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쓸모

by 심지훈

올가을에는 유독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 것은 내 인생에서 초유의 일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여행은 ‘고생(苦生)’의 동의어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매김은 어릴 적 경험이 습관처럼 각인돼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당신 친구와 또 혼자 하는 여행은 툭 하면 잘 떠나셨으면서도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다니는 여행은 거짓말 좀 보태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거짓말을 좀 보탰다’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 회사의 가족 동반 하계휴가 때 무주를 갔다가 남들과 달리 하루 만에 돌아온 일이 내 유년시절 여행의 두 번째요,


초등 3학년 때 어머니가 회사 교육연수차 서울을 갔을 때 연수 마지막 날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아버지 친구를 만날 심산으로, 또 어머니와 함께 내려올 요량으로 겸사겸사 서울구경을 갔다. 이 일로 지하철을 생전 처음 타보고 아버지 친구분이 비싼 회를 사주겠다는 데도 구태여 저렴한 짜장면을 한 그릇 먹겠다 한 것이 내 유년시절 최초의 여행이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봄에는 만날 동네 흙먼지를 먹어가며 친구들과 전봇대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숨바꼭질을 했고, 여름에는 직지천이나 방아치(재) 내에서 피라미를 잡거나 ‘남미구’에서 수영을 했다. 가을에는 뒷산에 올라 밤 호두 꿀밤을 밥 먹듯이 주웠고, 겨울에는 직지천에서 스케이토(썰매)를 하릴없이 탔다. 실은 이것들이 요즘 유행하는 여행, 소위 ‘촌캉스’인데, 그 때문인지 여행을 모르고도 그것에 대한 불만이나 특별한 갈증 없이 잘 지냈다.


결혼하고 신혼 초 아내와 여행을 한창 다닐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래, 너 어려서 못해본 거 실컷 하고 다녀.” 어머니가 생각해도 여행에 관한한 미안하셨던지 여행 좋아하는 아내 만날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씀을 수 번 하셨다.


어머니 말씀이 아니어도 내 여행은 전적으로 아내 덕분으로 이뤄졌고 이뤄진다. 아내는 연애 적부터 여행 일정을 혼자 짰다. 짐, 방문지, 숙박소, 음식점, 기차표, 비행기표를 전적으로 아내가 마련했다. 나는 그저 몸만 가든지, 오가며 운전을 하면 됐다. 이런 방식의 여행은 두 아들을 얻고 더 굳어졌다.


그런데 내게 여행은 웬만해선 달뜬 기분을 주지 않는다. 잠은 집에서 자는 게 그중 편하고, 사 먹는 음식은 금세 흥미를 잃는다. 새 장소라고 해 봐야 거기서 거기여서 감흥이 없다. 이게 촌캉스를 제대로 맛보고 자라서인지, 내가 너무 촌스러워서인지 무지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게 여행은 성가신 일 중 하나다.


여행이 성가시다고 느낀 건 내가 여행이란 걸 처음으로 인지한 서른 살 때였다. 신문사 스토리텔링연구원으로 발령나고 1년 내내 툭하면 당일치기나 1박 2일 여행을 떠나야 했다. 여행이 뭔지도 몰랐던 내게 여행은 곤혹 그 자체였다. 경북도내 관광지는 거개가 내가 나고 자란 고장과 그 모습이나 고풍이 비슷해 산뜻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여행은 나와는 맞지 않는구나’라고 30년 만에 처음 알게 됐다.


그나마 서울 성락원과 담양 소쇄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민가정원 중 하나인 영양 서석지는 큰 감흥을 주었다. 문 앞에 선 훤칠한 은행나무와 실내 조경이 참으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명품명소란 인상을 주었다. 서석지에서는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서석지가 주는 고유의 안락함 평안함 고즈넉함은 여느 관광지보다 울림이 컸다. 원래 고요한 것이 분란한 것을 능히 이기는 법이랬던가.


그렇다. 나는 인공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그리고 가공된 장소와 조형물에는 별 취미를 갖지 못한다. 워낙에 촌놈으로 살아와 자연적인 것이 그저 좋다. 말하자면 태곳적 본능 같은 것이 아주 드물게 꿈틀거리는 것이다. 주위의 이름난 것들은 모두들 하나 같이 얼마나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것들인가.


