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이 실종 사건

by 심지훈

라온이가 사라졌다. 방과후수업을 마치고 태권도 관장을 만날 시간을 훌 넘겼는데도 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다. 이런 내용을 아내가 메시지로 전해왔다. 바둑교실이 좀 늦게 마쳐서 1분 전에 4층 교실에서 나갔다는 바둑교실 선생의 얘기가 이어 도착했다. 5분을 기다린 뒤 아내에게 물었다. “만났대?” “아니.” 곧바로 관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바로 갈 테니까 제가 도착하면 수업하러 가세요. 그 사이 라온이를 만나면 연락주시고요.” “네.”


학교에 도착하자 태권도장 관장은 여전히 혼자였다. 4층 바둑교실로 올라갔다. 바둑교실 두 번째 시간이 한창이었다. 문을 열고 선생을 찾았다. 아까 내려갔다고 전했다. 이때 처음 알았다. 바둑선생의 말투가 부모를 대할 때와 학원 선생을 대할 때가 천양지차라는 걸. 처음 문을 열고 “라온이가 언제 나갔냐”고 물었을 땐 근성투였다. 날 태권도 사범으로 안 모양이었다. 그러다 라온이 아빠라고 하자 급히 태도를 상냥하게 바꿨다. 나중엔 뒤따라 1층까지 내려와 함께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1층으로 내려와 후문 밖까지 내달렸다. 혹시나 밖에서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라온이는 없었다. 이번엔 냅다 후문 반대편 교무실 교사 1층으로 뛰었다. 설마 하면서도 속으로는 큰일이다 싶었다. 등골이 싸늘해왔다. 교무실이 있는 교사 1층엔 ‘노인일자리’로 고용된 ‘새싹지킴이’가 있다. 그 양반한테 “애가 없어졌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냐”고 했다.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도 어떻게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애가 교실에서 내려왔다면 운동장 어딘가에 있을 테니 찾아보세요.” 이 땡볕에 운동장엔 파리 새끼 한 마리도 없건만. 참 남 일이라고 태평하게 지껄였다. ‘당신도 손주가 있을 텐데….’


그에게 따지듯 물었다. “교무실이 어딥니까? 선생은 누가 나와 있어요?” “2층 교무실에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무실은 왜….” “아저씨랑 할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세상에 애가 없어졌다는데 이 넓은 학교에서 혼자 찾아보라니요. 이 학교 교사 구조를 내가 어떻게 압니까? 학교에서는 학부모를 외부인으로 취급해 학교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없어요. 이 큰 학교에서 무슨 수로 애를 찾습니까. 애가 교내에서 길을 잃었을 때 매뉴얼이 없다는 거잖아요.”


열이 뻗쳐서 2층 교무실로 갔다. 그 사이 집사람에게서 “라온이가 태권도 차에 먼저 타고 있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약속시간에 라온이가 나오지 않자 관장이 혹시나 하고 다른 출입문으로 가본 사이 라온이는 라온이 대로 관장이 보이지 않자 늘상 주차된 태권도 차까지 찾아간 것이다. ‘고 놈… 너무 똑똑하구만.’


일단 안도는 안도, 문제는 문제. 교무실엔 여교사 3명이 회의 책상에 둘러 않아 있었다. “여기 선생님이 있습니까. 잠시 이야기 좀 하시지요.” 여교사 중 한 명이 일어나 응대했다. “학생 아버님이신가요?” “네.” 나머지 여교사 둘은 더위 먹은 소마냥 눈만 껌뻑껌뻑대고 있었다.(손님이 왔으면 엉덩이를 떼고 인사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교사보다 수녀가 어울릴만한 응대 교사는 차분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이 교사는 “혼자서 찾아보라는 얘기는 잘못됐다”고 했다. 그런데 그뿐이다. 새싹지킴이의 잘못된 태도가 학교를 대표하는 당직교사로서 도의적 잘못으로 이어질 기미가 없었다. 새싹지킴이의 응대가 잘못됐다고 할 때는 학교나 당직교사의 잘잘못과는 무관하다는 태도였다. 나는 유체이탈 화법을 쓰시면 안 된다고 짚어줬다. 이건 근본적으로 학교의 문제라고 꼭 집어줬다. “일용직 아저씨가 무슨 권리 권한이 있겠습니까. 그 아저씨 태도는 그렇다 치고 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 대응 매뉴얼이 없다는 점은 학교의 문제입니다. 이걸 교장과 상의해서 마련하셔야 합니다.”


