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화 Sep 23. 2022

평범한 것이 아름다운 세상

  차가워진 바람이 대청호 호수에 아름다운 물비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틈을 이용해 마스크를 살짝 벋었다.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숨을 끌어 삼켰다. 세상에 혼란이 시작되던 날부터 사람들을 피해 다니던 일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절망에 떨며 불안해하던 호들갑이 사라졌다.


  우리 삶은 코로나로 인해 정말 많이 바뀌었지만, 또 그만큼 잘 적응했다. 그중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어린 아기를 볼 때마다 안쓰럽고 대견하다. 저 작은 아이도 인류가 겪는 고통을 때 쓰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에 감탄한다. 코로나는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딱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스며들면서, 금강의 물줄기처럼 천천히 인류와 함께 흘러갈 것 같다. 어쩌면 코로나가 사라지면서 또다시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변화가 올 것 같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지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육십이 넘어 다시 찾아온 나의 귀중한 학창 시절. 늦게 시작한 공부에 재미를 느끼기보다 혼란 속에서 회오리바람이 되어 지나 가고 있다. 이번 주부터 다시 비대면 수업이다. 코로나로 인해 등교를 제대로 못하고 어물쩍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소풍도 수학여행도 못 가보고 졸업을 할 것 같아 슬프다. 아직 고등학교 졸업이 내년 이월이니까 시간이 남아있으려나. 어쩌면 졸업하기 전에 수학여행을 갈 수 있자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날아가는 새 엉덩이만 보아도 웃음이 나온다."는  풋풋한 나이는 아니지만, 추억을 만드는데 나이는 필요 없을 듯하다. 비대면 때문에 자주 못 만나서 아직도 서먹한 반 친구들과 우렁찬 목소리의 국어 선생님, 소녀처럼 예쁜 영어 선생님과 여행을 가고 싶다. 답답한 마스크를 던져버리고 마냥 수다를 떨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호수에 돌을 하나 던져보며 생각한다. 그동안 못했던 일, 아쉬운 일이 그립다. 손안에 가득 움켜쥐고 있는 돌들보다 더 많은 아쉬움. 납작한 돌 하나를 골라 물수제비를 날려 본다.  차가운 바람이 낙엽 한 장을 가져와 내 얼굴에 붙이고 도망간다. 옷깃을 여미고, 마스크를 다시 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코로나가 끝난 다음의 우리는 어떻게 변할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코로나가 끝나도 마스크는 계속 써야 한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마스크도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일반 마스크를 쓰고 다니더니 이제는 마스크에 패션이 더해졌다. 캐릭터 마스크가 나오고 스티커도 붙이고 색상도 다양하다. 귀엽고 깜찍한 문구까지 새겨진 마스크도 있다. 마스크를 쓰는 문화는 계속 남아있을까. 하지만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는 것은  코로나가 끝이나도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어려운 시국을 이겨내는 일등 공신이 마스크이지만 코로나가 끝이 나면 마스크를 벗어야 진정한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을 틀었다. 세계의 도시들을 여행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테마 기행이다. 축복받은 기후, 아름다운 자연,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축제.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에서 윈드서핑을 타고, 해안에는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여유와 평화를 누린다. 저 자연스러운 광경들이 언제부터인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낯설다.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 받아들였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매일 절실히 깨닫는다. 오랜 친구가 언제 밥 한번 먹자고 전화가 와도 그 언제가 언제일까. 점점 늘어가는 확진 환자 소식에 엘리베이터조차  타기 불편했던 시간, 산책을 대신하여  방과 거실 사이를 수없이 왔다 갔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어찌 나 하나뿐이겠는가. 이렇게 글로 적어 이야기를 대신하니 모두가 그렇듯 지난 평범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이었나.


  잠자리에 누웠다. 손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코로나19 치료제 먹는 약이 나왔다는 뉴스를 발견했다. 벌써 일주일 전 뉴스다. 현재 열 개의 국가가 구매 계약을 체결하거나 계약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에 우리나라가 속해 있다.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내년에 대학교 가서는 동아리 활동 등 정상 수업이 가능할 것 같다. 날씨 좋은 날 예쁜 립스틱 바르고 대학 캠퍼스에서 사진도 찍고, 배달 음식 말고 맛집을 찾아가서 밥도 먹고, 함께 영하도 보며 당연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스크를 던져버리고 크게 숨을 쉬며 함께 달릴 수 있기를 기다리는 그날, 하늘의 햇빛은 또 얼마나 찬란할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야 우리 내년에 밥 한번 먹자!"

작가의 이전글     안녕하신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