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이 첫 통지표

by 심지훈

이 글은 라온이 피아노 과외수업 중에 짓는다.


오늘 <그냥 하자 말라> 3장 투명사회 부분을 읽고 있는데, 라온이가 여름 방학식을 하고 생애 첫 통지표를 받아왔다. 통지표와 함께 상장을 받아왔다. 여름 방학 시작이다. 라온이는 일주일 전부터 여름 방학으로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엊그제 <그냥 하지 말라>를 사온 이른 아침에는 달뜬 기분에 6시 40분에 일어났다. 해서 이 책을 라온이와 같이 가 사왔다.


라온이가 오늘 받은 상은 ‘자랑스러운 한밭어린이(책임) 상’. 통지표는 전 3과목 10개 영역 모두 ‘매우 잘함’이다. 상장 내용을 읽어보니 ‘규칙과 질서를 잘 지켰기로’ 준다는 내용이다. 아내에게 상과 통지표를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며 “역시!”라고 했다.


라온이는 어린이집 때도 규칙과 질서를 잘 지키는 상을 내리 받았다.


<그냥 하지 말라>는 기성세대와 지금세대를 가른다. 가르는 기준은 규칙이다. 자동화, 기계화 사회의 지향점은 투명사회다. 투명사회는 규칙 준수를 규범으로 삼는다. 그런 면에서 규칙보다 짬짜미와 유도리가 통념이었던 기성세대는 시대와 맞지 않을뿐더러 틀린 규범을 쫒는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the rule of law”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은 이 “법의 규칙”을 무척 중시한다. 빌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사원 르윈스키와 섹스 스캔들로 세계적 망신살을 뻗쳤을 때도 미 상원은 성역 없다며 “the rule of law”에 따라 이 사건을 처리했다. 클린턴은 대권을 다시 거머쥐는 데 실패했다.


소위 MZ세대는 규칙에 익숙한 이들이라고 한다. 해서 규칙을 우습게 여기는 기성세대와 곧잘 충돌한단다. 선뜻 수긍하기 힘든 대목이다. 과연 요즘 아이들이 규칙과 규율을 어른들보다 잘 지키는가. 나는 아직 잘 못 느끼겠다.


아이가 규칙을 잘 지킨다는 것은 아이가 차분하고 점잖다는 말이 될 것이다. 차분하고 점잖은 아이는 부모 말이나 선생 말이나 귀담아 잘 듣는다. 그런데 아이라고 모두 차분하고 점잖을 수는 없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타고 나는 게 아이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가 규칙을 지킬 수 있도록 부모가 유도하고 계도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 중 하나다.


라온이는 등교 시간이 오전 8시 30분이다. 선생님이 유독 독서를 강조하면서 30분까지 입실해서 8시 50분까지 책을 읽도록 방침을 세웠다.


이 방침이 아니어도 나는 등교 시간 준수를 애당초 라온이에게 일러뒀다. 기본적으로 라온이는 기상시간이 이른 편이라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봤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8시 30분 입실은 초등 생활을 시작하는데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 기본을 선생도 강조를 했다.


초등 1학년 담임선생의 강조사항은 학생을 두고 하는 강조가 아니라 부모를 두고 하는 강조라고 이해해야 마땅할 것이다. 나는 적극 협조하기로 마음먹고, 라온이도 8시 30분 입실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그리 라온이는 1학기 동안 한 번도 지각해 본 일이 없다. 30분에 입실했어도 사정이 있어 그날 읽을 책을 읽지 못한 경우는 있어도 이유 불문하고 지각을 한 일은 없다. 좀 늦으면 킥보드를 이용했고, 그래도 늦겠다 싶으면 차로 데려다 줬다.


규칙은 질서를 위해 존재하되 그 규칙은 억지로 지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시키려고 애써야 옳다. 그런 면에서 라온이는 훌륭한 학생이다. 응당 스스로 8시 30분 입실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이 시간 준수를 당연하게 여겼다.


우리 사회는 이런 규칙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예를 들어 대전은 참 평화로운 도시다. 개인적으로 살기가 참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전은 규칙에도 참 관대한 도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단횡단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내 고향 김천의 어르신들 모습 같아 정겹긴 한데 도로의 폭이 김천은 소폭인 반면, 대전은 대폭이라는 점이 간담을 때론 서늘하게 하기도 하고, 참 어처구니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분들 마음에는 규칙은 고무줄과 같은 것이다.


대전이나 김천 어르신들만 규칙을 이렇게 대하느냐.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대통령부터 대통령 부인 그리고 야당 대표까지 ‘the rule of law’의 개념은 갖추어져 있지 않다. 더군다나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법률가인데도 말이다. 이리 붙이면 그게 정법이고, 저리 붙이면 저게 정법이다. 법은 있되 규칙은 없는 사회가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그런데 <그냥 하지 말라>를 보면, 대한민국은 갖은 인공지능의 힘 덕에 투명사회로 가고 있다. 투명사회는 규칙을 준수하는 사회다. 마냥 좋다고만 할 수 없다.