더불어 또 하나 시정할 점을 일러줬다. 교사 출입문 잠금장치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이들 학습권과 교사 안전을 이유로 문마다 바깥쪽에선 비번을 알아야 들어갈 수 있고, 안쪽에서는 버튼을 누르면 열리는 자동문을 설치한 건 지난 5월의 일이었다. 새 교장이 오고 이 문을 달고 이 문들이 이전처럼 활짝 열려 있으면 교장이 새싹지킴이를 보고 “왜 이상한 사람을 자꾸 들여요!”라고 하는 장면을 수 번 봤다. 문제는 교장이 지목한 ‘이상한 사람’이 아이들 등하교를 돕는 학부모나 조부모였다는 점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교장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기까지 했다. ‘이 양반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라온이 실종 사건’을 계기로 같이 해줬다.


응대 교사는 차분히 호응을 잘했다. 이 교사가 선생보다 수녀가 더 잘 어울린다고 느낀 것은 생긴 꼴도 수녀 같을 뿐 아니라 상대를 대하는 품성 또한 수도원의 수녀처럼 차분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교무실 옆 교장실을 가리키며 “교장선생님이 교장실에 계신다”고 했다. “제가 직접 말씀드려요?” 시간을 보니 어느새 라온이가 태권도장에서 돌아올 시간이었다. “전화번호를 남길 테니, 교장 선생님하고 이야기가 잘 안 되면 저한테 전화를 주세요. 이야기가 잘 되면 결과를 문자로 알려주시면 서로 좋겠지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라온이가 태권도장에서 돌아왔을 땐 아무 말도 안 했다. 이 일은 라온이의 문제가 아니니까 할 필요가 없었다. 15분쯤 지나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응대 교사가 결과를 알려주려고 한 모양이다 싶었다. 교장이란다. 교장도 지킴이 응대가 잘못됐다고 사과했다. 그건 매뉴얼을 마련하시면 좋겠다고 했다. 그보다 이왕지사 교장선생한테 할 말을 하겠다고 했다.


“아이와 선생 안전을 위해 잠금장치를 단 건 좋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부모도 외부인으로 규정하고 있잖습니까. 담벼락에 걸린 ‘외부인의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현수막과 학부모도 아이 하교시간에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게 한 점을 보면 그렇잖아요. 이건 학교의 대응방식이 참 잘못됐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이들 하교 10분 전에는 학부모들 출입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문을 개방해주는 것도 큰 틀에선 아이들 학습보장 아닌가요? 요즘에는 하교를 돕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많잖아요. 조금만 신경 쓰면 서로 고마울 일인데 일방적으로 문을 닫아놓으니 부모로서 기분이 좋을 건 없습니다. 2학기부터는 하교 10분 전에는 문을 개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세심히 살펴서 조치하겠습니다.”


이때 문은 라온이가 등하교하는 쪽문이다. 이 방향 교사 문을 일방적으로 닫아버림으로써 아이 등하교를 돕는 학부모가 교사를 괜스레 빙 둘러 가는 불편함이 있다.


내가 교장과 통화하면서 ‘저는’이 아니라 ‘나는’이라고 부러 말한 것은 이 교장의 잠금장치 조치가 학부모에 대한 예의라고는 씨알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학기 때 어찌 하나 두고 볼 것이다. 교장실 전화번호를 저장해 뒀다. 이런 사소하고도 짜증스러운 민원을 무시한다면 나는 교장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오늘 라온이 실종 사건이 해프닝인 걸 알면서도 구태여 교무실까지 뛰어 올라간 것은 이건 비단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라. 이 염천(炎天)에 교사를 헤매고 있을 초등 1학교 아이 모습을. 그게 10분이건 20분이건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상상해 보라. 미로 같은 복잡한 교사에 갇힌 아이의 심정을. 그건 악몽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좀 전에 아내에게 교무실을 찾아간 이야기, 교장과 통화한 이야기를 했더니 “잘했다”면서도 “부드럽게 말했겠지?”라고 묻는다. 문제를 바루는 건 방법상의 일일 것이다.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의에 어긋나게 처신하지는 않았다. 열정적으로 말했다. 진심을 담아. 나는 교장에게 말했다. “아이들 하교 10분 전마다 학교에서 미리 쪽문을 개방해주면 학부모들이 참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고 보면 ‘문제를 바루는 건 방법상의 일일 것이다’는 말은 수정돼야 한다. 기실 세상의 크고 작은 숱한 문제들의 해법은 방법 이전에 관심과 배려, 즉 마음씀에 달려 있다. 학교에서 미리 마음을 잘 썼더라면 잠금장치 문제를 갖고 미주알고주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염천에 등골 땀줄기는 여사인 줄 알아도 냉기가 흐를 줄은 몰랐다. 에어컨 냉기와는 다른 써늘함, 아이 키우며 겪는 진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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