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윤수 May 28. 2023

일본에 꼭 100년 전, 조선인 학살사건을 묻다

요즘 미국과 일본의 선봉, G7 들러리 노릇에 바쁜 척 하는(?) 당국에 하나 물으려 한다.      


얼마 전(4월24일 미국 WP 인터뷰) 尹 대통령이 “일본은 100년 전 일에 무릎 꿇을 일 없다”고 했는데 그가 말한 100년 전 일이 무언가이다.      


공교롭게도 꼭 100년전인 1923년 일본의 관동 대지진에서  조선인 학살사건이 있었다. 무려 6천여명이 희생되었지만, 아직도 일본의 공식 조사도 없었고 사과나 사죄도 없었다. 그런데 이걸 묻거나 확인하지 말자는 이야기인가?      


우리를 둘러싼 나라들과 관련된 중요한 연표를 보자.     


대일항쟁기(일제 강점기) 1910~1945년

31만세운동 1919년 (104년전)

관동대지진 1923(100년 전)

일본 원폭 투하 1945(78년 전)

----------------

한미동맹 1953년 (70년 전)

한일수교 1965년 (58년 전)

한러수교 1990년 (33년 전)

한중수교 1992년 (31년 전)

----------------     


미국의 원폭투하는 일본이 선전포고도 없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1941년 12월)함으로써 발생된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1945년 8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여 발생한 조선인 희생자(약4만~7만명)에 대해 尹과 기시다가 5월 21일 함께 참배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히로시마는 기시다의 지역구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의 지역구에서 열린 G7회의에 참관국(옵저버)로 초대된 9개 국 중 하나였다. 주최국 일본으로부터 초대받으려고 그랬나(?), 尹은 미국 국빈 방문 전 “일본은 100년 전 일로 무릎 꿇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일본은 78년 전 전쟁상황에서 미국이 신(新) 무기를 쓴 게 문제고 여기서 일본(재일 조선인 포함)이 피해국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인데, 100년 전 지진 상황에서 조선인을 마구 학살한 것은 문제가 없나?

--------------------     


한미 한일관계와 한중 한러관계는 다른가?     


우리를 둘러싼 4개 국가가 있다. 현 정부가 집권한 약 1년 전부터 미국과 일본은 친구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친구가 아닌 나라로 바뀌었나?  지난 30여년 동안 중국과 러시아와 잘 지내면서, 교역도 잘 했고(막대한 흑자도 누렸고) 특히 러시아에서 누리호 발사 로켓 기술도 전수받지 않았나?      


현 정부는 한미의 70년과 한일의 58년만 얼싸안고 있다. 특히 尹대통령의 역사인식인 “일본은 100년전 일로 무릎 꿇을 필요가 없다”라는 주장에서 100년 전 일이 궁금하다.     


내가 아는 한 관동대지진에서 약 6천 여명의 한국인(당시 조선인)이 학살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1백년이 지나는데도 이 사건에 대한 공식 조사도, 일본의 사과든 사죄든 없었다. 그 사건 후 1년이 경과된 시점에 발행되었다는 신문을 그대로 옮긴다.     


다음은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에 관련된 신문기사이다.          


‘지진으로 하루 만에 홀랑 타버린 튼튼하지 못한 수도를 갖고 있다는 것도 일본에게 별로 명예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큰 일본의 불명예는 9월 2일 있었던 조선인 소동이다. (중략) 얼마나 어리석고 생각 없이 행한 야만의 극치였던가.           

지진 당일을 기념하려면, 먼저 이 조선인 소동의 전말을 어떻게 해서든 공표하고 그 과오를 천하에 사죄하는 일이 먼저 되어야 한다. 9월 1일에 대지진이 있었던 사실은 아무도 아직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인 사건에 대해서는 잊기는커녕 그 사실을 묻어버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는 곧 수치에 수치를 덧칠하고 있는 격이다.’          


< 도쿄 아사히신문> 1924년 8월 28자 석간          

- 『근현대 한일관계와 국제사회』 강상규·김세걸 188쪽에서 전재          


나는 진상조사와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전제로, 앞으로 일본과 친해지고 싶다. 나도 지일(知日)과 친일(親日)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     


일본은 사죄하고, 우리는 용서하자     


나는 가까운 이웃인 일본을 용서하고 싶다. 이것의 전제는 그들이 자기 선조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후세들에게 정확하게 자기네가 저지른 일, 참 역사를 가르치는 경우에 그렇다.     


