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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Oct 08. 2023

나와 정반대인 ISFP형 인간

본격 남편 자랑 에세이 '빵세 리포트' 2화

한창 MBTI가 유행할 때 우리 부부도 검사를 해보았다. '우리 완전 정반대로 나오는거 아냐? ㅋㅋㅋ'라며 테스트에 임한 결과는 정말로 정반대인, 나는 ENTJ, 남편은 ISFP였다.

평소에도 우리가 다른점이 많다는 것을 서로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하나도 겹치는게 없다니!' 싶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우리 사이가 좋다는 것에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겼는데, 남편은 테스트를 하면서 내내 생각했던 '이걸 반대편에 답변하는 사람이 진짜 있다고?'하는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에 은근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진짜로 회의를 하는데 분위기가 안 좋아질 걸 알아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말은 해?'라며 물었는데, '당연히 일을 하는 건데, 우리 일이 잘되기 위해서는 분위기랑 상관없이 할 말이라면 해야지'라고 내가 답하자 '끄아아아악!!!! 제일 싫어!!!!'라며 나랑 일하는 관계로 만나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했다.


남편은 사실 MBTI 검사를 하기 전에도 아마도 ISFP일 것 같다고 예측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ISFP의 특징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세심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며, 상대에게 감정이입을 잘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며 배려심이 깊다. 우리 엄마는 '김서방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 가장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나는 엄마의 평에 격렬히 공감한다.


연애 때부터 나는 남편의 사람 냄새가 좋았다. 남편은 어딘가 주차를 하러 들어갈 때, 출차를 할 때 경비아저씨가 있으시면 늘 '수고하십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내고 건물 내에서 청소하시는 분들 만났을 때도 '고생이 많으세요, 깨끗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내는 사람이었다. 어느 더운 여름,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야채를 팔고 계신 할머니를 보고 할머니가 연세도 있으신데 빨리 들어가서 쉬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야채를 모두 사서는 우리 엄마, 이모들 드릴 야채를 소분해서 모든 집에 배달도 해드린 적도 있었다. 음식이 잘못 나오거나 늦게 나와도 화를 내는 경우가 없었다.

나에게 잘 보이고자 그 순간에만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몸에 배어있는 행동들이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은 한결 같았다. 명절이 되면 우리 단지의 경비아저씨들의 명절 선물을 챙겼다. 날이 더운 날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돌리고 날이 추운날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서 돌렸다.


우리가 일상에서 얻는 누군가의 배려에 감사할 줄 알고 그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나는 그런 마음이 있어도 잘 표현할 줄 모르고 만약 내가 표현했을 때 상대가 받아주지 않을까봐 표현하는 것을 민망해했었는데, 남편 덕분에 나도 표현을 잘하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김서방 만나고 너도 사람 냄새가 진해졌다'라는데 나도 동의한다. 분명 이전에 나보다 나는 가슴 속 깊이 숨어있는 나의 따뜻한 마음을 잘 끄집어낼 수 있게 된 것이 맞으니까.


그 큰 덩치에 슬램덩크 극장판을 같이 보러 갔을 때 학창시절의 추억에 감동해서 펑펑 우는 감성을 가진 것도 귀엽고, 남의 강아지의 장례식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가족을 잃은 슬픔에 공감하는 마음이 예쁘다. 운전 중에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을 지나치게 될 때 '아이고, 좋은 곳에 꼭 가라, 나무아미타불'이라고 기도해주는 마음이 멋지다. 이웃들에게 얼굴을 몰라도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는 모습도 좋다.


이런 저런 사람 냄새가 나는 점이 참 좋았고 지금도 좋아하는 부분이긴 한데, 남편은 MBTI 철자 중 특히 F의 기질이 강하게 발휘되었는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 표현 풍부한 사람인 것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나는 MBTI 철자 중 특히 T가 발달한 사람이라, 그런 감정 변화 폭이 크지 않은 나로서는 남편이 요구하는 희로애락의 표현과 공감이 결혼 생활 내내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영역이었다.