이런 내가 올가을에 여행 발심이 동한 것은 전적으로 지독한 여름 때문이었다. 심신이 많이 지쳤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여름 내내 에어컨 곁에만 있었는데도 유난히 혹독했던 여름은 진을 어지간히 빼놓았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찾아올 즈음 아내가 여행 일정을 공표했다.(아내의 여행 일정은 ‘짜다’ ‘잡다’ ‘내다’ 등의 동사로는 분명 태부족한 구석이 있다.) 시월 첫째 주는 1박 2일 태안 바닷가 카라반을, 둘째 주는 여수 3박 4일 코스를 정했다.


바닷가 카라반은 처음이라 좀은 설렜다. 왜 그동안은 산속으로만 다녔지 하는 우매한 생각이 없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서울서 온 20대 후반의 연인과 우리 가족이 학암포 백사장에서 불꽃놀이를 즐긴 것이었다.


우연히 만나 잠시 함께한 그들은 우리 아이들을 무척 예뻐했다. 자신들의 폭죽을 나눠주며 같이 하자고 했다. 아이들이 몇 살인지도 물었다. 그들은 카메라를 세워놓고 폭죽놀이를 영상으로 담으려 했다. 뒤에 가서 보니 앵글 밖으로 두 사람이 나가 있어 바로잡아 주었다.


그들이 하는 양이 아름다워서 선물을 하나 해주었다. 퍼뜩 생각난 게 와인. 5분 거리의 편의점으로 가서 부담스럽지 않은 와인을 한 병 사다가 선물했다. “두 분 꼭 사랑의 결실을 맺어서 우리 아이들 같은 예쁜 자녀를 가지세요. 파이팅입니다.” 남자가 말한다. “네. 꼭 그렇게 하려고요.” 여자가 당황한 듯 어설피 웃는다. 끝에 “파이팅입니다.”는 뺄 걸 그랬다. 헌데 사랑을 하려면 굳센 힘을 내야 한다. 나는 그 남자에게 애오라지 진심을 던졌다.


카라반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남자가 좋아 죽네. 그런데 여자가 똑 부러지겠던데. 결혼해 살면 남자가 잡혀 살겠어.” 아내의 말. “응. 여자가 분명해 보이더라. 여자는 결혼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던데.”

나는 실없이 웃었다. ‘분명한 거야 당신만하려구요. 권 여사님.’ 어두워서 아내에게 내 표정이 걸리진 않았다.


여수는 조심스러운 일정이었다. 태안에서 불꽃놀이를 하던 백사장을 이튿날 오전 다시 갔다가 나오면서 상대 차와 충돌 일보 직전의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그야말로 간담이 서늘하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 로또 한번 맞았다! 오! 주여!”


티(T) 자 길에서 나는 우회전을, 상대 차는 빠르게 직진해 오는 중이었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달렸거나 아니면 좌회전을 했다면 내 생애 최초의 자동차 사고에 맞닥뜨렸을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나는 생각했다. 하늘이 한번 살려주었구나. 나만 살린 게 아니라 아내와 내 사랑하는 두 아들도 함께 살려주었구나.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여수행은 무사히 갔다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 안전운전이 내겐 1순위였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 그 모습을 담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올해 다섯 살 된 바론이는 얼마 전부터 여덟 살 형과 둘이서도 의좋게 오랫동안 잘 논다. 이동 중에 자꾸만 안아달래서 힘들었지만, 형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 한시름 든 여행이었다.


여수에서는 아이들 덕분에 유람선을 처음 타봤다. 서울에서는 세계불꽃축제로 100만이 몰릴 거라는 예고기사가 뜬 밤이었다. ‘서울선 또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쏟아져 나올 것인가.’


유람선에선 10분간 불꽃쇼가 펼쳐졌다. 깜깜한 밤바다 위에서 펼쳐진 10분간의 폭죽쇼. 기막힌 밤, 환상적인 밤이었다. 사방이 트여 폭음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 많은 인파 뚫고 세계불꽃축제를 가는 사람들의 수만큼의 불꽃을 우리는 여수 밤바다에서 올려다봤다. 아이들도 아빠보다 40년, 37년 먼저 타본 유람선에서 불꽃쇼를 잘 즐겼다.


우리는 아쿠아리움 관람을 끝으로 저녁에 대전에 도착했다. 여행 기간 내내 아빠는 ‘꼴찌기상’이었다. 오늘 아침엔 ‘일등기상’을 했다. 원기를 충분히 회복했다.


여행의 쓸모, 아내의 타이밍은 베리 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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