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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열 번째 날
지니네 셋째 날, 박물관과 월화거리

by 준환 Apr 12. 2025

8.12.(맑고 더움

    

  지니네 셋째 날


  지니 아빠와 둘이 사천진항으로 낚시 갔다. 엊그제 동네 할아버지가 알려준 선착장에 자리를 폈다. 이미 다른 사람도 와있는 걸 보니 좋은 자리 같았지만 기대와 달리 입질이 없었다. 장소를 옮겨 작은 것 두 마리를 잡고 바로 놓아주었다. 다시 낚싯대를 드리우다 바늘이 돌에 걸려 짧은 새 두 번이나 잘라 버렸다. 소모품이니 바꾸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매일 바다로 버려질 걸 생각하니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얼마 전 낚시 프로그램에서 전문 낚시꾼이 잡은 대물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건 입과 위 속에는 플라스틱과 낚싯줄이 들어가 한동안 먹지 못한 채 배회하다 잡힌 물고기였다. 작은 속죄로 주워 담을 수 있는 주변에 버려진 낚싯줄을 거둬왔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양식집이 있다. 아기자기한 외관만큼 깔끔한 실내에 음식은 맛깔스러운 데다 가격도 괜찮았다. 제주살이 비싼 물가를 떠올리면 강릉 식당들은 여러 면에서 만족스럽다.


  내일이면 돌아가는 지니네와 함께하는 마지막 영진해변. 지니 아빠는 채와 바스켓을 들고 가 아주 작은 물고기를 잡아 왔다. 동심에 불을 지핀 듯 아이보다 더 어려진 얼굴로 연신 잡으러 다니느라 바빴다. 그 수가 늘어날 때마다 점점 더 해맑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8.13.(흐리고 비


  에디슨박물관


  아침 지니가 돌아갔다. 몇 년 동안 함께 모은 돈이 제법 쌓여 어디로 갈지 어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과 다음 여행은 내년쯤 태국일 것 같다. 그곳은 그들 부부가 결혼식을 올리고 갔던 장소. 오래된 추억과 새로운 기대가 교차하는 색다른 재미가 기다려진다.


  아이에게 물었다. ‘실내가 좋아, 야외로 갈까?’ 대답은 예상 그대로였다. 에디슨 3대 발명품은 축음기, 전구, 키네토스코프. 에디슨박물관은 각각을 주제로 독립된 관에 많은 수집품이 있었다. 축음기 시대는 홈이 파인 금속판을 기계식으로 재생하는 오르골과 전자 라디오 시대 사이인 19세기 말에서 1930년대까지였다. 소리가 재생되는 큰 관은 대개 나팔꽃 모양으로 재질이 다양했다. 유리와 금속은 고음, 나무는 저음에 맞아 곡에 따라 알맞게 바꾸었다. 삼십 년간 태엽에서 전기로 동력이 진화하며 형태도 더 다양해졌다. 비록 니콜라 테슬라가 발명한 라디오에 밀려 전성기가 짧았으나 백 년도 더 지난 음은 여전히 처음 그대로였다. 동시대 발명된 전구로 화려하게 밝혀진 방을 지나 키네토스코프 관으로 갔다. 최초의 영사기는 상자에 달린 두 개의 접안렌즈를 통해 약 1초 동안 필름 영상이 재생되었다. 오락실에 보급된 그 기계는 프랑스로 건너가 뤼미에르 형제를 통해 현대적인 영화 카메라와 영사기로 변모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볼 수 있는 초당 48매 긴 영상으로 탈바꿈한 후 소리와 색깔이 입혀져 지금의 영화와 TV가 되었다. 가이드의 세세한 설명은 여러 호기심을 풀어주어 어른들이 더 빠져들었다.


  시내 거리를 걷고 싶어 월화거리로 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월화역과 선로 주변을 공원으로 단장했고 양쪽 가장자리에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강릉중앙시장에서 시작해 임당사거리 류행정까지 둥그런 긴 띠 모양의 길을 한 바퀴 걷다 돌아와 지비츠와 연곡해변이 그려진 머그잔, 냉장고 자석을 기념품으로 샀다. 한동안 각자 산 물건들을 볼 때마다 강릉을 이야기할 것 같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거리 초입 국숫집에 갔다. 할머니 혼자 운영 중인 허름한 가게는 손님이 많지는 않았으나 먼저 앉은 한 가족이 감자옹심이와 팥칼국수 맛에 홀려있었다. 우리도 칼국수를 시켜 국물부터 맛보았다. 역시 긴 시간의 무게를 감당한 집은 좀체 틀린 적이 없었다. 우리 식구 또래의 아들과 손주가 있던 주인 할머니는 아이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셨다. 손주들 입맛에 맞게 맵지 않도록 만든 묵은지를 건넸으나 아이에게 아직은 낯설었다. 거의 다 먹었을 무렵 감자전 한 접시를 들고 오셨다. 곧 정리하고 들어가야 한다며 남은 반죽으로 베푼 인심이다. 예상하지 못한 따뜻함과 맛에 감동했다. 한입 베어 물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몇 번 씹지 않아 사르르 사라졌다. 비결은 갓 갈아 적당한 묽기로 만든 반죽에 있었다. 물기를 많이 짜내면 딱딱하고 그 반대는 질척거린단다. 배가 불러 포장해 달라고 했으나 맛있을 때 먹으라는 말에 한 조각씩 집다 보니 금세 모두 비웠다. 다른 가게에서 장칼국수 두 그릇도 되지 않는 가격에 잔치국수까지 먹어 대가 없이 얻은 전까지 값을 치르고 나왔다. 그냥 받기에는 애정이 너무 컸다. 오후 늦게 나왔으나 꽉 찬 하루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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