규칙 준수의 자발성 문제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자각하고 스스로 지키는 것이냐, 남들 지키니까 지키는 것이냐는 감도가 아주 다른 문제다.


‘국룰’이란 게 있단다. ‘국민룰’의 준말이라는데 ‘보통’을 지향하는 요즘 젊은이들 때문에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평균만 유지하자는 심산이란다. 그 때문에 소개팅에 관한 국룰, 결혼에 관한 국룰, 출산에 관한 국룰, 공부시간에 관한 국룰 등이 생겨났단다. 그런데 국룰이 골치 아프게 다양한 것도 문제지만, 국룰의 기준이 실상 보통을 여사로 넘는 것이 문제란다.


사람들은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새 국룰을 한정 없이 묻는다는데, 그 국룰을 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그냥 국룰이 생겨났다면 그 국룰을 관성적으로 따르는 모양이다.


보통을 따르면서 뇌를 잃은 형국이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소개팅 국룰, 결혼 국룰, 출산 국룰 등이 왜 필요한 것인가는 둘째치고 어떤 국룰이 생겨났다면 그 국룰이 합당한 것인지를 따질 생각도 없이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다수라는 점이다.


규칙을 준수하는 사람은 늘어난다는데 동시에 생각이 없는 사람도 급증하는 모양새다. 사회 전반이 로봇으로 인간을 대체하면서 인간이 설자리를 잃어갈 것과는 별개로 인간 역시 그런 정형화된 로봇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이러다간 ‘보통의 무뇌인들 세상’이란 제목의 분석기사가 뜰지도 모른다.


여느 동물과 달리 이성이 있기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감투를 쓴 인간인데, 이제 이 감투를 내려놓아야 할 판이다.


나는 라온이의 생활통지표를 보면서 전 영역 ‘매우 잘함’은 1학년 1학기 동안 라온이 스스로 입실 규칙을 지켰기로 받은 상이라고 생각했다. 라온이의 일상을 지켜본 아비로서 라온이가 받은 ‘자랑스러운 한밭어린이(책임) 상’은 적실하다고 본다.


통지표를 본 피아노 선생님도 오늘은 수업 중에 “매우 잘함 라온!”이라고 추켜세운다. 라온이는 피아노 선생님에 대한 예의도 반듯하다. 선생님이 오기 전에 피아노를 한번 닦는다. 이건 내가 시켜서 하는 일이다. 일종의 규칙이다.


선생님이 오기 전에 피아노를 한번 연습한다. 그리고 선생님한테 자랑할 물건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는다. 이 역시 규칙이다. 라온이의 피아노 수업은 늘 유쾌하게 시작해서 유쾌하게 끝난다.


좋은 규칙은 상대에 대한 바른 예의다.


라온이 피아노 수업 직전 지난 주말 모친상을 치른 곽대훈 의원께서 전화를 주셨다. “대전에서 멀리 조문을 와 주어 감사합니다. 비가 안 와 덕분에 부친 옆에 잘 모셨다는 말을 전하려고 전화했습니다. 시간 내서 한번 봅시다.”


그 어른이 조문객 한 분 한 분께 전화를 돌리고 있는 중이라 생각하니, 그분의 예의야말로 스스로의 엄격한 규칙이라 싶다.


무릇 규칙이란 스스로 지켰을 때 아름답게 빛나는 법이다.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라”는 빳빳한 말이 있다. 이때 빳빳하다는 의미는 딸깍발이의 청렴 정신에 견줄 만하다.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수락 연설에 삽입된 글월인데, 내 깜냥으로는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렸던 최외출 영남대 총장이 소신이 스며든 것이다.


13년 전 최 총장이 박정희리더십연구원 개원 2주년 세미나를 마치고 경주에서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내게 자신의 신조라고 한 말인데, 그게 박근혜 씨 수락 연설의 문구로 나와 ‘복심은 복심인갑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씨의 말은 자기의 말이 아닌 까닭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국정농단으로 옥살이를 해야 했다.

나는 말과 글은 항시 자기 말과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와 조직의 영향력이 큰 사람의 말과 글일수록 꼿꼿한 도덕과 웅숭깊은 진정성이 유유히 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규칙이 선 자, 예의가 선 자의 품격이다. 현대에도 양반은 있다. 가정에서 법을 못 배운 자, 변변찮은 자를 스승으로 둔 자는 사회에 나오면 물 흐리는 미꾸라지가 된다.


내 아들들은 그런 미꾸라지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 깊게 갖는다. 장남 심라온이는 내 아들이지만 참 바르다. 도덕과 진정이 반듯한 규칙을 스스로 지킬 싹이 보인다. 전도유망한 아이라 아비로서 안도한다. 오늘은 라온이와 단둘이 치맥이다. 엄마와 바론이는 이웃에 놀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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