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다가 예전에 알던 ‘다물(多勿)’이 생각나서, 25년 전에 사놓고는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책을 읽었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먼저 다물(多勿)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다물 단군(多勿檀君)은 47명의 단군 중에서 38세 단군이다. BC 1285년에 즉위하여 19년 재위하였다. 아래는 『규원사화』 (북애자, 다운샘, 2012)에서 인용한 글이다.
『규원사화』는 조선 숙종 2년(1675년)에 만들어진 책인데, 1972년에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 등 고서심의위원 3명이 심의하여 숙종 때 쓰여진 진본임이 확인하였다. 그런데 이병도 등은 제작연도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병신년은 임검 다물 원년이다. 알유가 다시 서쪽 마을을 침범하여 진번후가 예후와 부여후로 더불어 쳐서 물리쳤고, 진격하여 그 지경까지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재위 19년에 돌아가 아들 두홀이 섰다.’ (한자 표기 부분은 생략) (『규원사화』 146쪽에서)
‘47대 단군 1205년간 지속되었던 고조선의 역대 단군은 다음과 같다. ( )의 숫자는 재위 기간과 재위 원년이다
1세 단군 왕검(王儉, 93, BC 2333)
2세 부루 단군(夫婁, 34, BC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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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 다물 단군(多勿, 19, BC 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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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세 고열가 단군(高列加, 30, BC 1158)
* 위의 연대표는 이 책의 기록을 참고하여 정리한 것으로 역대 임금의 재위 기간은 1205년이다.’ ( 『규원사화』 213~214쪽에서)
인터넷에서 ‘다물(多勿)’을 검색하니 한국고전용어사전과 나무위키가 있는데 ‘다물 단군’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먼저 한국고전용어사전이다.
한국고전용어사전의 다물(多勿)
정의: 다물(多勿)이란 ‘옛땅을 되찾음’ 이란 뜻의 고구려 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2년 6월조에서 고구려어로 구토(舊土) 회복의 뜻임을 알 수 있음.
용례 : 2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매 임금은 그곳을 다물도라 하고 송양을 봉하여 그곳의 주로 삼았다. 고구려 말에 구토의 회복을 다물이라 하므로 그와 같이 이름한 것이다.
;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來降 以其地爲多勿都 封松讓爲主 麗語謂復舊土爲多勿 故以名焉 [삼국사기 권제13, 4장 앞쪽, 고구려 1 시조 동명성왕]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다음은 나무위키다. 제법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검색 결과(http://namu.wiki/w/다물)를 그대로 옮긴다.
나무위키의 다물(多勿)
1. 개요
고구려어로 '옛 땅을 회복함' 혹은 '원래의 상태로 회복함' 이라는 뜻으로, 이후 각종 민족 종교에서 이 용어를 차용하였으며 특히 환빠들이 매우 심하게 곡해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2. 본래 뜻
다물이라는 용어가 사서에서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가 최초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편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다른 기록은 찾기 힘들다.
원문: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来降, 以其地為多勿都, 封松讓為主. 麗語謂復舊土為多勿, 故以名焉. 2년)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임금을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이라 한 까닭에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일권
여기서 옛 땅을 회복함이란 말은 동명성왕의 입장이 아니라 송양의 입장에서 해석함이 옳다는 게 중론이다. 송양이 자신의 나라를 바쳤으나 다시 그 땅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이는 송양이 옛 땅을 되찾은 것과 같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당시의 정황으로 보면 동명성왕이 과거에 갖고 있던 땅을 되찾는다는 의미로 보기가 힘들다. 復이라는 한자의 뜻에는 ‘회복하다’의 뜻도 있고, ‘돌려보내다’라는 뜻도 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고구려의 왕 입장에서 송양에게 송양의 땅을 되물려 준 것이다. 당시 고구려의 언어 음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대 한국어의 '되물려주다' 와 '다물'이라는 음의 유사성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해당 내용을 담은 주석
3. 후대의 왜곡된 의미
구한말 이후 등장한 대종교, 증산도 등 민족종교 단체와 군대에서는 다물의 의미를 더욱 확장해서 한민족의 근본 정신, 일종의 민족 혼과 같은 거창한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제 다물의 의미와는 크게 동떨어진 것.
