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2학기에 접어들면 아이들은 한글 겹받침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즈음 시작하는 게 학교마다 편차가 있지만 받아쓰기다. 겹받침은 초등 1학년이 익히기에는 다소 어렵다 싶지만, 그만큼 1학기에 비해 2학기 난이도는 좀 높아진다.
라온이의 경우 한글 겹받침 첫 시간에 발음 요령을 배워왔다. 담임선생님이 매일매일 알림장에 친절하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소상히 알려주기에 아는 것이다. 언론사 상식시험에 내도 될 만큼 수준이 있다.
*겹받침 발음 요령
-겹받침에 ‘ㄱ’이 들어가는 경우는 ‘ㄱ’으로 받침 읽기
(예) 맑다- [막따]로 읽기
-겹받침에 ‘ㅁ’이 들어가는 경우는 ‘ㅁ’으로 받침 읽기
(예)삶다-[삼따]로 읽기
-겹받침에 ‘ㄱ’ 또는 ‘ㅁ’이 아닌 다른 자음들은 대부분 앞에 있는 자음으로 받침 읽기
(예) 넓다-[널따], 짧다-[짤따], 얇다-[얄따]로 읽기
단, 예외로 ‘밟다’는 [밥따]로 읽어요.
문제로 낸다면 예외 조항의 ‘밟다’의 바른 읽기가 될 것이다.
보시다시피 초등 1학년 겹받침 공부는 녹록지 않다.
받아쓰기는 어떨까? 받아쓰기 역시 1학년 아이가 단번에 다 맞히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위해 월화수 학교에서 선생님과 사전에 연습하고, 목요일 시험 전날 집에서 부모가 한 번 더 최종 점검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 총 16회(총 160문항)로 짜인 받아쓰기 급수표는 아이 가방에 한 장, 집에 한 장 두도록 했다.
연습 때와 실제 받아쓰기에선 선생님이 단어를 천천히 끊어서 읽어줌으로써 띄어쓰기 요령을 익히도록 돕는다. 문장부호도 “마침표” “느낌표”처럼 소리로 알려 준다.
앞서 라온이 담임선생님은 여느 선생님과 달리 1학기부터 등교 전날 밤 책 1권을 가져오도록해 아침 독서(오전 8시 30분~50분)를 별도로 마련했다.
하교 후엔 하루 3권씩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적도록 권장했다. 1년 동안 80권 이상 읽고 감상문을 적은 아이에게는 연말 시상을 약속했다.
독서에도 단계를 두었다. 1~20권까지는 책 제목과 기억 나는 단어 3개만 적도록 했다. 21~40권까지는 책 제목과 하나의 문장으로 감상을 적도록 했다.
41권째부터는 책을 읽고 느낀 점, 기억에 남는 문장, 책을 읽고 처음 알게된 점, 주인공에게 해주고 싶은 말 등 5가지 감상 유형을 제시하고 3줄 미만의 감상문을 자유롭게 적도록 했다.
받아쓰기 급수표를 보면 기분에 관한 구절과 문장을 시작으로 정확한 낱말, 그림일기에 필요한 표현, 감동의 표현, 자기 생각 표현, 문장 읽고 쓰기, 느낀 점 표현 등으로 8가지로 나누었다. 16회의 유형을 2가지씩으로 나눈 것이다.
주목할 점은 1회차 마침표(.) 다음 2회차는 쉼표(,)가 아니라 느낌표(!)가 강조된 문제를 배치했다는 것이다.
문장은 마침표로 맺는다는 건 글쓰기의 제1원칙이다. 라온이 담임선생님은 문장은 잘 느껴 써야 한다는 걸 글쓰기의 제2원칙으로 두었다. 쉬기(,)보다 느끼기(!)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포착한 건 놀라운 일이다.
<논어>에 보면 ‘賢哉, 回也!(현재, 회야!)’하며 시작하는 문장이 있다. 한자는 우리말 어순과 달리 영어와 중국어 어순과 같다. 이때 ‘賢哉’가 감탄사다. 우리말로 ‘아!’ ‘오호!’ 같이 느낌표를 동반한 표현이다. 회(回)는 공자의 제자를 가르킨다.
