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들

한돌의 시

by 신윤수

연필1


책상 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연필이 연필깎이에 넣어도 끝이 다 잠길 정도로 짧아졌다. 이제는 끝낼 시간, 그런데 이것저것 번갈아 쓰다 보니 이 녀석을 언제부터 썼는지 기억 전혀 없다. 쓰레기통에 버리려다가 아직 써지는데 하면서 서랍 속에다 넣어두었다. 미안해서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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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2


짧아질 대로 짧아진 몽당연필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다시 한번 연필깎이에 넣어 돌린다


이제 끝 조이기도 어려운데

그는 연명치료를 거부한 말기환자처럼 깍이 속에서 겉돌고


몇 개월 몇 년 작아진 채 책상 속 감금생활이 억울하다며

그동안 속 깊은 검은 열정들 다 어디에 썼나

여기저기 그은 선들도 많은데 도대체 어찌 되었나

글쎄 기억나지 않는다며---


이제

가야 할 시간이야!


혹시 볼펜대에 끼워 쓸까 했는데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니 이제는 보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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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3


정치는 미완성 쓰려다 다 못 쓴 연필

그래도 우리는 곱게 떠나야 해

몽당

몽땅

떠나야 해

* 몇년째 계속되던 선거와 투표가 끝난 모양입니다. 가는 이가 있어야 새로 오는 이도 있지 않을까요.

- 어느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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