게다가 환빠들은 이를 더더욱 왜곡하여서 사용하고 있다. 환빠의 주요 특성인 확장주의, 기원주의 등과 이 다물의 본 뜻이 겹쳐서 마치 '한민족의 옛날 위대한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라는 주장으로 이용하는 것.
나무위키의 설명에 대한 의견
나무위키는 개방형 용어사전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다가 ‘다물(多勿)’에 대해 기술한 사람은 ‘환빠’라는 말을 쓰면서, ‘환빠의 주요 특성인 확장주의, 기원주의 등과 이 다물의 본뜻이 겹쳐 놓아 마치 '한민족의 옛날 위대한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라는 주장으로 이용하는 것’이란 주석을 붙여놓았다.
『규원사화』(조선 숙종 때 만들어진 책)에 ‘다물(多勿) 단군’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기록은 찾기 힘들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객관적 설명이 아니라 어느 쪽에 경도된 주장으로 보인다. 나는 ‘다물(多勿)’이란 말은 그런 조잡한 말이 아니라 1990년대 아주 훌륭한 말로 알았고, 이걸 설명해주는 강의도 들어 보았고, 책도 구입하였다. 25년 전에는 『환단고기』가 지금처럼 유명한 책도 아니고, ‘환빠’라는 말이 없었던 것 같다.
혹시나 해서 나무위키에서 ‘환빠’란 말을 찾아보니 엄청난 분량의 글이 달려 있었다. 여기에 두 문장만 옮겨본다.
‘환빠는 극단적 민족주의에 기반해 한국사를 근거없이 무분별하게 확장하고 망상하는 사이비 유사역사학자들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있지도 않은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미래를 버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환빠의 '환'이라는 지칭은 위서로 판명난 환단고기로부터 비롯되었다.’
나무위키에는 『환단고기』가 위서로 판명 났다고 단정적으로 써 놓았다. 최근 들어서는 『환단고기』가 진짜라는 의견이 더 우세한 것 같은데 말이다. 나무위키의 설명에는 동의할 수 없다.
『다물, 그 역사와의 약속』 (강기준, 도서출판 다물, 1997)
내가 25년 전에 구입한 책으로 『다물, 그 역사와의 약속』(강기준, 도서출판 다물, 1997)이 있다. 지금은 절판된 것으로 보인다. 부제는 「천년 어둠의 역사를 영광의 민족사로 되살리는 참 역사론(論)」으로 되어 있다. 내가 공무원이던 1990년도에는 다물(多勿)이란 말을 누구나 대개 알고 있었고, 각종 교육기관에서 다물 역사론을 교육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의 표지에 실린 글을 소개하려 한다. 이 책은 지금처럼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또는 천문학에 터 잡은 역사 증명 등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현재 비(非) 강단사학자들의 주장과 비슷한 내용인데도 어조에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의 표지에 기재된 글이다.
‘다물은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이다.
다물은 꿈이 아니라 민족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영광과 치욕이 교차한 장구한 민족사의 흐름에서
이제 다시 영광으로 펼쳐가야 할 ‘역사와의 약속’이다.’
‘만주를 지배한 자 동북아를 제패하고, 동북아를 제패한 자, 세계를 지배한다!!
다물(多勿)은 「다(모두) 무르다」라 하여, 「되물린다」, 「되찾는다」, 「되돌려 받는다」라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우리 역사에 다물이 처음 등장한 것은 BC 590년 ~ BC 545년 동안 재위했던 단군조선 제38대 임금(단제, 檀帝) 다물(多勿)부터였다. 이때가 바로 우리 민족사에 있어 흔히 「남북 2만리, 동서 1만리」의 강역(疆域)이라 하여 동북아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위대한 시대였다. 오늘날 당시의 강역도를 다시 그려보면 그 경계가 동(東)으로는 동해와 러시아 연해주, 남(南)으로는 일복과 대만, 서(西)로는 중앙아시아, 북(北)으로는 내몽고에 다다르는 광활한 아시아 대륙 전체를 포괄한다.’
