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이 아는 사실
평일 오전인데도 서점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회전문을 미는 순간 콩닥거리기 시작한 가슴은 출입구에서 가까운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면서 점점 더 귀까지 들릴 정도로 쿵쾅거렸다.
긴장하면 나타나는 소변 마려운 증상을 해결해야 했다. 볼일을 보고 손을 닦은 후 거울로 다가가 얼굴 상태를 확인했다. 거울 속 내 얼굴은 그윽한 불빛을 받아선지 예뻐 보였다.
“그 사람 평일 낮에 가끔 그 서점에 나타난대 누군가와 약속 있을 때 장소를 거기로 한다나 봐 진영이도 지난주 수요일인가 그곳에서 봤대. 물론 긴장 돼서 다가가 인사도 못했다더라”
팬들 사이에 공공연히 돌고 있는 얘기를 은영에게 들은 다음부터 나의 마음은 그 서점에 가 있었다.
오늘 아침 강의가 끝난 뒤 서점에 들러야지 하면서 운 좋으면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옷을 몇 번씩 갈아입고 핑크빛 립글로스를 발랐었다.
화장실을 나와서 최대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서점 안을 돌았다. 동공을 활짝 열어 시야에 들어온 서점의 모든 곳을 구석까지 훑었다. 신간서적 진열대 앞까지 걸어가는 중간에 멈춰 서서 국내소설 한 권을 펼쳤지만 내용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이런저런 책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한 번씩 고개를 들어 그의 모습을 찾았다. 서점 안에 떠다니는 작은 소리들 속에서 그의 음성을 감지하려고 긴장을 놓지 않았다. 진열대 A에서 J까지 한 바퀴를 도는 동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터벅터벅 시집이 진열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금요일 이 시간에 여기 있겠어? 오늘은 만나지 못하려나 보다. 포기하려니 무력감이 엄습해 왔다.
시집을 찾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아무 생각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기자님’ 한마디 하고서는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여기 웬일이세요?’ 마음과는 다른 말을 던졌다. 대답대신 씩 웃는 그에게 나는 ‘책 선물하고 싶어요.’ 했다. 바랐던 대로 그를 찾았지만, 아니 그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냐 책 많아’
‘이문재시인 시집 새로 나왔어요’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았다.
‘어떤 거?’
‘이거요’
검색 쪽지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손끝이 심하게 떨렸다. 그 시인의 신간이 나온 걸 알았을 때 제일 먼저 그를 떠올렸고 선물하려고 했는데. 시집 제목조차 생각나지 않아서 검색한 종이를 내밀다니. 등에서 진땀이 났다. 그는 종이를 들여다보더니 ‘있어’ 하면서 내 손을 살짝 잡아주고 뒤돌아서 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그가 어떤 남자에게 걸어갔다. 일행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었지만 다가가 아는 체할 수 없었다. 자리를 옮기며 얘기를 나누는 그들을 책을 보는 척하면서 한동안 힐끔거렸다.
조금 뒤 계산대로 가다가 몇 권의 책을 손에 들고 서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에게 가벼운 미소를 보내더니 일행과 함께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보았다 계산을 마치고 화장실로 갔다 거울 속 나는 발그레한 볼로 웃고 있었다.
‘야호! 이걸로 됐어 운 좋게 그를 만났고 그의 미소를 받았고, 둘만이 아는 사실을 간직하게 되었잖아’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콧노래는 계속되었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당분간은 그 서점은 가지 않아도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