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여름 휴가로 대전 만인산자연휴양림을 다녀왔다. 지난 6월엔 옥천한옥체험관을 다녀왔다. 모두 집에서 1시간 남짓인 곳들이다.
우리 가족이 장거리 여행 대신 근거리 여행을 즐기는 건 순전히 에너지 때문이다.
부모가 돼 아이 하나 키우는 일은 거대한 역사(歷史)를 세우는 것이다. 하물며 오롯이 부부의 힘만으로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일은 거대한 역사 기둥 둘을 세우는 것이다. 에너지가 만만찮게 든다.
맞벌이 부부라면 아이(들)에게 쏟을 에너지를 곧잘 돈으로 충당한다. 일찌감치 학원을 돌림으로써 부모의 시간과 아이의 시간은 이원화된다. 엄마아빠의 사랑이 한창 필요로 할 때 아이들은 저간의 사정도 모른 체 외돌리는 것이다. 부모는 딱하고 아이들은 불쌍한 게 요즘 세태다.
나는 일찍이 오롯이 부부의 힘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규칙을 가졌다. 자기 자식 키우느라 골병든 노부모가 무슨 죄가 있어 손주(들)까지 떠맡아야 할 것인가. 아무래도 세상이 얄궂게 미쳐 돌아간다 싶었다.
뾰족수를 내야 했다. ‘재택근무하는 정규직’으로 직장을 꿰찬다는 계획은 30대 초반 첫 신문사를 떠나면서 가졌다. 그리 아내는 공직생활을, 나는 재택근무하는 정규직으로 7년을 살았다. 하나 우리 풍토에서 나와 같은 위치는 늘 공격과 시기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7년 내내 특혜 시비에 시달렸다. 그걸 방어하는 수는 단순했다. 건실한 결과를 보여주는 거였다.
그러나 시비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당사자에겐 기운을 흐리는 일일 수밖에 없다. 또 인간은 기대서 서는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는 스스로 홀로 서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게다가 직장은 아무리 사람을 우대한들 하나 같이 실력과 에너지를 후려쳐가는 곳이 아닌가.
사람 인(人) 자의 갑골문은 두 팔을 벌려 홀로 선 모습이다. 사람은 그리 온전히 제 실력으로 홀로 설 수 있어야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기대서야 한다는 건 후대가 만든 말장난에 불과하다.
마흔셋에 다시 한번 직장을 그만둔 것은 나로서는 ‘홀로서기’의 마지막 수이자, 아이들에게 온전히 에너지를 쏟기 위한 딴엔 ‘고단수’였다.
어중간하게 직장을 부여잡고 이쪽도 누리고 저쪽도 누리는 얕은수로는 건강한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 아내가 공직자로 있고 가계 빚이 없다면 아이들이 저들 스스로 이제 혼자 할 수 있다고 할 때까지 묵묵히 페이스메이커로 함께 달려도 좋다. 그게 부모로서 가져야 할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기본을 사회생활하면서 숱한 선배들로부터 듣고 배웠다. 내가 30대 때 “그때 줘야 할 사랑을 줄줄 몰랐다”는 고백은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흔한 반성이었다.
선배님들은 내가 아이들과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참 잘한다”고 “정말 잘하는 것”이라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배 이상 에너지가 든다. 가만 원인을 따져보니 ‘자유의 침해’ 때문이다. 자유의 저해는 과도한 에너지 낭비로 이어진다. 이미 내 몸은 나 혼자 굴러가도 때론 버거운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이들은 자꾸만 아빠의 몸과 정신을 자기들 스케줄에 맞추라고 부추긴다.
지쳐있을 때 이 신호는 기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정신을 혼몽하게 만든다. 정말 지쳤을 땐 아이들이 “놀자”며 팔목을 잡아끌려고 고사리 같은 손을 갖다만 대도 독거미가 달라붙은 양 소스라쳐 뿌리치게 된다. 이 경험이 한 번도 없다면 부모 노릇 제대로 안 한 거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지치면 일종의 귀소 본능처럼 먼 곳을 보게 되고 먼 산을 바라보게 돼 있다. 떠나고 싶은 충동이 왕왕 드는 것이다. 그런데 20~30대처럼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면 필시 후회막급이다.
장거리 여행은 동에서 서로 가면 시차가 발생하고, 남에서 북으로 가면 계절이 뒤바뀐다. 이들 격차는 곧 스트레스가 된다. 우리 뇌가 그리 생겨 먹었다. 때문에 장거리 여행은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로울 때 떠나는 게 좋다. 아니면 생각이 빈약한 철부지 때나 하는 것이다.
아이들 키우는 부모는 뒤를 봐야 한다. 늘 항상성(恒常性)을 염두에 둬야 한다. 떠날 때의 즐거움은 잠시지만 돌아올 때의 여독(旅毒)은 자칫 이어지는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 과유불급의 우(愚)를 범하는 것이다.
부모들의 착각 중 하나는 아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가면 무조건 좋아하는 줄로만 안다.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을 그중 좋아한다. 때문에 여행이라면 가까운 곳을 더 선호한다. 차로 2시간만 이동해도 아이들은 지루해한다. 물론 여행지에 도착하면 금세 즐거움을 되찾지만 ‘즐거움 총량의 법칙’에 따르면 1시간 내 코스를 가장 좋아한다. 지루하기도 전에 혹은 지루해질 만하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호텔만 데려가면 가장 좋아한다 싶고 워터파크만 데려가면 가장 좋아한다 싶지만, 이 역시 부모들의 대단한 착각이다. 아이들은 물놀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고, 집을 떠나 하룻밤 묵는 일은 호텔이 아니어도 복층룸이나 한옥도 참 좋아한다.
호텔과 복층룸, 호텔과 한옥 중 어느 게 더 좋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십중팔구 엄마아빠와 함께 하는 지금 그 공간을 고민도 않고 지목한다. 결론적으로 부모들은 값비싼 호텔과 워터파크가 돈값을 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착각하지만, 아이들은 돈값과 무관하게 그저 엄마아빠와 함께 여서 좋아하는 것이다. 내 말이 안 믿기거든 당장 실험을 해 보시라.
나는 아이들에게 내 자유를 잠시 봉인하더라도 자유의 위대한 맛을 선보이고 싶고, 내 에너지를 빼앗기더라도 생기를 보태고 싶다. 그런 터는 대자연이면 좋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름 휴가 땐 집에서 50분 남짓 이동해 숲속에 들어가 하룻밤을 잤다. 숲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산에서 흐르는 물이 콸콸대는 숲속 계곡에서 실컷 놀았다. 워터파크의 약품처리된 값비싼 고인 물에 비할 바일까. 계곡물은 무료인데다 저절로 흘러도 갔다.
숲속의 밤은 고요했고 숲속의 아침은 상쾌했다. 전날 저녁 먹은 누룽지삼계탕 덕도 봤으리. 피로를 풀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우리 가족은 8월에 다시 한번 옥천한옥체험관에서 1박을, 9월엔 금산산림문화타운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대자연에서
큰 산을 우르르고
너른 들판을 품고
차디찬 물을 적시며
자유롭게 양팔 벌려
맑은 바람을 듬뿍 먹은 아이,
장차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된다.(2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