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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루와 열이틀 밤바다 그리고 선교장

by 준환

8.14.(일) 흐리고 비


밤바다


저녁부터 내린 비가 아침 잠시 갰다. 눈 뜨자마자 낚시도구를 챙겨 나오며 사천진항과 영진항을 두고 잠깐 고민했다. 문득 엊그제 영진항에서 고등어가 나온다는 동네 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긴 방파제를 한 바퀴 돌았다. 전날부터 텐트 치고 밤샘 낚시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전문 낚시꾼들에게 한 수 배우고 싶었으나 테트라포드는 아직 낯설고 위험했다. 난간 두른 높은 방파제 위에서 낚시하던 사람들이 기억나 올라가서 짐을 풀었다.


멀리서 나를 보았다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의아했을 거다. 대를 던질 때마다 줄이 엉켰고 간신히 풀고 다시 시도했을 때는 바늘이 몇 미터 아래 돌 틈에 끼고 말았다. 멀리서 능숙해 보였던 낚시꾼들과 영 같지 않아 첫날 자리 편 곳으로 옮겼다. 장대로 바꾸고 한참 미끼만 떼이다가 좀 큰 게 끌어당겼다. 새끼 고등어였다. 너무 깊이 삼켜 바늘 달린 채 놓아주고 그 후로 세 마리를 더 잡았으나 손바닥 크기에 불과해 모두 돌려보냈다.


영진해변이 그리웠던 예니네가 다시 왔다. 아이는 함께할 상대가 생겼고 우리 부부는 익숙한 사람을 만나 기뻤다. 아이들과 함께 바위에 달라붙은 조개와 작은 소라를 잡으며 몇 시간을 보냈다. 물 밖 바람이 차 입술이 파래졌어도 열중한 아이들은 진정 행복해했다.


오랜만에 해변 선술집으로 갔다. 예전에는 식구 모두 함께 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느새 아이들은 저들끼리 놀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여유가 생긴 어른들은 대학생 시절 익숙한 음식을 안주 삼아 왁자지껄 떠들었다.

어스름이 깔린 저녁, 하늘과 바다 모두 짙은 청회색으로 닮아 있었다. 파도 가까이 의자를 펴고 앉았다. 낮에 해변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밤 수영을 누리거나 산책하는 몇 명만 있을 뿐 고요했다. 갈매기 몇 마리가 날아들었고 방파제와 수평선 한가운데 선 등대가 서로 호응하듯 불빛을 반짝였다. 조용한 바다는 카페, 펜션이 자리한 소란스러운 등 뒤와 달리 세상과 동떨어진 스크린 속 같았다.



8.15.(월) 흐림


선교장


아이는 제주살이 동안 레고 체험 전시관을 가장 좋아했다. 강릉에는 그 분점이 있다. 건물 이 층 크기에 전시실과 체험장이 나뉜 비슷한 구조이지만 비교할 수 없이 작아 실망한 눈치였다.


효령대군 열한 번째 후손은 강릉에 터를 잡았다. 그때 선교장을 짓고 많은 문객과 더불어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다. 주인과 객은 유독 입구에 있는 활래정에 앉아 사시사철 변화하는 연꽃 연못을 바라보며 풍류를 나누었다. 주인이 살던 안채 주옥과 동별당, 외별당은 여전히 대를 이은 거주 공간이고 서별당과 연지당 그리고 사랑채는 한옥 체험과 생활유물 전시관이 되었다. 지금까지 삼백 년을 지나오며 건물 기능은 시대에 따라 많이 바뀌었으나, 아흔아홉 칸 전통 건물은 여전히 사람 사는 집이다. 양지바른 대청에 올라 경포호를 바라보며 잠시 쉬다 하나하나 돌아보니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선교장 안쪽 끝 뒷동산에 올랐다. 오른쪽과 왼쪽 어른 아름으로 하나 넘는 굵은 소나무 숲길이 뻗어있었다. 백호길이라 이름 붙은 왼쪽으로 시원한 바람 맞으며 천천히 내려왔다.


202208~09 강릉한달살이 (14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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