그다음 주목할 점은 동시의 단골인 의성어, 의태어가 들어간 구절과 문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리듬을 살려 재미있게 받아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선생님의 재치가 엿보인다.
라온이는 어제 2회차까지는 연속 100점을 받아왔다.
1회차 문제는 아래와 같다.
-둥실둥실 떠 있습니다.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씽씽 지나갑니다.
-귀여운 고양이들
-활짝 피었습니다.
-매미가 맴맴
-울긋불긋 물들었습니다.
-나뭇가지를 흔들어요.
-병아리가 삐악삐악
-바스락 소리가 났다.
‘떠 있습니다.’ ‘맴맴’ ‘삐악삐악’은 ‘떠있습니다.’ ‘멤멤’ ‘삐약삐약’으로 잘못 쓸 확률이 성인들도 높다.
2회차 문제는 아래와 같다.
-노랫말이 떠오르지 않아.
-얼음처럼 꽁꽁!
-뜀틀에 올랐어.
-보석처럼 반짝반짝!
-번개처럼 찌지직!
-와장창 무너졌어.
-화산처럼 우르릉 쾅쾅!
-쨍그랑 깨졌다.
-복슬강아지 같잖아.
-사랑도 많은 아이야.
‘노랫말’ ‘번개처럼’ ‘쨍그랑’ ‘복슬강아지’ ‘같잖아’는 ‘노래말’ ‘번게처럼’ ‘쨍거랑’ ‘복설강아지’ ‘갔잖아.(갔잔아.)로 잘못 쓸 확률이 높다.
나는 어제 아침 등굣길에 라온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라온아, 오늘 받아쓰기에서 한두 개 틀린다고, 더 많이 틀린다고 속상해하지 마. 그럴 필요 없어. 시험은 제대로 알라고 보는 거니까. 틀려서 더 잘 기억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안 잊는 게 진짜 배우는 거야. 그걸 한자로 전화위복이라는 거야. 화가 굴러서 도리어 복이 된다는 뜻이지. 예를 들어 보자. 아빠랑 라온이랑 다이소에 레고를 사러 가기로 약속했어. 그런데 아빠가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된 거야. 그럼 라온이는 무척 속상하겠지. (응.) 그런데 그날 오후에 외삼촌이 라온이에게 레고 선물을 사온 거야. 그런데 이 레고는 아주 좋은 레고인 거지. 만약에 아빠랑 다이소 가서 저렴한 레고를 사와서 했다면 외삼촌이 사온 비싼 레고가 덜 재미있겠지? 한번 해봤으니까. (응.) 그런데 아빠랑 다이소를 안 다녀왔기 때문에 외삼촌이 사온 좋은 레고가 더 재미있는 거야. 그런 걸 전화위복이라는 거야. 받아쓰기 틀린 것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돼. 알겠지?”
“응.”
“라온이는 차분하고 똑똑하니까. 정신 딱 차리고 쓰면 또 100점 받을 거야.”
“응.”
오늘 아침 등굣길엔 이런 대화를 나눴다.
“받아쓰기 100점 심라온, 모두 16번 시험을 보는 건가?”
“응. 16번.”
“겨울방학 때까지 16번을 모두 볼 수 있나?”
“응. 다 보는 거야.”
“그럼, 16번 다 100점 받으면 아빠가 상을 줘야겠다. 아주 대단한 일을 한 거니까.”
“1번 틀리면?”
“그러면 금은동상으로 나눠야겠네. 16번 모두 100점 맞는 건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이니까. 아빠가 상을 생각해서 말해줄게.”
“응.”
라온이 독서기록장을 보면 한 학기 만에 문장력이 일취월장했음을 알 수 있다. 데이터상으로는 85권째 이후 라온이의 ‘이야기샘’이 폭발했다. 라온이의 감상문은 줄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물론 띄어쓰기 맞춤법은 무시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샘이 폭발했다는 점이 글쓰기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읽기 실력도 부쩍 늘었다. 엊그제는 바론이에게 글밥이 가득한 책을 제법 글맛을 살려 여유롭게 읽어줬다.
라온이는 행운아다. 훌륭한 담임선생님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