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재직시절 1.5매짜리 사건기사 때문에 편집국 회의실에서 자해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경찰이 출동하고 면도칼로 손목을 그은 사건 가해자는 기사의 팩트가 틀렸고, 그 기사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경찰팀장과 기사를 두고 설전을 벌이다 자신의 억울함을 그렇게 표출한 것이다. 그 사내의 피는 편집국 바닥에 점점이 박혔고 그 피를 밀대로 닦은 건 면습기자였던지 막 면습기자를 벗어났던 나와 편집을 지원하는 오퍼레이터 여사님들이었다.
사건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0년 전 네티즌들에게 ‘고담도시 대구’를 각인시키는데 일조한 ‘뒷골목’이란 코너는 늘 위태로웠다. 편집국 내에서도 심심찮게 폐지론이 나왔지만, 경찰출입기자는 매일아침 이 뒷골목거리를 찾느라 오전 시간을 거의 다 보낼 정도였다. 기사되는 조건이 무척 까다로웠기 때문인데 재미와 특이가 관건이었다. 모두가 “독자를 위해서”였다. 경찰발 자료를 근거로 팩트를 쓰되, 가해자와 피해자는 A, B, C씨 등 이니셜로 처리하고 사건 발생지역을 구(區)까지만 표기했지만, 문제는 대구의 좁은 지역사회에서 그 A, B, C씨는 그들 주변에선 금방 탄로 났다는 데 있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출입기자가 써온 기사는 팀장, 차장, 부장을 거치면서 말의 ‘어’와 ‘아’의 재주가 춤춘다는 것이었다. 좀 더 ‘뒷골목답게’ 교정되는 것인데, 이 교정이란 것이 사건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에게는 ‘날조’를 넘어 ‘소설’이란 인식과 그것이야말로 사실이라는 심정과 확증을 줄 여지가 있었다. 나는 이 뒷골목이 하루라도 빨리 폐지되기를 바라는 쪽이었다.
그러나 뒷골목은 자해소동이 있고도 1년이 더 운영되다 사회부장이 바뀌고 지면개편이 단행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직도 떠도는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온라인사이트 디씨인사이드에 ‘고담도시 대구’란 해시태그와 함께 희귀한 뒷골목 기사들이 유영하곤 했다. 그건 신문사의 영예가 아니라 멍에였다.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재주나 자랑, 인기의 향연이 되어선 결단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글은 어떤 글이든 뜻을 하여 공공성을 갖고 뜻을 하지 않고도 공공성을 갖는다. 그것이 글이 가진 속성이다. 때문에 쓰는 자의 마음보가 대단히 중요하다. 글을 쓸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은 반듯하고 가지런하고 보드라운 마음보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글쟁이 스스로가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를 위한 글쟁이가 되는 것이다.
글쟁이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은 글이란 기차와 삶이란 기차가 평행하게 달리다 어느 틈에 그 둘 사이 간격이 점점 벌어지는 것이다. 이때 고삐를 다잡지 못하고 가랑이 찢어지듯 원상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지면 붓을 꺾어야 마땅하다. 글쟁이가 붓을 꺾는다는 것은 사지를 자른다는 것과 같다. 자신의 삶이 어떠하든 그건 상관없다. 하나 제 삶은 엉망진창이면서 글만 그럴싸하면 그건 누군가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축적되면 천벌 받아 마땅한 짓이다.
옛말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것이 있는데, 이 말은 벼락같은 깨달음 같은 게 아닐 수 없다. 내 몸과 마음을 닦고 가정을 이뤄 건사한 뒤에야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평정한다는 이야기다. 아니 앞에 것 잘한 뒤에야 천하를 평정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이야기다. 제 몸뚱어리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자가 결혼이 웬 말이며, 몇 안 되는 식솔도 다루지 못하는 자가 무슨 나라 일에 왈가왈부냔 말이다. 이 같은 촌철살인은 그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줄 안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과 함께 대학의 8조목이다. 모두 경외할 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