매번 밥상을 차려줄 때마다 '맛있다, 고맙다'를 쉴새없이 내 뱉어주는 것도, 자기 전에 '자기야 사랑해, 좋은 꿈꿔'라고 저녁 인사도, 아침마다 뽀뽀하고 주물러주며 '사랑해, 잘 잤어?'라고 하는 아침 인사도, 지금은 너무 당연하고 익숙하고 나도 똑같이 답하지만, 처음에는 '왜 알고 있는데 매번 같은 소리를 해야하는 거지?'라며 어색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나는 나름 애정 표현도 스킨쉽도 많은 집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표현을 보면 우리집은 오히려 진짜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 분위기였던건가 싶을 정도였다. 우리 시댁은 대체 얼마나 엄청난 표현과 스킨쉽 속에 남편을 키워냈을까 했는데, 실제로는 우리집과 비슷한데 우리 시어머니의 표현과 스킨쉽이 우리 엄마보다 진한 편이었는데 남편과 아가씨가 이 영향을 사랑스럽게 잘 받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웃음)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남편은 애정 표현을 갈구하고 있고 나의 표현을 부족해 한다. 남편은 내가 보여주는 희로애락의 폭이 좀 더 드라마틱하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남편이 원하는 수준을 충족해주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지치는 남편과는 다르게 나는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채워진다. 안정적인 일상 속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남편과 다르게 나는 변화무쌍하고 두근거림이 있는 새로운 도전을 선호하고, 감성적이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남편과 다르게 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문제에 접근한다.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면 어떤 여행이 되었으면 하는지를 먼저 떠올리는 남편과는 다르게 나는 여행의 예산, 동선, 시간 배치 등의 계획부터 세우는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면이 반대에 있는 우리지만 그 어떤 부부보다도 사이가 좋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 부부는 서로의 다른 부분을 인정한다. 서로 왜 다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다른 부분이 있는게 당연하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남편은 본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희로애락의 표현에 결핍을 느껴도 나의 노력하는 모습에서 충족을 느끼며 나를 압박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노력해줘서 고마워, 이전보다 자기가 기쁜 것도, 슬픈 것도, 화나는 것도, 즐거운 것도, 자기의 속마음을 더 보여줘서 너무 행복해'라며 내가 스스로 자신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좀 더 풀어내는데 용기를 낼 수 있게 응원해준다.


나는 남편을 내 모임에 억지로 데려가지 않는다. 그가 원하면 함께 하고 그가 혼자 있길 바라면 혼자 있게 내버려둔다. 내가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해서 남편에게 자기계발을 하라고 하거나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나가라고 하지 않는다. 그가 책을 읽고 게임을 할 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여행을 갈 때는 남편이 자기가 이번 여행에서 얻고 싶은 경험과 감정을 말하면 내가 이에 맞춘 컨셉을 잡아서 여행 계획을 세우고 남편은 그 계획에 최대한 따라주고 감사함과 만족함을 가득가득 표현해준다.


우리는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코드가 맞는' 행위들에도 집중하고 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등을 같이 한다. 남편과 내가 둘 다 좋아하는 J-POP을 함께 즐기기도 하고 남편은 블랙 힙합을, 나는 클래식 음악을 따로 즐기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만화책을 보기도 하지만 남편은 추리 소설을 읽고 있을 때 나는 니체의 책을 읽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대카테고리 안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추천하기도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즐기기도 하면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같은 면과 다른 면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MBTI 철자가 하나도 겹치지 않는, 어찌보면 정 반대에 있는 우리 부부가 사이 좋은 진짜 파트너로서 매일을 보낼 수 있는 건 '우리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이후부터 두 사람의 공동의 기준이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지, 결혼 전에 입김이나 고집이 쎈 누군가의 기준이 맞고 틀리고로 가면 그야말로 기싸움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결혼 아닌가? 결혼한 두 사람이 자라온 환경도, 성별도, 생각도, 가치관도, 입장도, 상황도, 다양한 것들이 다르기에 서로가 각자의 기준에서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같은 마음가짐으로 우리 부부는 함께 살고 있기에 ENTJ인 나에게 ISFP인 남편은 나와 겹치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정반대라 안 맞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빠짐없이 채워주는 천생연분인 것 같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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