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에서 평화? 아니면 전쟁? (5편)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945년 8월 15일에서 1953년 7월 27일’에 대한 글이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도쿄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의 책을 소개한다.
광복과 남북분단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발표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 해방이 찾아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항복을 받아들인 시기로 말미암아 조선은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고 말았다.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8월 초순에 받아들였다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일도, 소련이 참전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조선의 분할 점령도 일어나지 않고 끝났을 것이다.
8월 15일 미국이 제안한 조선 분할 점령을 소련이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세력권을 분할한 미소의 사실상의 동북아시아 협정에 조선이 편입됐다.---
한반도 전역을 자국의 영토라 주장하고 상대방을 자국 영토의 일부에 자리 잡은 외국의 괴뢰로 치부하는 대항적인 두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 41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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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이다. 일제의 35년 강점(식민지배)에서 해방된 날인데, 해방과 남북분단은 공교로운 운명의 장난이다. 여기에 여러 의견이 있지만, 위의 4문장이 간단히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는 와다 하루키가 쓰고 남상구·조윤수가 옮긴 책(청아출판사)으로 700쪽에 달한다. 한자는 ‘韓國戰爭 全史’이고, 발행일이 2023년 7월 27일인데, 7월 27일은 1953년에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기도 하다.
마지막 제8장 「한국전쟁 후 동북아시아」에서 인상 깊은 대목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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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남과 북
북한도, 남한도 통일을 위해 전쟁을 했으나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거의 원래의 분할선인 38선 부근에서 전쟁이 중단됐다. 군사분계선은 서부에서는 38선 아래로 내려가 개성 지구, 옹진반도 등이 북측에 포함됐다. 동부에서는 38선 위로 올라가 철원군의 남쪽 반, 양구군, 인제군, 고성군 등이 남측에 들어갔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은 거의 같다고 해도 좋다.(601쪽)
사망자 수는 정확히 모른다. 남북 합해서 300만~4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1931년 만주 침략부터 1945년 패전까지 발생한 일본의 사망자 수 300만 명을 넘는 수치다. 1949년 6월 1일 남북의 총인구가 2,865만 명이었으니, 사망자는 10%가 넘는다. 전사자와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 외에 학살당한 사람도 많았다. 통치자나 점령자가 철수할 때, 북쪽이든 남쪽이든 감옥 안에는 처형된 죄수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적의를 갖고 마을 사람 전체를 살해한 사례도 있었다.(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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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국전쟁은 한반도 사람들에게만 일대 분수령을 이룬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에게도 일대 분수령이었다. 충돌은 미국의 대외 정책, 국가안전보장정책, 군사정책, 그리고 국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604쪽)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비는 전쟁 전 GNP 6% 규모에서 1953년 18% 규모로 증가했다.(605쪽)
한국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지 않은 최초의 전쟁이었다. 공산주의자와 싸운 전쟁임은 분명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의 한국을 보면, 이것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 전쟁이 가져온 거대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쟁 자체는 “잊혀진 전쟁 a forgotten war”이 된 것이다. 워싱턴 링컨 기념당 앞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진 한국전쟁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한국이 민주화된 1995년으로, 베트남전 전사자 기념비가 세워진 것보다 늦다.(6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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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미국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공공연히 대전환을 이루었다면, 소련의 변화는 은밀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미국의 대전환에 필적하는 변화였다.(607쪽)
한국전쟁은 말 그대로 스탈린의 전쟁이었다. 스탈린은 크렘린 안에서 한국전쟁 총감독을 맡았다. 그의 지휘하에 소련은 북한군과 중국군에게 대금 지불은 일정 기간 뒤로 미룬 채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후방 기지, 병기 생산 공장이 됐다. 게다가 소련 공군은 한반도 상공에서 직접 미국 공군과 전쟁을 했다. 하늘의 전쟁은 전무후무한 미소의 전쟁이었다.(6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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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양국의 “군사, 정치, 경제, 외교의 전면적 힘겨루기”였는데, 무승부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막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에는 희생이 큰 전쟁이었지만, 미국과 대등하게 싸운 혁명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완전한 위상을 확립했다.(611쪽)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미국이 타이완해협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결과, 중국은 타이완을 무력으로 해방시키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6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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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타이완의 중화민국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위상을 확립할 수 있었다. 장제스 정권은 자신의 군대를 한반도에 파견하겠다고 여러 차례 제의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6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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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전쟁으로 큰 이익을 본 또 다른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정치 체제와 경제의 기초는 이 전쟁 속에서 만들어졌다. 패전 후 일본 국민의 반전, 반군 감정은 강했고, 헌법 9조 규정과는 친화적이었다.(613쪽)
일본 국민은 한국전쟁을 강 건너 불로 여겼지만, 이 전쟁은 일본 경제 재건에는 큰 의미를 갖는 특수를 안겨 주었다. 한국전쟁은 이후 일본의 비군사적 고도 경제성장의 토대가 됐다. 주관적으로는 비군사적 발전이지만, 객관적으로는 전쟁을 이용한 발전이었다.(6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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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전쟁은 없어야 한다
이번에 1945년부터 1953년까지의 한국에 대해 제3자 시각에서 쓴 책을 소개하였다. 전에 소개한 책은 직접 전쟁을 겪거나 참가한 한국(KBS, 이철 등), 미국(리지웨이)의 시각이지만, 이 책은 옆에서 바라본 일본의 시각이기에 더 의미가 크다.
