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비전퀘스트 프로그램 개발과 학교 현장 적용 사례
얼마 전 한 교감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이 힘들어해도 솔직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어요.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게 너무 많거든요."
그렇다. 학교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현재 구조로는 충분하지 않을 뿐.
청소년 16.1%가 정신장애를 경험했고, 교사 92.2%가 "정서위기 학생으로 인한 수업 방해를 경험했다"라고 답한다. 또한 학업중단 학생이 1년 새 29% 증가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을 위해 학교는 이미 많은 것을 해왔다. 상담실, 위클래스, 집단상담, 진로 캠프..
그런데도 "학교에 몸은 있지만 마음은 떠나 있는 학생"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왜일까? 문제는 프로그램의 부족이 아니라 역할 분담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의 하루를 들여다보자.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수업 준비와 진행, 학생들의 정서 돌봄, 위기학생 파악과 기록, 생활지도, 각종 행정 업무, 학부모 응대, 동아리 지도, 안전교육부터 성인지교육까지 각종 캠페인과 특별 프로그램까지.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한다. 한 학급 20~30명, 많게는 수십 명의 학생을 동시에 맡으면서. (교육 현장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정서위기 학생에 대한 대응은 사후적이고 소극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문제가 심각해진 후에야 상담실로 보낸다. 폭력, 자해, 자퇴 시도 같은 사건이 발생한 뒤에서야 움직인다.
그런데 그 지점은 이미 너무 늦다. 한 번 "위기학생"으로 분류되면 그 아이는 학교 안에서 그 꼬리표를 안고 간다. 아이들은 그걸 알고 있다. 학생들은 낙인이 두렵다.
학교 상담실의 현황도 비슷하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케어로 겉으로는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담사 1명이 수십 명의 학생을 관리한다. 아이들은 상담실을 "적응하지 못한 증거"로 인식한다. 프로그램은 1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학생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다.
여기서 외부 치유 전문가가 들어올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 학교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학교를 보완하는 역할이다. 교사가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내면 작업은 전문성 있는 인력이 맡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은 여러 각도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언어부터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위기학생"이라는 말 대신 "성장준비 청소년"이라는 용어를 쓴다. 위기학생은 부정적이고 낙인이 찍히는 느낌이다. 성장준비 청소년은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이미 한 번 학교 시스템에 질문을 던진 아이들, 기존 틀 안에서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어 몸부림치는 아이들, 그 점이 오히려 더 큰 잠재력과 에너지를 가진 아이들의 특성이라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이 언어 하나가 교육의 태도를 바꾼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지금까지는 위기가 터진 후에 대응했다. 비용도 많이 들고 효과도 낮다.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위기 전 단계에서 개입하는 것이다. 사소한 무기력을 보일 때, 등교가 불안정해질 때, 이때 성장준비 프로그램으로 붙잡는 것이다. 이미 자해나 폭력 징후가 나타났을 때는 늦다. 그전에 개입해야 한다.
우리가 제주에서 만든 모델이 바로 비전퀘스트다. 비전퀘스트는 원래 북미 원주민의 성인 통과의례에서 온 개념이다. 핵심 질문은 단 하나다. "나는 누구인가."
현대적 비전퀘스트는 이 질문을 안전하게 던지고, 자연 속 고요, 내면 경청, 상징과 선언, 공동체의 증언을 통해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의식의 다리를 만들어준다.
우리가 한 일은 이것을 한국 청소년 현실에 맞게, 학교 시간표와 로컬의 운영특성에 맞게, 공교육 안에서 지속 가능한 구조로 재설계한 것이다.
제주 비전퀘스트는 총 8회기와 1박 2일 캠프로 구성된다.
왜 8회인가? 다년간 코칭과 교육프로그램을 설계해 온 결과, 8회기 전후가 한 사람의 내면에 가장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지점이었다. 1~2회는 관계를 형성하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아직 방어적이다.
3~4회기에 서서히 진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5~6회기에 핵심 상처와 진짜 욕구가 올라온다.
7~8회기가 전환의 문턱이다. 새로운 선택을 선언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1박 2일 캠프가 피날레처럼 들어간다.
8회기 동안 학생들은 단순 체험이 아니라 코칭이 접목된 체험을 한다. 감정해방명상, 애니멀테라피, 수중명상체험, 신체훈련, 감정카드, 아로마테라피, 드라마테라피, 커뮤니티 카운셀링 등의 체험 활동에 참여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각 회기마다 "이 체험이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단어와 문장으로 붙잡는 것이다.
그래서 통찰과 기록을 이어간다. 아무리 강렬한 체험도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기록되지 않은 통찰은 대부분 일주일 안에 증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1박 2일 캠프는 단순 MT가 아니다. 현대적 통과의례를 구현하는 장치다. 자기가 여기에 온 이유를 선언하고, 과거와 상징적으로 결별하며, 자연 속에서 혼자 1시간 30분 정도 머무는 시간을 갖고, 장작불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고, 비전과 실행 계획을 선언한다.
우리는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있는 한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운영 했었다.
