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여행

by 심지훈

라온이와 단둘이 일주일간 여행을 오게 됐다. 여긴 집과 가까운 탄방엠블병원. 그러니까 병원으로 여행온 것이다.


지난주 내내 고열로 고생하다 개학하던 날 새벽 가래 끓는 소리가 심해졌다. 아내는 열은 떨어졌으니 학교는 보내도 되겠다고 했지만, 나는 폐렴으로 악화됐을 것 같아 학교를 안 보내고 병원부터 찾았다. 입원을 할지도 몰라 아내에게 반차를 쓰고 동행토록 했다.


의사 왈 “입원해야 합니다. 마이코플라즈마 바이러스가 원래 잘 낫지 않거든요.” 그래 되물었다. “며칠 정도….” “일주일은 입원치료해야 겠어요.”


나는 라온이 입원 통보를 받던 날 아침, 짐을 챙기러 집으로 오면서 후끈거리는 도심을 보면서 '여행'이란 낱말을 떠올렸다. 집 떠나면 고생, 집 떠나면 다 여행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래, 올 여름은 여름 휴가를 두 번 간다셈 치자.’


다행히 없다던 1인실이 곧 나왔다. 병실도 새로 마련한 깨끗한 것으로 배정받았다. 병원에서 자는 일의 고역은 매트리스가 오래돼 밤새 뒤척이다 피곤에 절어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데, 다행히 매트도 새것이었다. 에어컨도 빵빵, 전망도 좋았다.


그러나 공용으로 쓰는 병실에서 일주일 간 지내려면 방 구석구석을 잘 살피는 일은 필수다. 욕실 배수가 시원찮은 경우도 있고, 인터넷이 안 잡히는 경우도 있고, 티브이 신호가 안 잡히는 경우도 있고, 냉난방이 수시로 꺼지는 경우도 있고, 냉장고 냉장 혹은 소음 문제도 있고, 청소 불량 문제도 있다.


현대 병원은 이처럼 소소한 문제를 산적하고 있지만 친절한 태도로 이것들의 많은 부분을 상쇄시키고 있다. 반대로 천차만별인 보호자의 스타일 때문에 많은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처럼, 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유별난 사람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에어컨이 뚝 꺼지는 문제를 하루에 두 번 겪어 염천에 생고생하는 건 아닌지 걱정한 일이 있고, 티브이 신호가 잡히지 않아 라온이 좋아하는 <신비 아파트>를 못 보여줄 뻔도 했고, 입원 이튿날엔 천장 공사를 해 석면 가루가 뽀얀 바닥에서 한동안 지내야 했다. 청소를 했다는데 나도 가로늦게 발견한 것을, 가뜩이나 눈 어두운 청소 아주머니들 눈에 잘 보일 까닭이야.


600번. 간호사실을 통하면 대응은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그 소소한 문제들이 단번에 해결된 적은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없다. 시설 문제는 친절한 시설팀 직원이 바로 달려왔고, 청소 문제는 청소 아주머니가 곧 찾아왔지만, 시원찮은 티브이 신호 문제는 결국 내가 해결했고, 석면 가루도 마지막에 내가 닦고 말았다.


그러면서 알았다. 친절한 병원 사람들의 친절은 기계적이고, 일 역시 기계적으로 처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면서 알았다. 그들은 이 놈에 친절 바이러스 때문에 지쳐 있다는 사실을.


이번 입원 생활의 압권은 밤이었다. 에어컨 소음이 공장 기계 소음 같아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심지어 새벽 2시에는 내 불만을 알아듣기라도 한 양 에어컨 전원이 꺼져버렸다. 다행히 오작동이라 다시 가동이 됐지만 소음은 어쩌지를 못했다. 다음날 아침 천장 공사로 찾은 시설팀 직원이 에어컨 소음 문제를 이렇게 설명해줬다.


“이게 중고 에어컨을 사다가 달아놓은 거라 그렇습니다. 기존방은 시스템 에어컨이 작은 데다 방 위치에 따라 실외기가 햇볕을 바로 쬐고 있으면 바람이 덜 시원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 방은 시원하게 잘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천장 공사로 석면으로 뒤덮인 병실 바닥을 본 데다, 시설팀 직원의 말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간호사실을 찾아가 방을 바꿔줄 것을 요구했고, 곧 새 방이 나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에어컨 소음을 체크하고 옮기겠다고 했다. 그리 방을 옮겼는데 라온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에어컨을 풀로 올렸다.