지금껏 70년째 이어진 어정쩡한 상태, 즉 정전(停戰)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종전(終戰)이 아니라면 어디로 가나? 다시 전쟁을 하자는 말 아닌가.
이제 평화로 가야 한다. 자주국방을 완비하고, 북한의 핵 포기를 설득하고, 인도적 분야는 도우면서 새로운 남북관계, 동아시아를 만들어야 한다.
올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두드러진 해인 모양이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구온도를 높이고 있는게 분명하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대만의 분쟁 해결과 남·북 평화체제가 지구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치도록 우리가 앞장서자. 우리는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이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이다.
다음은 늘 첨부하는 <나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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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장 : 「힘의 우위」에 터 잡은 평화통일 방안
분단상태를 극복하려면 ‘자주국방태세를 완비’하고, 미국과 유엔군의 존재를 지워야 한다. 그리고 ‘워싱턴 선언’은 폐기되어야 한다.
가. 평화든 전쟁이든 「작전통제권」 환수부터
국가는 영토, 국민, 주권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주권은 대내적 최고권, 대외적 자주권을 말한다. 주권의 핵심은 군사력이고, 자기 군대를 국군통수권자가 제대로 지휘하는 것이 기본이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정해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구한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그곳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북한이 주적(主敵)이라는 말은 그곳을 3대째 통치하는 김씨 공산왕조에 국한된 말이다.
남과 북은 수천 년 역사를 같이 한 동포다. 그들을 최대한 설득하자. 우리는 이미 그들을 압도하는 국력(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졌다. 여기에 왜 미국이나 일본을 끌어들이나?
6·25동란이 일어난 해 1950년 7월 14일 탱크 1대도 없던 시절에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에게 위임한 한국군 작전통제권(OPCON)을 당장 환수해야 한다.
한번 물어보자.
(1) 세계 6위인 군대 지휘를 남에게 맡겨놓은 나라가 주권국가인가? 2만 8천명 주한미군이 50만명 한국군을 지휘하는 게 정상인가?
(2) 어느 나라든 최후 수단으로 유보해 놓은 핵무기 개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나라가 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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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국방력 강화는 이렇게 하자
이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때까지) 잠정 조치다.
(1) 대한민국은 핵무기 개발을 시작한다. (북한이 폐기하는 순간 우리도 폐기한다)
(2) 군 의무복무 기간을 (육군 기준) 18개월에서 24개월로 환원한다. 병역법에 24개월로 되어 있다. (대만은 4개월에서 12개월로 늘렸다)
(3) 여성도 군에 의무복무한다. (북한, 이스라엘, 노르웨이, 스웨덴 등). 이스라엘처럼 임산부 현역 복무 제외 등 대체 복무제도를 도입한다.
(4) 병사 봉급인상(200만원까지) 대신, 그 재원을 항공모함, KF21 고도화, 원자력잠수함 건조에 사용한다. 방위성금을 모집한다.
(5)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허용한다. (주둔 비용은 서로 논의한다)
* 2000년 6월 김대중·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은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연재 〔김대중 회고록〕, 2023.4.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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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계속 예정입니다)
(책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