첫날, 아이들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명상 시간에는 장난치고, 자기 이야기 나누기 시간에는 침묵했다. 그런데 3주 차쯤,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저는 제가 왜 학교를 그만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숨이 막혀서요." 그 순간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물었다. "다시 해볼 수 있겠어?" 95% 이상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가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에 조심스러운 이유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책임의 문제다. 혹시 문제 생기면 누가 책임지나? 학교 밖에서 온 프로그램이 문제를 일으키면 어떻게 하나?
둘째는 시간문제다. 이미 과부하인데 또 해야 하나? 준비, 홍보, 운영, 평가에 드는 시간이 부담이다.
셋째는 신뢰 문제다. 그런 프로그램이 정말 효과 있나?
이런 우려는 당연하다. 관리하고 지키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접근했다.
첫째,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명확한 계약 구조로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학사일정을 완벽히 준수한다. 교사의 과부하를 가중하지 않은 시간표를 설계한다. 사전에 학부모, 학생, 교사 모두에게 설명회를 연다.
둘째, 신뢰를 쌓는다. 첫 해는 소규모 10~20명으로 시작한다. 성과를 가시화한다. 전후 비교, 학생 피드백, 교사 피드백을 정량화한다. 지역 신문, 교육청 보도자료로 알린다.
셋째, 교사를 참여시킨다. 교감 선생님을 핵심 파트너로 삼는다. 최고 의사결정자가 프로젝트에 깊이 개입하면 성공률이 높다.
학사 일정 조율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학기 중에 하려고 했는데, 그럴 경우 친구들은 수업을 받고 있는데 자기들은 이 치유 교육 클래스에 가야 한다는 것 또한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의 학사 일정을 정확히 파악한 후 학교가 이미 예정한 공백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어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학교에는 이미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정한 아이들을 위한 숙려제 프로그램이 있고, 우리는 그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붙잡아 보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비전퀘스트는 학교 밖 청소년 프로그램이 아니라 학교 안 마지막 방어선으로 위치한다. 결국 학교를 떠나지 않고 학교를 잘 마치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면서 그 안에 새로운 길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급변하는 감정을 대처하기 어려운 적이 있었다. 어떤 날은 엄청 적극적이다가 어떤 날은 다운돼서 전혀 참여를 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었다. 이럴 때 중요한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다. 오늘은 잠을 자든 조용히 있든 그 또한 자기 선택임을 인정해 준다. 강제 동원된 치유는 치유가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다.
둘째, 선을 넘을 때는 단호해야 한다. 타인을 해치거나 집단을 무너뜨리는 행동에 대해서는 그런 행동과 씨앗생각이 네 인생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치유는 달콤함만이 아니라 경계와 책임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햇볕에 걸으면 몸이 좋대'라고 다 같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A 학생은 엄마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햇볕을 걷는 거고, B 학생은 개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걷는 것이다"
같은 활동이지만 각자에게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화된 치유"와 "집단 프로그램"이 함께 가능한 이유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주제가 돈이다. "돈 많이 벌고 싶어요." "돈만 많으면 다 해결될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 뒤에는 돈의 속성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의 막연한 환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치유 교육 안에 돈과 내면의 균형이라는 주제를 같이 다룬다.
돈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돈은 에너지이자 책임이 따르는 자원이다.
그래서 비전퀘스트 이후 중소벤처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 고용노동부의 청년센터 등과의 연계를 장기 로드맵 안에 넣어두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직접 설계하고 직접 운영하는 모델이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전국 확산이 불가능하다. 앞으로는 프로그램 각 파트를 나누어 맡을 수 있는 교사와 전문가를 양성하고, 학교 안에서 이 모델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내부 퍼실리테이터를 키워야 한다. 그리고 지역 치유자원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로컬 파트너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목표하는 단계별 로드맵은 이렇다. 2025년 파일럿 운영을 마무리한 후 성과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델을 개선하며 언론화와 교육청 보고를 한다.
2026년에는 같은 교육청 내 2~3개 학교를 추가하고 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2027년 이후에는 공식 교육청 사업으로 편입하고 "학교 밖 전 프로그램"으로 제도화하며 지역별 변형 모델을 개발한다.
특히 교사 양성을 통한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기존 교사 중 희망자를 선정하여 40시간 전문 교육 과정을 제공하고, 학교 내 내부 퍼실리테이터로 배치하며, 외부 전문가는 지도와 관리 역할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외부 비용을 70% 절감할 수 있고, 교사의 전문성이 강화되며, 학교의 자주성이 확보된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치유 교육 모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한다. 아이들은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가정 내 정서 환경과 또래집단의 정신 건강이 너무 열악하다면 우리가 심어준 깨달음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또한 대학입시 중심의 교육 구조, 예산 제약, 교사 과부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래도 아이들 가슴에 씨앗 하나는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씨앗의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너는 문제아가 아니다." "너는 이 시스템과 부딪힐 만큼 큰 에너지를 가진 존재다."
몇 년 뒤 어느 날 문득 그 아이가 그때의 경험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 가능성 하나 때문에 이 모델은 계속 시도될 가치가 있다.
공교육에 치유를 심는다는 것은 아이들을 그저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학교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최선에 함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