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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먼프릭 Oct 20. 2023

왜 중독됐나요? 가 아닌 무엇이 힘든가요?

정신병원 이야기

A는 어리다. 아직 학생이다. 대학병원, 학교가 있는 병원 등 여러 군데를 전전하다 우리 병원에 왔다. 어려서 진단명도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불안도가 높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 하루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엄마한테 전화한다. 또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다른 아이들은 부모에게 독립하고 싶고 반발감이 드는 사춘기 시기인데 A는 과하게 의존한다. 밖에서는 불안감 해소를 위해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조금 괜찮아진다고 했다. 처음 입원 왔을 땐 담배를 한 번만 피우게 해 주면 안 되겠냐고 계속 졸랐다. 미성년자니 당연히 안 된다고 막았고, 그럴수록 더 불안해했다. 그럴 때마다 의사 처방에 따라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는 약을 주었다.      


 중독과 트라우마에 대한 공부를 하다 가보르마테 박사를 알게 되었다. 그가 정의하는 중독은 이렇다. ‘안정과 즐거움을 갈망하며 짧은 시간 사용하지만 긴 시간 동안 부정적인 결과가 따라오는 것.’ 술, 마약, 게임, 도박, 담배, 포르노... 사람들은 수많은 것에 중독될 수 있고, 중독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가보르마테 박사는 중독은 우선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중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능에 대한 압박감, 부모님이 실망하실까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게임에 빠질 수 도 있고, 갑작스러운 배우자의 죽음 혹은 실직 때문에 술에 중독될 수 도 있다. 중요한 것은 '왜 중독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당신을 아프고 힘들게 하는가?’이다.      


 A도 마찬가지다. A는 담배에 중독됐다. 하루 종일 담배 한 대만 피자는 소리를 한다. 처음에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방에 돌려보내곤 했다. 가보르마테 박사의 말을 듣고 A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피우면 불안이 잠시는 해소된다는데 어떤 것이 불안해서 담배를 피우고 싶은 거예요? 무엇이 A님을 힘들게 하는 거예요?”  


“엄마를 못 봐서 불안하고, 올해 학교로 못 돌아가면 유급이라 일 년 늦어지는데 친구들 못 따라갈까 봐 그것도 불안해요. 여기는 제 또래도 별로 없고 나이 많은 사람밖에 없어서 싫어요.” 


 병원 복도를 걸으면서 A의 속 마음을 들었다.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 가는 내용들이었다. 이렇게 물어보고 속 마음을 들어주는 것 만으로 A는 표정에서 불안이 한층 덜어진 듯 보였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담배를 원한다는 말이 줄어들었고, 약을 복용하는 횟수도 줄었다. 그렇다고 A가 가진 근본적인 불안, 이유 없는 불안감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으면 담배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또 중독될 것이다. A가 건강한 방법으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더 힘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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