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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Sep 12. 2023

이상형이자 기피형인 남자

본격 남편 자랑 에세이 '빵세 리포트' 1화

나의 이상형의 남성상은 초등학생 이후로 늘 '산 같은 남자'였다. 그야말로 산처럼 큰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아마도 초등학생 때 교생 선생님이 산 같은 남자였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빠가 덩치가 큰 사람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나는 내가 가진 개성만큼이나 이상형 마저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다만, '산 같은 남자'는 결국 덩치가 크면 되는거니 오히려 꽤 찾기 쉬운 범주가 아닌가 하며, '꽤 현실적인 이상형을 꼽았구나, 역시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


좀 억울했던 건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내 이상형이 '아주 예쁘게 생긴 남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친구들은 연예인급 얼굴이 아닌 남자는 눈에도 안 차니 저런다고 했다.  오죽하면 일본인 친구들마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고 늘 '지니짱은 확실히 멘쿠이(面食い)구나'라고 말하곤 했다. 말 그대로 얼굴 뜯어먹고 산다는 소리다. 

나는 중학교때부터 현재까지도 잘생기고 예쁜 아이돌과 배우들을 애정한다. H.O.T로 시작하여 BTS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일본과 중국, 대만의 아이돌과 배우들까지도 파고 들 정도로 '예쁜 사람'을 애정하는 편이다. 다만, 그것은 미학적인 영역과 심미성에 있어서의 나의 '즐김'이지, 나의 감정과 순간을 나눌 나의 사랑하는 이에 대한 기준은 아니었다.


나는 26살에 첫 연애를 하기 전까지 모쏠이었다. 어떻게 해도 산 같은 남자가 내 주변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연애에 대한 흥미가 생기지 않았었다. 그러다 26살이 되어서는, 나도 내일 모레면 서른인데 모쏠이라는 게 왠지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결혼은 안 할 거지만 연애는 많이 해보고 싶었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며 열심히 소개팅도 받았다.

원래 연애든, 결혼이든 이상형이랑 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며, 연애를 하고 싶다는 현실에 타협했고 '산 같은 남자'에 대한 꿈을 내려 놓았다. 그 덕분인지 마음을 먹은 해에 첫 연애를 했고 이별을 했고 다음 연애를 위해 여러 사람들과 기회를 엿보다가 바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고기 먹는 모임으로 만난 남편은 외관은 확실히 '산 같은 남자', 내 이상형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는 당시에 연하라는 이유로 이상형으로 고려되지 못했다. 당시에 나는 '남자들이 정신연령이 낮으니 어찌되었던 연상이 아니면 안되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연하는 아예 연애의 바운더리에 넣지 않았다. 남편이 나에게 이상형을 물어봤을 때 내가 자기가 해당되는 사람 같은데 정작 나는 자기를 이성으로 보는 거 같지는 않아서 굉장히 헷갈렸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은 우리가 친구로 지낸지 6개월이 지나고 결단을 내렸다. 내가 솔로의 밤놀이에 빠져 매주 금요일마다 술모임에 참석하고 다니던 방탕한(?) 그 때, 남편은 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고 연인의 관계로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재정의 하고자 했다. 그리고 고백과 동시에 황당하게도, 남편이 '산 같은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클럽 놀이 문화에 빠진지 6개월 차였다. 뒤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내가 딱 그짝이었다. 나는 남편과 연애를 시작할 때 '내가 클럽 놀이에 질릴 때까지 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남편은 쿨하게 질리게 놀아보라면서도 대신 자기가 데리러 가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남편은 클럽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같이 들어와서 놀아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늘 나를 안전귀가 시켜주었고 덕분에 부모님이 금요일 나의 일탈을 용납해 주셨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고도 6개월간 매주 금요일마다 클럽에 가서 놀았다. 1년을 꼬박 놀자 더는 놀기 싫어졌고 남편과 노는게 더 재밌었다. 나는 물론, 우리 가족들, 내 친구들과 지인들 모두 마음마저 산 같이 큰 사람이라며 인정했다. 그는 알면 알수록 진짜 '산 같은 남자'였다. 내가 바래 온 이상형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점점 빠져들었다. 그러다 원래 이름이 대산(大山)이가 될 뻔한 이야기는 정점을 찍게 만들었다. 이 남자는 나의 진짜 이상형인 운명의 남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결혼까지 하게 되었을 때, 이상형인 남자를 놓칠 수는 없었기에 이 결혼은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했어야 한다는 의지치를 불태웠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 후 나는 남편의 반전 매력에 당황하게 되었다. 내 이상형이 이 남자가 알고 보니 내가 가장 기피형인 남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내가 가장 기피하는 남자는 바로 '우리 아빠를 닮은 남자'였다. 나는 아빠를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딸이어서 아빠의 싫은 부분들이 있다. 사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딸들은 다 아빠 같은 남자는 피하고 싶다고 한지라, 내심 딸들의 국룰인가 싶으면서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한 감정은 들지 않았었다. (웃음)