대지진이 발생한 재난상황에 일본 정부가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푼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하여 조선인을 학살하도록 했는데 일본 정부가 전혀 책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자기들이 저지른 전쟁에서 일어난 일, 원폭투하의 피해자인 척 할까? 尹은 왜 여기에 개입했을까? (여태껏 역대 대통령 누구도 개입한 적이 없는 일인데 말이다)      


기시다 등 일본이 진지한 반성과 사죄를 약속한 것인가? 이것을 알고 싶다. 어린이가 보는 관동대지진에 관한 책을 소개한다. 어른들도 한번 읽어보아야 할 책들이다.

--------------------     


관동 대지진과 마사코의 질문     

 

『마사코의 질문』은 1979년에 나온 손연자의 동화집인데, 2018년에 전자책으로 제작되어 공공 도서관에 소개되어 있었다 (1979년 종이책, 푸른책들)

     

일제 강점기, 가슴 아픈 역사의 증언     


『마사코의 질문』은 일제 강점기에 고난을 겪었던 우리 겨레의 삶을 다룬 동화 9편을 담은 책입니다. 일본인 소녀의 입으로 일본의 죄를 묻는 표제작 「마사코의 질문」을 비롯해 '생체 실험', '관동대지진', '정신대 문제' 등과 같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었던 온갖 수난들을 생생하고 절실하게 그려낸 작품들이 실려 있습니다.     


마사코는 할머니와 함께 히로시마의 평화 기념 공원에 갔습니다. 할머니의 엄마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에 의해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마사코는 할머니에게 원자 폭탄 '꼬마'가 아주 무서운 존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마사코는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미국은 왜 일본에 원자 폭탄을 떨어트린 걸까요?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여기에「꽃을 먹는 사람들」에는 원래 일본인인데도 말을 더듬는 겐지가 조선인으로 오인받아 희생된다는 이야기,「마사코의 질문」은 1945년 8월 6일의 원폭투하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     


관동 대지진과괴물들의 거리    

 



2011년 박지숙의 『괴물들의 거리』에는 「관동 대지진 조선인 대학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어린이 시각으로 본 조선인 대학살 사건이다.  초등 고학년이  읽을만하다는데, 너무 끔찍해서 읽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역시 전자책으로 발간되어 있다.

 

1923년 도쿄에서 일어난 조선인 대학살     

그 잔혹한 대학살을 목격한 어느 조선인 소년의 이야기, 《괴물들의 거리》     


일본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서 나무로 지은 판잣집에 모여 살던 조선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들이 겪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참혹하고 슬픈 역사입니다.     

일본 이름은 아스카, 한국 이름은 원인 소년이 부모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 와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매일 일본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지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굉음과 함께 강진이 여러 차례 발생하고,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됩니다. 수십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불타버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실종됩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이러한 재난에 미흡하게 대처했고 가뜩이나 불안했던 국민들의 불만은 이를 계기로 극에 다다릅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분노한 민심의 화살을 조선인에게로 돌려 버립니다. 오늘날 ‘가짜 뉴스’라 불리는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마치 진짜인 양 퍼뜨리면서요.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알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는 예전에는 키에프 공국으로 민족적 동질성이 있고, 두 언어가 상당히 유사하다고 한다. 그런데 1932년부터 33년 사이에 스탈린의 홀로도모르라는 아사(餓死) 사건이 있다고 한다. 이 집단학살이 우크라이나에 각인된 일종의 역사전쟁이라고 한다.         


내가 제시한 연표  중 가까운 과거는 1992년 한중수교, 1990년 한러수교이고, 먼 과거는 꼭 100년전 1923년 관동대지진, 그리고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미국 일본과의 한미동맹 70년(1953년)과 한일국교정상화 58년(1965년)은 기념할 만한 일이고, 이보다 가까운 1990년대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중국 러시아 관계는 배척(?)되어야 할 사건인가?

----------------------     


안세경세(安世經世)와 균형외교가 절실하다     


우리를 둘러싼 나라들과 모두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하자. 지난 주에 성공한 누리호 로켓 개발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고, 지난 30년간 무역흑자의 대부분을 중국을 통하여 얻었다.


이 정부 들어 중국과 러시아를 배척하면서 얻는 게 무엇인가? 막대한 무역적자 누적와 불필요한 외교마찰 외에 무얼 얻었나?


우리는 미국에 대해 필요한 경우에는 노(No)라고 말하고, 중국-대만 문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립을 지키자. 이런 균형외교가 절실하다.         

-----------------------


* 「매봉재산 30」은 정치·사회 현상에 대해, 어느 지공선사(地空善士,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사람, 가끔은 指空禪師)가 쓰는 글입니다.                    

이전 04화 이승만과 대마도 반환 요구, 일본이 그린 지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