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할 때 알게 되는 것들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크고 단단해 보였던
그의 손은 온데간데 없고
주름과 세월의 풍파만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강하고 담대했던
그의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누구보다 빛났던 눈빛은
여전하나 검은 머리카락은
하이얀 새치로, 장난기 많던
어렸을 적의 기억 속에서의 웃음은
무거운 침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아픈 아이를 간병하면서
신께 기도했던
어느 어머니의 정성과 눈물이
끝내는 백발과 맹인이 될지언정
아무렇지 않아 하던 그 마음만은
여전히 그의 뒷모습이 보여줄 뿐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어머니 이야기'를 참조하라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찾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흑발과 눈을 희생하면서까지 '죽음'과 분투했다)
한 나무를 보고나서야
그의 앞모습이 보입니다
상처가 곪고 썩어 문드러진
나의 어릴 적 자아와
그 이면에 감춰진
그림자를.
나는 단지 그의 뒷모습을,
사랑과 관심, 기대감 등으로 뭉친
한 덩이의 근육을,
따스히 감싸주고 싶을 뿐입니다.
외로우나 괴로우나
그 자리에 함께 서서
이태까지의 풍찬노숙(風餐露宿)을 견디며
성장한 나의 모습을
더 늦기 전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