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

by 심지훈

해방 정국을 다룬 이병주 선생의 소설 <산하>를 읽다가 눈이 뻑뻑해 티브이를 켰습니다. 화면엔 영화 <도가니>에서 악역으로 열연했던 배우 장광 씨와 그 아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아빠하고 나하고>란 프로그램이 방영 중입니다. 프로그램 성격을 찾아보니 ‘부자간 대화를 통해 이해와 용서의 시간을 갖겠다’는 대목이 눈길을 끕니다.


장광 씨는 일흔줄은 됐을 것입니다. 아들은 서른여덟입니다. 장광 씨가 아들에게 피아노를 다시 쳐보는 게 어떻냐고 묻습니다. 아들은 다 잊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악보를 보고 치면 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아빠의 강요로 피아노를 치며 내내 운 기억뿐이서 다시 치기 싫다고 실토합니다.


장광 씨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집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물음이 불편합니다. 아들은 딱 한 마디를 원합니다. “아들아, 아버지는 너를 믿는다.” 그런 아들에게 아빠는 예스 오얼 노의 질문을 하거나 자기의 말이 맞으니 따르라는 강요화법을 씁니다. 머리가 굵은 아들은 이제 아버지의 일방적 말투와 강요화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결국 부자간 대화는 주제(이해와 용서)와 무관하게 일단락됩니다.


장광 씨가 자리를 뜨자 두 사람 대화를 지켜보던 매형 김태현(개그맨)이 장광의 아들과 대화를 시작합니다. 대화라기보다 조언입니다. 그즈음 저는 티브이를 끄고, 설거지를 합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문득 글을 엮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제의 일입니다. 라온이가 방과후수업을 끝마치고 태권도장을 다녀온 뒤 시원한 음료와 과자를 먹으며 유튜브를 봅니다. 20분 규칙을 정해 주어 시간을 넘기면 옆에서 언질을 해줍니다. 그러면 라온이는 유튜브 보기를 그만둡니다. 이 점은 라온이의 성품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아비로서 참 대견하다 싶습니다. 어른 말을, 특히 엄마아빠 말과 선생님 말, 태권도 관장님 말을 잘 듣고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일단 듣는 귀가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해 추석, 외할머니 성묘 가서 서울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형님께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애들이 공부를 잘해?” “선생 말을 잘 듣는 애가 공부를 잘해. 제 고집대로 하는 애는 공부를 못해.”


라온이를 보면 형님의 답변이 곧잘 떠오릅니다. 그런 라온이가 어제는 유튜브를 본 뒤 샤워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내가 킥보드 타고 태권도장 밑에 편의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올게. 혼자 갈거니까 아빠는 집에 있어.” “그래? 혼자 갈 수 있겠어?” 라온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응. 날 믿어.” 신용카드를 챙겨줘야 하나 싶었는데, 자기 용돈으로 사오겠다고 합니다.


하는 양이 제 머릿속으로 순 나온 것이어서 그냥 지지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 돈통으로 가서는 “한 2만원 갖고 가면 될까?” 했습니다. “1만원만 가져가. 충분해. 바론이 것도 사와.” “응. 나는 폴라포, 바론이는 빠삐코 살까?” “바론이는 구슬아이스크림 찾더라. 구슬아이스크림 사다 줘.” “오케이.” “태권도복엔 주머니가 없잖아. 돈은 어떻게 갖고 가게?” “손에 쥐고 가면 되지.”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들고 오게. 이 봉지 가져가.” “아~.”


라온이가 킥보드를 챙겨 문밖을 나가더니 다시 씩씩하게 말합니다. “아빠, 날 믿어!” “응. 대신 차가 없는 공원 뒤편으로 가.” “응. 알겠어.” 라온이를 보내고 ‘거스름돈도 봉지에 담아 오라’는 말을 빠뜨린 게 아쉬웠습니다.


이 ‘뉴스’를 아내에게 전했더니 “정말?”하고 놀랐습니다. 저는 읽던 소설 <산하>를 이어 읽어내려갔습니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 라온이가 돌아왔습니다.


“우와! 이렇게나 빨리 왔어. 금방 오네.” “아빠, 폴라포가 하나도 없어서 멜론바를 사왔어.” “잔돈은 어떻게 가져왔어?” “봉지에. 여기 오천원 그리고 오백원.” “응. 같이 담아 왔구나. 잘했어.”


저는 라온이가 하교하면 무얼하라고 정해주는 대신, 태권도장이나 피아노수업 전까지 남는 시간에 무얼할지 스스로 정하라고 일러줍니다. 그러면 라온이는 유튜브 보기, 독서하기, 연산하기, 영어하기, 바둑두기, 게임하기 등을 매일 달리 순번을 정해서 합니다.


라온이 방 책꽂이 옆에는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라온이가 만든 ‘라온이 스스로 10계명’이 붙어 있습니다.


1. 스스로 유튜브를 본다.

2. 스스로 책을 읽는다.

3. 스스로 태권도장을 간다.

4. 스스로 씻는다.

5. 스스로 논다.

6. 스스로 밥 먹는다.

7. 스스로 쉰다.

8. 스스로 공부한다.

9. 스스로 아빠, 바론이와 논다.

10. 스스로 이 닦고 잔다.

*스스로= 혼자 잘 알아서 하는 법


저는 라온이가 7세가 됐을 때 “라온아, 뭐든 스스로 하는 게 좋아”라고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알려줬습니다. 그 마음의 바탕에는 ‘내 아들이니까 내가 믿으마’ 하는 신뢰를 두었습니다.