우리 아빠는 감정이 풍부하고, 마음이 약하고, 영악하지 못했다. 근면하고 성실하기만 했고 사람을 잘 믿어서 여러번 남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으면서 점점 인간관계도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그런 부분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한 편이었다. 아빠의 선한 마음이 이용당할 때마다 아빠도 상처를 입었지만 우리 가족도 그로 인해 벌어지는 후폭풍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그게 너무 싫었다. 가족들이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 아빠가 남에게 나쁜 사람이길 바랬다. 하지만 아빠는 끝까지 그러지 못했다.


20살, 대학에 입학할 때 아빠가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믿음으로 인해 나는 대학에 가지 못할 뻔 했다. 부모님이 급하게 빛을 지고 외가에서 도움을 준 덕분에 겨우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아빠가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아빠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나에게 누구보다 큰 사람이었던 아빠의 죄책감과 초라함, 무엇보다 피붙이에게 당한 배신의 절망감이 뭍어나던 그 날 아빠의 얼굴, 어깨, 눈물 등 가슴이 먹먹해서 터질 것 같던 기억은 여전히 내 머릿 속에 선명하다.

아빠는 그 사건 이후 그 사람(나는 그 사람을 가족의 명칭으로 부르지 않는다)이 죽기 전까지 친가 식구들과 거의 인연이 끊긴 상태로 지내야 했고, 그 사람이 죽고 나서야 심지어 피해자였던 아빠가 피해를 당한 사실조차 왜곡되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그렇다고 그걸 억울해하며 분노를 쏟아내지도 않았으며, 이미 지난 일, 간 사람 그저 잘 가게 해주자며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한,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이 싫었다. 착하고 선하고 따뜻한 우리 아빠가 너무 좋고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런 아빠의 마음이 드러나는 모습들을 보면 자리가 불편해서 피하곤 했다.


아빠는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드라마 속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우는 건 물론이고, 결혼식 장면이나 누가 행복한 장면이 나와도 운다. 엄마가 어디 한번 나갈라치면 걱정이 늘어지면서 엄마를 설탕처럼 취급한다. 그렇게 파수꾼처럼 굴 때는 언제고 엄마한테 해달라는 것도 많고 엄마 껌딱지처럼 군다. 평화주의자라서 왠만하면 싸우기 싫어서 불편한 상황을 회피해 버리는데, 역치를 넘어서면 그런 쌈닭이 또 없다. 어떤 때(그 때가 왜 오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삐지고 짜증을 내고 혼자서도 잘 푼다. 청결하지 못한 것을 싫어해서 겨울에도 하루에 샤워만 3번은 한다. 비위가 약해서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도 잘 버리지 못한다. 가리는 음식이 없다고 하는데 가리는 음식이 많고 남의 집 밥을 잘 못 먹는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결혼하며 살아보니, 우리 남편이 대부분 이랬다. 하지만 남편이 아빠와 극명하게 다른 게 있었는데, 남편은 자기 테두리에 있는 사람에게만 선한 사람이라는 것과 선을 명확히 그을 줄 아는 사람이란 것, 유머 감각과 언어적인 센스가 놀랍다는 것, 아빠와는 다르게 아무리 본인이 싫어하고 못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면 다 참고 어떻게든 해낸다는 거였다. 남편은 아빠와 생활 습관이나 식성, 정말 사소한 부분까지도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생각해보면 신혼 초기에는 괜히, 남편이 아빠와 비슷한 면을 보이면 발작버튼이 눌린 것처럼 그러지 말라고 뭐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 남편은 억울해하기도 하고 나에게 뭐라고 하기도 하고 본인이 고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기피형인 남자와 접점을 찾는 바로 이 과정이 나는 좋았다. 자신의 중심을 잡으면서 함께 살아갈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각자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을 인정하면서 접점을 찾는 방식으로,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방식'으로 해결을 하려는 남편의 태도가 좋았다. 거기에 남편이 이상형인 남자였다는 것은 분명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콩깍지가 씌여 있으니, 이 과정들에서 사실은 마음 상한 부분이 있어도 넘어갔을지 모른다. (웃음)

그런 부분에서, 기피형과 이상형이 내 두 손에 주어졌다는 건 어쩌면 내 인생의 균형을 위한 신의 안배인지도 모르겠다. 결혼한지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편은 내가 그동안 기피해온 남성상인 우리 아빠와 닮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여전히 내 이상형인 산 같은 남자를 유지하고 있다. 뭐, 어쩔 방도가 없다.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거 아니겠는가? 우리 부부는 운명이니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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