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있는 삶

by 심지훈


한때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손학규 씨가 ‘저녁이 있는 삶’이란 책을 내고 그것을 자신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 반짝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사실 강퍅한 현대인들에게 이 구호가 먹혔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들 까다롭고 제 고집대로 살아가면서도 범사에 감사함을 못 느끼는 현대인들이 많다는 것은 현대인의 속성이 욕심덩어리, 욕망덩어리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단출한 넉 자가 알려주듯 인생이란 결국 공이요 덧없는 것임을 그렇게 치열하게 살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게 부족한 것, 모자란 것, 허허로운 것은 늘 아쉬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저녁이 있는 삶’이 서민의 비쩍 마른 가슴골로 일시에 세차게 흘러내렸음은 능히 짐작할 만하다. 하나 그렇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고 기르는 것이 우리네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 이를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 사회로서는 여간 아프고 쓰린 현실 반영이 아닐 수 없다.


하나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갖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졌던 가장 커다란 것을 내려놓고 잃어 봐야 그때가 얼마나 복되고 보람되고 감사한지를 겨우 알게 되는 것도 엄연한 삶의 이치. 무탈한 자들의 삶과 사고방식에 무턱대고 채찍을 가할 수만도 없는 이유다. 하여 부처님은 “삶은 고(苦)”라고 읊조렸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첫 직장을 박차고 나와 3년의 야인생활을 거치면서 ‘그때’의 감사함과 앞으로의 감사할 일을 정말이지 가슴으로 모두 품을 수 있었다. 오늘 아침 아내가 차려준 소박한 아침상 앞에서 문득 ‘아내가 있는 삶’을 하나의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마음먹은 것도 첫 직장의 짐을 내려놓지 않았더라면, 춥고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어느 때보다 막강한 전투력을 지녔던 3년의 삭풍 시절이 없었다면, 절대 하지도, 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난 20일 '아내가 돌아왔다.' 둘째아들 출산·육아휴직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약속한 것이 딱 세 가지였다. 바쁜 아침시간 구태여 밥상 차리려 하지 말고 점심시간에 남편 밥 챙기러 집에 오는 일은 수고로이 하지 말 것, 회식도 회사생활의 연장이니 사전에 일러주고 적극 참여할 것 그리고 당신 퇴근 전 내 먹은 것은 내가 알아서 설거지해 놓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약속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


아내는 그동안 점심 약속이 펑크 나면 남편 찬스를 곧잘 활용했고, 회식의 자유를 보장해 주니 밤 11시에 돌아오는 기행(‘만행’으로 쓸 뻔!)을 일삼다 혼쭐이 몇 번 난 적이 있고, 어쩌다 한번 설거짓거리 중 일부를 빠뜨렸다고 타박을 하다 또 몇 번 혼구녕난 적이 있다.


나는 그때마다 마흔둘 인생에 이렇다 할 굴곡 한번 없던 아내가 한편으로는 측은했고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남편의 도리(道理)를 저리도 업신여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두 마음이 동시에 동했던 것이다. 해도 6년째 삐꺽거리는 지점을 이첨저첨 잡아내고 잡아오면서 그럭저럭 ‘우리들 삶’의 모양새를 완성해 가고 있다. 전도유망한 삶인 것이다.


첫째아들 라온이를 낳고 복직 2년 4개월 만에 다시 집으로 온전히 돌아온 아내 덕분에 요즘은 끼니 걱정은 덜었다. 아내가 있으면 아침은 물론 저녁이 있는 삶은 그저 되는 거다.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낀다. 아내가 옆에 있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하다. 감사한 요즘이다. 바론이의 순산을 빈다. 파이팅. 부인♥


*이 사유는 5년 전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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