라온이는 어려서부터 조심성이 남달랐습니다. 아빠가 보기에 라온이는 어떤 상황을 자기가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말과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괜한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6세 때는 어린이집 담임선생이 정신과 치료를 조심스럽게 권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선 당최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성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우려했습니다.


애 엄마가 어린이집 선생의 말을 제게 전했을 때, 저는 가당찮다고 웃어 넘겼습니다. 아내는 은근 걱정했지만 저는 때가 되면 저절로 말문을 틀 것이라고 했습니다. 되레 혹시 선생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되물었습니다. 집에서 엄마아빠와 놀 때, 놀이터에서 친구들하고 놀 때의 라온이는 밝음과 명랑함을 한시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6세 학기말쯤 드러났습니다.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담임선생이었고, 그 탓에 아이들을 신경질적으로 대한다는 이야기가 여아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우리 귀에까지 들려온 것입니다.


라온이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무섭게 대하니?” “응.” “그래서 말을 안 한 거야?” “응.” 저는 이 사건으로 라온이는 제가 짐작한 것 이상으로 생각이 깊은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 라온이는 라온이의 삶을 아주 잘 가꾸고 살아간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라온이는 7세를 아주 훌륭하게 지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라온이가 너무 달라져 놀랍다고까지 했습니다. 그걸 아내는 태권도 덕분이라고 풀이하지만, 태권도는 라온이 인격을 거들뿐 저는 라온이 천성이 좋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라온이와 저도 장광 씨와 그 아들처럼 갈등하는 시간을 겪을 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대개의 부자지간 통과의례니까요. 그러나 인간은 환경의 산물입니다. 장광 씨는 한번도 아랫사람에게 의견을 묻는 대화법을 배워보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한번도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을 못 해주었다는 겁니다. 장광 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못 배운 피아노를 아들이 배움으로써 자신의 원을 푼다’는 식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패널들은 두 패로 갈립니다. 젊은 패널은 장광 씨의 아들의 마음을, 늙은 패널은 장광 씨의 마음을 백분 이해하겠다고 합니다. 김태현은 양쪽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겠다고 합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나지만 일단 태어났으면 그 아이는 부모와는 완전히 다른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한 배에서 나온 형제도 제각기 다른 품성을 갖고 나는 법인 걸요. 그걸 옛 어른들은 “조물주의 조화(造化)”라고들 했습니다.


지혜로운 부모라면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1945년 8월 15일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소설 <산하>에는 아주 유별한 아빠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이 아빠는 해방된 이틀 뒤 경남 김해에서 서울로 상경합니다. 상경 중에 기차 안에서 아주 어여쁜 한 여인을 만납니다. 이 아빠는 고향에 처와 아들 둘이 있는데도 아랑곳없이 이 여인과 결혼할 마음을 먹습니다. 손재주가 남다르고 수완이 좋은 이 아빠는 단기간에 서울 장안의 번듯한 2층짜리 적산가옥 한 채를 소유하게 되고 결국 미인을 아내로 맞게 됩니다.


그런데 이 미인과 결혼하는 과정이 아주 남다릅니다. 미인이 서류상 총각이라는 걸 확인한 뒤에 결혼하겠다고 조건을 내걸자 번 돈을 갖고 김해로 내려가 처를 안심시킨 뒤, 사업을 벌이려는데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집안 자산을 까막눈 아내 명의로 옮겨준다고 하고서 이 틈에 이혼서류에도 도장을 찍습니다. 이렇게 아내도 모르는 이혼을 하고서 호적을 깨끗하게 만들어 상경, 결혼에 골인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은 그래도 본처였던 여자의 뒤를 계속해서 봐줄 것과 두 아들에 대한 교육 문제 등 아비로서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합니다.


이 사례는 소설 속 이야기이긴 하지만 당시 풍속을 뼈대 삼았다는 점에서 70~80년 전만 해도 비교적 흔한 아버지라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실록 대하소설 <산하>를 읽어보면 우리 사회는 참 빠르게 변해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정말 좋은지는 곰곰 따져보면 잘 수긍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해방 정국 때처럼 백주의 테러와 가장의 무단은 없더라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북으로 쪼개져 있고, 남쪽은 좌우로 심히 분열돼 있으며, 심지어 수도 서울은 광화문과 시청으로 두 쪽 나 있습니다. 아주 성긴 사회를 우리는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라온이와 저와의 갈등은 어쩌면 당연한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때 이렇게 말해줄 것입니다.


“라온아 2024년 7월 17일 제헌절 날 넌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서 킥보드를 타고 아이스크림을 사왔단다. 그날 아빠가 얼마나 기뻤는지 넌 모를 거야.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혼자 사왔기 때문이 아니야. 넌 그때 아파트 문을 나서서 아랫니가 하나 빠진 허연 이를 드러내며 씩씩하게 말했지. ‘아빠, 날 믿어!’ 믿음이란 말을 내뱉는 그 순간 넌 이미 다 컸던 거야. 네 삶은 네 것, 언제나처럼 네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해.”


아마도 훗날 라온이와의 갈등은 아내와 라온이 간 이견을 조정과정에서 생겨난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중재는 원래 잘해야 본전, 못 하면 뺨이 석 대랬습니다. 그렇다고 마눌님을 버릴 수야 있겠습니까. 마눌님 있고 자식 낳지 자식 있고 마누님 낳는 법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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