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 수, 비
지니네
저녁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물난리 난 서울처럼 한달살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침수될까봐 걱정되어 내려갔으나 기우였다. 다만 연신 창문을 때리는 센 빗소리에 잠을 설쳤다.
지난 며칠 낚시에 아쉬움이 있었다. 여섯 시 반 눈을 뜨고 숙소에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사천진항으로 갔다. 비슷하게 도착한 노년의 부부를 따라서 안쪽 작은 부둣가에 앉았다. 대를 드리웠으나 십 분 넘게 입질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부부는 돌아가고 난 바깥쪽 방파제로 갔다. 곧 찌가 물속으로 쏙 잠겼다. 힘차게 들어 올린 낚싯대 끝에 가운뎃손가락 만 한 작은 크기 이름 모를 물고기가 매달렸다. 이후 두세 차례 미끼만 떼이다가 묵직함이 전해졌다. 어른 손보다 좀 더 큰 황어였다. 동해안에서 흔한 어종으로 잡고 싶던 고등어는 아니었지만 크기가 괜찮았다. 두세 마리 잡은 걸 다시 놓아주고 바다에 낚싯대를 내리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와 물통 안을 가만히 살폈다. 낚시 경험이 많은 그는 노부부가 자리 폈던 곳이 좋은 포인트라고 귀띔해 주었다. 방파제 바깥 민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합류 지점도 마찬가지고 황어뿐 아니라 고등어, 전어도 많아 장대 낚싯대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열 시 반. 서둘러 돌아왔다.
사 일간 지니네가 함께한다. 그들과는 서울서도 자주 보는 사이지만 외지에서 만난 느낌이 새로웠다. 아이 둘은 몇 달 만에 보는 것처럼 부둥켜안으며 반가워했다. 바다를 가고 싶다는 말에 강문해변으로 갔다. 기온은 선선하고 해가 없어 쾌적했으나 전날 내린 비가 흙과 부유물을 몰고 와 온통 흙탕물이었다. 물속은 손바닥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파도가 세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 곁으로 가 키만 한 구덩이를 팠다. 만들어지는 내내 기다렸다가 크기에 감탄하며 머리만 쏙 내밀어 깔깔댔다.
늦은 오후가 되니 젖은 몸이 추웠다. 둘을 데리고 샤워장으로 갔는데 하나일 때보다 몇 곱절 번잡했으나 다행히 잘 따라주었다. 아이들이 샤워기로 물장난하는 동안 옷에 모래를 털고, 끝난 후 차례로 씻겼다. 내가 씻을 동안 아이들은 다시 물놀이했다. 형제를 키운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아이 하나를 키우는 내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니 아빠는 평창올림픽 경기장 공사 시절 자주 찾던 고깃집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곳은 한겨울 춥고 고된 하루를 마감한 추억의 장소였다. 질 좋은 숯으로 구운 삼겹살이 별미로 기름기가 적당히 빠진 데다 불맛이 입혀져 익자마자 게 눈 감추듯 없어졌다. 집에서 담근 된장으로 만든 후식 찌개 역시 여느 곳과 달랐다.
한차에 모두 끼어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른 셋으로 꽉 차는 소파에 여섯이 같이 앉아 드라마를 보며 공감하고 감동했다. 작은 차와 숙소를 사람으로 가득 채워 북적이는 재미가 있었다.
8.11. 목, 비 온 뒤 갬
지니네 둘째 날
그제 맛본 장칼국수 집에 가려 길을 나섰다. 막 도착한 가게 앞에 입간판이 가로로 뉘어 있어 바람에 넘어졌다고 생각했다. 일으켜 세우고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가려는데 근처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는 쉬는 날 표시라며 모녀 두 분이 읍내 나간 듯하다고 말했다. 맛있는 아점을 먹으려 일부러 천천히 나왔으나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다른 음식이 떠오르지 않아 강릉 구시가지로 갔다.
OOO칼국수는 지상파 프로그램에 자주 나온 가게다. 유명세에 있는 곳답게 사람이 많이 줄 서 있었다. 찡찡대는 아이들을 달래어 기다리는 중 직원이 나와 앞으로 한 시간 넘게 걸린다고 전했다. 큰길에서 가까운 다른 집들은 같은 상황, 조금 떨어진 안쪽 길가에 한산한 몇몇 집이 메뉴도 비슷해 장소 옮길까 했으나 모두 그대로 있길 원했다. 결국 한참을 있다 들어갔다. 아이 둘은 지니 엄마가 준비해 온 갈비와 김을 먹고, 어른들은 맑은 것 하나 빼고 매콤한 장칼국수를 시켰다. 한 사람 먹기 적당한 양에 국물은 얼큰했다. 아내는 큰 차이 없이 맛있다고 하나 내 입맛에는 양과 질 모두 그제가 더 나았다. 강릉에서 첫인상이 깊었기 때문일까, 이곳 맛이 긴 대기 시간만큼은 아니어서였을까.
아이들은 발명품 박물관보다는 동계올림픽전시관을 골랐다. 몇 년 전 평창에서도 가본 곳보다 더 큰 규모, 하키나 스케이팅 같은 체험관이 많아 흥미로웠다. 주변에는 올림픽 때 사용한 빙상경기장이 몇 동 있었으나 사용되지 못해 안타까웠다.
식사 후 남자 어른 둘만 산책 나왔다. 사실 친구 부부 사이 언쟁이 있어 환기가 필요했다. 지니 아빠는 그동안 가졌던 사소한 불만을 몇 번 던졌을 뿐이지만, 엄마는 돌팔매질로 느꼈다. 이성은 허물어지고 곧 감정적으로 심하게 갈라졌다. 단지 배우자가 조금 더 이해 해주길 바랐는데. 그래도 돌아가기 전 앙금이 풀어졌다. 여러 이유가 있으나 이번은 선선한 강릉 밤공기 도움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