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지난 주말부터 ‘노 미디어 데이(No media day)’를 실천하고 있다. 일곱 살 라온이는 어느 정도 패드 조절 능력이 있는데, 다섯 살 바론이는 일단 패드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면 삼매경에 빠져든다.
사실 삼매경(三昧境)은 가장 순수한 경지의 산물이라 박수쳐야 마땅한데, 이 영상 삼매경은 아이들의 자기 조절 능력을 해친다고 보아 교육전문가 백이면 백이 지양해야 한다고 핏대를 높이는 사안이다.
엄마아빠 말을 잘 들어주는 제 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집이 센 데다, 아직 사리 분별이 잘 안되는 바론이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노 미디어 데이’를 만들어 놀이처럼 즐기는 것이다.
이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단 라온이의 양해가 필요했다. 아빠는 평소 유튜브를 보여주자는 쪽에 있다. 초미디어시대에 미디어를 빼라니 그건 말이 안 된다 싶기 때문이다. 관건은 아이 본인의 ‘조절’과 부모의 (강제) ‘제어’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새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의 묘를 엄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스마트폰과 패드 같은 미디어 사용 패턴을 보며 절감한다.
동시에 중용의 묘를 더 잘 지키는 쪽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라는 사실도 확인한다.
라온이는 노상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제 엄마보다는 조절 능력이 기실 더 뛰어나다. 스파트폰과 패드 사용에 관한한 엄마와 바론이가 한 팀이고, 아빠와 라온이가 또 한 팀이랄 수 있다.
결론은 우리의 ‘어린양’ 심라온이가 도와주고 엄마아빠가 다부진 마음을 먹어야만 우리집 다른 ‘어린양’ 심바론이를 바른길로 안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 아빠는 지난 일요일 아침 별안간 ‘노 미디어 데이’를 선언했다.
“라온, 바론! 오늘은 패드, 티브이, 스마트폰 모두를 일절 보지 않는 노 미디어 데이이야. 오늘은 엄마아빠도 패드 티브이 스마트폰을 보지 않을 거야.”
라온이가 묻는다.
“그럼, 우린 뭐해?”
“엄마아빠랑 하루종일 노는 거지.”
바론이가 외친다.
“우와! 좋다. 좋아!”
아이들은 엄마아빠를 보며 배운다. 엄마아빠가 하는 양대로 한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 영묘한(?) 구석이 있다. 욕 잘하는 엄마아빠 아래에서는 필히 욕 잘하는 아이가 자라난다. 그런데 책 읽는 엄마아빠 아래에서는 반드시 책 읽는 아이가 자라나지 않는다.
인간은 나쁜 것은 잘 배우는 반면, 좋은 것은 잘 익히지 못하는 영묘함을 지녔다. 그게 인간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무튼 라온이와 바론이는 지난주 일요일 온종일 미디어를 일절 보지 않음으로써 ‘제1회 궁고재(窮考齋) 노 미디어 데이’를 성공리에 마쳤다.
패드 티브이 스마트폰을 보지 않도록 하자, 아이들은 로봇놀이, 장난감놀이, 골프공놀이, 책읽기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패드 티브이 스마트폰 보기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묘라면, 노 올 미디어는 치망순역지(齒亡脣亦支)의 묘다.
사람이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는 걸 아는 건 본능이다. 그런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도 산다’는 걸 아는 건 경험인 동시에 지혜(智慧)다.
이리 보면 본능과 경험의 중간치를 일러 중도(中道)라 할 수 있다.
이번 주엔 어제 ‘제2회 노 미디어 데이’를 치렀다. 이번 주도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저녁답에 식탁에 있던 라온이가 말한다.
“아빠, 아빠가 지은 아주 두꺼운 책 있잖아. 그거 좀 줘봐.”
식탁 내 의자 뒤엔 내 저서를 비롯해 식탁 곁에 두고 보면 좋은 책들이 기역자로 꽂혀 있다. [보통 글밥2]를 라온이에게 빼주었다.
라온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내게 와 급 공손하게, 마치 신하가 왕을 대하듯 두 손으로 책을 받쳐든 채 고개를 숙여 말한다.
“아부지,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를 글로 지어주십시오.”
라온이 톤에 맞춰 아빠가 응대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을 배웠는고.”
“네, 배웠사옵니다.”
“언제 배웠는고. 한자 시간에 배웠는고.”
“네, 한자 시간에 배웠사옵니다.”
“좋다. 아부지가 내일 아침 ‘백문불여일견’을 주제로 글을 짓겠노라.”
“네, 감사합니다.”
“가서, 앉도록 하라.”
“네, 아부지.”
라온이는 [보통 글밥2]를 건네고 뒤로 총총 물러났다.
‘부지런둥이’ 라온이는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다.
“라온아, 어제 아빠가 ‘백문이불여일견’으로 글을 짓기로 했지.”
“응.”
“로봇놀이 좀 하고 있어. 로봇놀이 하다가 유튜브 봐.”
“응.”
∎라온이에게
사랑하는 아빠의 첫 번째 아들 라온아,
사람은 당장에 재미나고 편한 게 없어지면 또 다른 재미와 편리를 찾게 된단다.
‘노 미디어 데이’를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게 훨씬 나았지?
이런 걸 두고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하는 거란다.
라온이는 ‘노 미디어 데이’를 통해
백문불여일견뿐 아니라 순망치한과 치망순역지까지 뗐단다.
한자 선생님한테 순망치한과 치망순역지가 무슨 뜻인지 여쭤보렴.
아빠의 첫 번째 아들 라온아,
유튜브도 열심히 보고, 엄마랑 하는 공부도 열심히 하렴.
본다는 것은 머리로 익힌다는 것이고
익힌다는 것은 만사가 배운다는 것인 고로,
유튜브도 내팽개칠 까닭은 없단다.
뭐든 적당히 하면 해로울 게 없단다.
‘어리기만한 양’ 바론이의 바른길을 위해
‘어린양’이 된 네가 고생이 많다.
사랑한다, 라온아.
/[글밥] 짓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