젊은 시절, 나는 권위주의 정부가 우리 역사를 조작해서 허황된 걸 전파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그때까지(아니 최근 새로 역사를 배우기 전까지) 내가 배운 역사가 그랬고, 국정교과서 『국사』 말고도 내가 배운 교과목으로 『국민윤리』나 『시련과 극복』이 있었는데, 주요 내용이 우리는 유구한 역사 내내 주변의 외침(外侵)을 받았지만, 이걸 ‘은근과 끈기’로 극복하여 (근근이) 나라 모양을 유지해 왔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박창범, 김영사, 2002)
이제 제법 알려진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박창범, 김영사, 2002)라는 책이 있다. 나는 이 책이 나왔다는 신문 서평을 보자마자 바로 이 책을 사서 읽었는데 그때는 좀 반신반의하였다. 왜냐하면 천문학자가 쓴 책인데, 부제가 「천문기록에 담긴 한국사의 수수께끼」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저자가 왜 ‘수수께끼’라고 했을까 이상하게 여겼다. 이걸 수수께끼가 아니라 「한국사의 실제 천문기록」이라는 등으로 확신을 심어주었더라면 좀 더 내 기억에 담았을 것이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라고 생각한다. 만일 옛사람들(특히 정약용, 안정복)이 이런 책을 읽었다면 그들의 『아방강역고』, 『동사강목』이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제의 만선사관(滿鮮史觀)과 간도문제
일제는 1931년 노구교 사건으로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에 지금의 동북 3성지역에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꼭두각시 나라)을 세운다. 이곳의 집정(나중에 황제)는 청나라 최후의 황제였던 부의(선통제)를 내세웠고, 지금 심양을 신경(新京)이라 하여 수도로 삼았다.
일제의 조작 역사중에 만선사관(滿鮮史觀)이 있다. 이것은 만주와 조선의 역사를 한 계통으로 연구하면서, 늘 우리 역사에서는 북쪽(만주쪽)에서 내려오는 세력이 남쪽을 지배하고 침략하는 형태라는 식으로 역사를 기술한다.
지난 번(13회) 발행자료(「정치가의 역사학에서 시민의 역사학으로」)에서 나는 우리가 현재 북쪽에서는 중국(중공)의 동북공정이, 남쪽은 일본(일제)의 임나일본부의 협공을 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역사 회복을 새 나라 건설의 중심 테마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다물(多勿) 정신, 우리 역사 강역인 옛땅 고토(古土)를 회복하는 국민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어쩌다 우리 모두 잊고 살았네
역사를 새로 공부하면서 그동안 이걸 잊고 살아온 나의 옛날이 한심해졌다. 『다물, 그 역사와의 약속』라는 책에 실려 있는 ‘민족 영광의 노래 = 다물가’를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 강기준이 노랫말을 쓰고 김종호라는 분이 곡을 붙였다고 한다. (이 책 429쪽에서)
어쩌다 우리 모두 잊고 살았네
겨레의 얼과 맥을 이어온 다물
요동벌 떨치던 그 기상으로
통일과 융성의 원동력 되자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리오
지금이 아니면 그 언제 하리오
민족의 영광 위해 다물로 간다
무언가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는가. 우리는 이제 세계 10위의 경제력, 6위의 국방력의 나라가 되었다. K-팝, K-드라마 등도 우리에게 바른 역사지평을 요구한다. 어쩌다 잊고 살아온 잃어버린 역사, 잊었던 과거를 되찾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 바로 지금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시작해서 적어도 광복 100년이 되는 2045년까지는 진정한 광복, 바른 역사와 옛 영토 회복이 함께 어우러지는 다물(多勿)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