구성품은 잔 6개, 차호 2개다. 잔은 자그마한 것이고, 차호는 차를 우리는 것과 따라 먹는 것이다. 각각 용무늬로 장식돼 있다.


라온이는 갓난아기 때부터 다구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 아빠 시늉하며 차를 우리고, 따르고, 마시는 놀이에 익숙하다. 그 놀이는 이제 아빠에게 진짜 차를 따라주고, 심지어 맥주를 따라주고, 소주를 따라주는 효도로 발전했다. 다도의 힘이다.(ㅎㅎ) 형 라온이가 동생 바론이에게 다도를 가르치는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나는 아이들에게 독특하고, 유별난 문화를 심어주고 싶다. 작고하신 아버지가 내게 하신 것처럼.


*이 글은 둘째아들 바론이가 태어나기 1달 보름 전쯤 쓴 것이다.

keyword
이전 26화아비의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