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보는 일과 죽음에 관하여

by 심지훈

둘째아들 바론이가 하도 더워 ‘까마귀 대가리도 벗겨진다’는 처서(處暑·양력 8월 23일) 아침 건강하게 태어났다. 바론이 태어날 징후를 보인 그전 이틀 동안 참 고맙고 감사하게도 고모가 아픈 몸을 이끌고 와 장남 라온이를 돌봐줬다. 아내를 입원실로 옮기고 서둘러 집으로 오자 고모는 얼굴이 누렇게 떠 녹초가 돼 있었다. 너무 미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고모는 비몽사몽간 다시 직장이 있는 청주로 돌아갔다. 혈육의 위대함을 느낀 이틀이었다. 고모의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적절하게 갚는 건 이제 우리들 몫이겠다.


라온이는 온전히 아빠 차지가 됐다. 헌데 새벽 2시에 병원으로 가 그날 아침 7시에 바론이가 태어나고 아내가 입원실로 이동해 점심 먹는 것까지 지켜보고 나오니 오후 1시였고, 이때쯤 긴장이 풀려 온몸이 노곤해왔다.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고모에게 카톡으로 “곧 집에 도착한다”고 알리자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왔다.


“응. 라온이는 방금 잠들었어.”


36개월 된 라온이도 눈치가 빤했던지 동생이 태어나던 날 아침엔 새벽 6시에 일어났다. 고모와 내내 놀다가 막 잠이 들었단다. 나는 라온이 옆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라온이와 함께한 지 오늘이 꼭 10일째다. 아빠가 라온이를 돌보는 게 아니라 라온이가 아빠를 잘 봐주는 복된 날들이었다. 여느 때와 달리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공원 한 바퀴 도는 여유와 함께 아침도 든든하게 먹고, 때맞춰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을 가고, 하원하고 돌아오는 길엔 뭐뭐하고 놀았다고 재잘대고, 집에 와서는 맛있게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놀이터 혹은 홈플러스를 가서 놀고 와서는 목욕하고, 유튜브 조금 보면서 할머니들과 전화하고, 자기 전에 이 닦고, 엄마와 바론이와 영상통화로 인사를 나누고 코 잠에 드는 일상은 아빠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라온이 스스로 하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만난 라온이 반 엄마들이나 선생님들은 내게 바론이 탄생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아이 혼자 보느라 힘드시죠”라고 인사를 건넨다. 내 지인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힘드시죠” “파이팅입니다”와 같은 응원과 격려의 말을 무시로 듣다보니 ‘아, 이거 문제가 많다’고 생각됐다.


‘내 아이 내가 보는데 무슨 힘이 그렇게 든다는 것인지, 파이팅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안 갔다.


나는 라온이를 열흘 간 보면서 그리고 앞으로 이틀간 더, 아니 어쩌면 더 오랫동안 ‘전담’을 해야 할지 모를 것을 예상하면서 죽음을 생각했다.


탄생은 죽음과 한 짝이다. 태어난 생명체들은 언제고 한번은 모두 죽는다. 탄생은 경이와 기적을 먼저 난 생명체들에게 귀신처럼 안긴다.


먼저 난 생명체는 생각 없이 그저 기뻐할 수도 있지만,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은 하나 일 때와 둘 일 때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하나를 더 짊어져야 한다는 책임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그 피도 안 마른 새 생명을 보면서 다름 아닌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면 그건 또 다른 큰 의미로 다가온다.


탄생은 기쁨을 주지만 죽음은 각성(覺醒)을 일으킨다. 나는 7년 전 아버지가 황망히 저 세상 소풍을 떠나셨을 때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생각했었다.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어떤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었다.


결혼을 하고 라온이를 가졌을 때 나는 또 아버지를 떠올렸었다. 엄마줄을 타고 무사히 내려와 고고의 울음을 내던 바론이와 첫 대면했을 때도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었다.


두 아들을 아버지의 환신(幻身)처럼 나는 느꼈었다. 열과 성을 다해 고이 잘 키우고 지켜내야 할 내 아들들이자 아버지의 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나는 믿는다. 바론이가 태어나기 전 보였던 라온이의 이적(異蹟)과 그리고 지난 10일간 보였던 놀랍도록 성숙된 모습은 라온이 스스로 부지불식간에 삶과 죽음을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명체는 그 어떤 것이든지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로 되돌아간다. 아빠엄마 마음속에 하늘의 씨앗이 있듯이 아이들 마음속에도 하늘의 씨앗이 들어앉았다.


아빠와 엄마와 아이는 하늘의 씨앗을 박고 선 동격(同格)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귀하디귀하다. 아이를 잘 돌본다는 건 아이의 템포를 잘 맞춘다는 거다. 아이를 잘 못 본다는 건 어른 템포에 억지로 맞춘다는 거다. 아이를 볼 땐 눈높이를 양껏 낮추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자기 자식을 돌보면서 ‘힘들다’ ‘우울하다’고 징징대는 건 이 기본을 못 배우고 못 갖추고 못 깨친 어른들이 많다는 뜻이다.


생명체의 탄생과 죽음을, 제 아비와 어미의 헌신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 어른들이 많다는 뜻이다.


생명체는 모두 하늘의 씨앗이라는 진리를 각성하지 못한 어른들이 태반이란 뜻이다.


어른에겐 아이가 선생이고 성인이다. 아이에게서 아이의 호흡으로 배운다는 자세로 아이를 대하라. 그래야 아비노릇 어미노릇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래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


제 새끼 보면서 힘들다는 말을 함부로 뱉지 마라. 하늘의 씨앗은 각자가 감당할 고통만큼만 준다.


부모에게는 혈구지도(絜矩之道)와 반구저신(反求諸身)의 자세가 필수다. 두 정신은 인간생활의 근본이다. 이 정신만 잘 심어줘도 아이는 장차 동량(棟梁)이 된다.


*혈구지도: 내 심정을 기준으로 남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뜻

*반구저신: 남 탓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서 문제점을 찾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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