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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나무 Oct 15. 2024

아버지의 뒷모습(Paradox)

어느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할 때 알게 되는 것들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크고 단단해 보였던

그의 손은 온데간데 없고

주름과 세월의 풍파만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강하고 담대했던

그의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누구보다 빛났던 눈빛은

여전하나 검은 머리카락은

하이얀 새치로, 장난기 많던

어렸을 적의 기억 속에서의 웃음은

무거운 침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아픈 아이를 간병하면서

신께 기도했던

어느 어머니의 정성과 눈물이

끝내는 백발과 맹인이 될지언정

아무렇지 않아 하던 그 마음만은

여전히 그의 뒷모습이 보여줄 뿐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어머니 이야기'를 참조하라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찾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흑발과 눈을 희생하면서까지 '죽음'과 분투했다)  

 

한 나무를 보고나서야

그의 앞모습이 보입니다

상처가 곪고 썩어 문드러진

나의 어릴 적 자아와

그 이면에 감춰진

그림자를.


나는 단지 그의 뒷모습을,

사랑과 관심, 기대감 등으로 뭉친

한 덩이의 근육을,

따스히 감싸주고 싶을 뿐입니다.

 

외로우나 괴로우나

그 자리에 함께 서서

이태까지의 풍찬노숙(風餐露宿)을 견디며

성장한 나의 모습을

더 늦기 전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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