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조회가 많았던 글이 ‘고려 서경(西京)의 위치’에 대한 글이었는데,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2022년 5월 22일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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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들은 왜 그랬을까, 조선과 일본의 역사 조작 (3부)
가. 고려의 서경(西京)이 어디지?
국사책을 펼치면 늘 느끼던 의문이다. 나는 고려(918~1392)의 수도가 개경(지금의 개성)이고 서경은 지금의 평양이라고 배웠다. 한자로는 開京, 西京이라고 쓴다. 그런데 서경이 있으니 동쪽에는 수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개경이라고, 동경이 아니고. 개경의 북쪽인데 왜 북경(北京)이 아니라 서경이라고 부르지? 이상하지 않은가 (중국의 북경(베이징)은 1403년 명 왕조에 이르러 생긴 지명이다).
나. 고려 왕건의<훈요십조>와 단재의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918년 6월 15일(음력) 왕건은 국호를 ‘고려’, 연호를 ‘천수’라고 정했고, 즉위 다음 날 ‘짐이 여러 신하들의 추대에 의해 천자의 지위에 올라’라는 조서를 내렸다.---황제의 자칭인 ‘짐’이나 ‘조서’를 사용한 것은 그가 황제국을 지향했음을 말해준다.
왕건은 고려가 고구려를 이은 나라이며, 고구려 제국을 재건하려는 강력한 의지를「훈요십조(訓要十條)」에 담았다. 여기의 4번째 항목이 바로 ‘서경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고려의 서경이 현재의 평양이라면 그가 계승한다는 고구려가 넓은 대륙의 나라가 아니라는 오해를 불러온다. 이게 바로 반도사관의 출발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고려의 서경은 절대 현재의 평양이 될 수 없다.
다. 일제는 우리 땅이름을 몽땅 바꿨다(창지개명,創地改名)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다. TVN에 보도되었다고 한다. 그대로 옮겨 적는다.
“1910년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고유의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이른바 창지개명(創地改名)이 추진된다. 식민지 통치를 위해서는 행정구역의 재편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계획적인 지명 바꾸기를 서둘러 실시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행정구역 폐합 정리라는 명분으로 조선의 군 97개, 면 1천834개, 리 동 3만 4천233개의 우리말 이름이 사라지거나 바뀐 것으로 확인된다.”
라. 고려, 조선의 국경 회복과 더불어 ‘땅이름 바로 찾기’부터
서울지역 지명마저 30% 이상이 일제가 잘못 붙인 지명이라는 기사가 있었다(한겨레, 2017년 8월 14일 자) 어처구니없지 않나. 도대체 그동안 무얼 했는지 화가 나지 않나. 서울에서 지명 왜곡이 가장 심각한 곳은 예부터 사람이 많이 살았고 지명도 많았던 4대문 안이라고 한다. 일제가 창씨개명(創氏改名)에다 창지개명(創地改名)까지 했는데---
지금껏 60대 후반의 나이까지 나를 채운 과거와 현재에 대한 역사·지리가 대개 엉터리였다. 서점에는 이런 책들이 널려 있고, 유튜브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많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지금껏 배운 지리·역사가 전혀 사실과 다를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분야를 공부하면 할수록 왜 그렇지 당황하고 있다. 2년 전에 가설(假說)로 써둔 글을 점검해보면 이것이 사실(史實)에 부합되는 진짜 이야기로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있었다. 적어도 1987년 민주화 이후 새로 들어선 정부들이 대개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 무얼 했는지 별로 효과는 없어 보이지만---.
그런데 이번 정부는 이상하다.
작년(2023년)은 1923년 일본에 관동대지진이 나고, 조선인 6천여명이 학살당한지 꼭 10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일본에게 “100년전 일로 무릎 꿇으라 할 수 없다”는 이해되지 않는 발언을 했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이번에 6개월 전에 소개받은 책을 소개한다. 민간 역사가 오재성이란 분의 『숨겨진, 우리 역사를 찾다』이다. 저자는 역사서들의 기록과 지도를 교차검증하여 방대한 책을 써 냈다. 유튜브 ‘책보고’에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 책을 자주 참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책표지)
다물(多勿)에 관하여 서술된 부분(책 37쪽)을 아래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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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물정신(多勿精神)이 밴 지도력을 갖춘 자를 못 키웠나?
다물정신이란 고구리말에 구토(舊土)회복을 다물이라고 하였는데 풀이하면 원상복구라는 말이다. 주몽 이전에 있던 국가 구리를 기준으로 하는 역사를 복원하겠다는 뜻이다.
아시아 역사에 최초의 국가 구리(九黎, 보통 ‘려’지만 나라이름 ‘리’로 읽는다, 필자 해석)를 회복하여 하나로 하겠다는 뜻이다.
과거를 알고 현재를 개척하고 미래의 이정표를 남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이면 절대로 잘못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에 부끄럽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살고 미래에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도력을 가진 자를 양성해야 한다.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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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물, 그 역사와의 약속』
*강기준 지음, 도서출판 다물, 1997
이 책은 내가 젊은 시절에 접한 책이다. 지금은 ‘다물’이 무언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대부분일지 모른다. 그런데 1990년대에는 다물이야기가 인기어였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바른 미래를 위해 다물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 대하여 2022년 7월 8일에 써둔 글이다. (클릭하면 읽을 수 있다)
다물(多勿)은 「다(모두) 무르다」라 하여, 「되물린다」, 「되찾는다」, 「되돌려 받는다」라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우리 역사에 다물이 처음 등장한 것은 BC 590년 ~ BC 545년 동안 재위했던 단군조선 제38대 임금(단제, 檀帝) 다물(多勿)부터였다. 이때가 바로 우리 민족사에 있어 흔히 「남북 2만리, 동서 1만리」의 강역(疆域)이라 하여 동북아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위대한 시대였다.
오늘날 당시의 강역도를 다시 그려보면 그 경계가 동(東)으로는 동해와 러시아 연해주, 남(南)으로는 일본과 대만, 서(西)로는 중앙아시아, 북(北)으로는 내몽고에 다다르는 광활한 아시아 대륙 전체를 포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