그런데 이번에 바람이 시원찮않다. 재빨리 다른 결정을 내렸다. 라온이는 소음이 심한 에어컨 소리에도 잘 자니 차라리 내가 참자 하고 도로 있던 방으로 옮겨 왔다. 그래 와서 보니 이곳이 천국이다 싶었다.


소음도 문제지만 바람 방향도 문제여서 시설팀 직원에게 바람 방향 설정하는 법을 배웠다. 바람을 상향 조정하니 두 가지가 완화됐다. 추위와 소음. 그리 입원 사흘 만에 잠다운 잠을 잤다.


이쯤 되면 이게 무슨 여행이냐, 그냥 병실 일기지 할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이 맞다. 라온와 단둘이 지내면서 포도 탈출게임, 포켓몬 메모리게임, 동화책 읽기, 동시 읽기, 편의점 가기, 커피숍 가기, 바닥에 누워 맑은 하늘 보기 등을 하는 소사는 여행가서도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긴장의 끈을 좀 늦추고 쉴 수 있어 좋다. <산하2> <천사와 악마1> <전쟁과 사랑-사치코이야기>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1>을 입원하던 날 챙겨왔는데, 손 가는 대로 읽는 재미도 좋다. <최보식 기자의 직격 인터뷰-얼굴>은 당근으로 샀는데, 아내가 찾아다주어 읽게 됐다. 첫날은 최규하 대통령 인터뷰를 읽었고, 어젯밤에는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 인터뷰를 봤는데, 병실 여행의 고생은 고생 축에도 못 낀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내외가 백담사로 유배갔던 첫날, 절방에 불을 지피니 온방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차 한잠도 못 잤다는 이순자 여사의 회고를 보면서 천장의 공장 기계음 같은 에어컨 소리가 순하게 줄어드는 기적을 경험했다.

이순자 여사는 말한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떻게든 살아요. 좀 힘들 수는 있어도 다 적응하고 사는 게 인간이죠.”


<얼굴>은 1997년에 나온 책인데, 돌연 <전두환 회고록>을 검색해 봤다. 이순자 여사 회고록도 검색해 봤다. <전두환 회고록>은 2017년 발간 당시부터 문제작에 올라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 무렵, 이 책을 꼭 소장했으면 하는 분이 있었다. 내 보이차 스승 양보석 선생이었다.


국회출입 기자는 입수했겠다 싶어 수소문한 것이 불교방송 이현구 선배였다. 선배는 흔쾌히 책을 보내주었다. 양보석 선생님은 희귀서 <전두환 회고록>을 소장하고 있다. 전3권인데, 1권은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살 수 없다. 풍문에는 500만원에도 거래된다는 얘기가 있다.


1996년 이순자 여사 인터뷰를 보고 알았다. 이 여사도 회고록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검색해 보니 <전두환 회고록>과 동시에 발간됐다. <당신은 외롭지 않다>. 나는 <전두환 회고록>보다 <당신은 외롭지 않다>를 소장하고 싶어졌다.


이순자 여사는 회고록을 직접 썼다. 그리고 직접 쓰기 위에 엄청 읽었고 무지 썼다. 이 여사는 남편 전두환은 정직하고 자기 희생이 남다른 분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인터뷰를 보면서 얼마 전 본 외국학자의 글월이 떠올랐다.


“우리는 일부 사실과 많은 느낌을 뒤섞어 말하고 있다.”


화자의 말들은 그 누구 것이라도 신뢰하기 힘들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이순자 여사처럼 엄청 읽고 쓴 뒤 내놓은 이야기라면 달리 평가받아야 옳다.


5공 청산과 4공 청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노태우 시대를 외눈으로 보고 있다. 정치놀음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국민 지력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참, 6.29 선언(직선제 도입)의 숨은 공신이 이순자 여사라는 사실을 <얼굴>을 보고 알았다.


이번 여행은 오는 토요일 오전이면 끝난다. 다음 <얼굴>은 ‘김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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