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탐미 May 19. 2024

'바쁘다 바빠' 수술 전 검사 10시간, 1만보 대장정

상급병원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래도 암 환자인데 빡세네.

세브란스에서 처음 교수님을 만나고 코디네이터 방으로 안내받았다.


근데 이 코디쌤이 첫날부터 이렇게 빡센 스케줄을 정해 놓았을 줄이야.


먼저 입원일, 수술일 안내를 받고 오늘 할 일이 적힌 계획표(?)를 받았다.



유방암 수술 전 검사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데, 마치 미션지 같은 기분.

오늘의 미션은 총 10개다. 내가 나이가 어려서 이걸 하루 만에 다 하나?? 


골밀도 검사, MRI, 핵의학과는 미리 병원 앱에 입력된 일정으로 알고 있었는데 할 일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코디쌤이 속사포로 설명해 주면서 순서대로 할 일에 번호를 매겨주는데 솔직히 따라가기 힘들었다.


다 됐다고 나가라고 하는데.. 어르신들은 혼자 오면 진짜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보호자 1명씩은 대동하고 있었다.


특히 검사를 다 암병원에서 하는 게 아니고 본관, 광혜관까지 이동하면서 해야 하는 상황이라 길찾기도 쉽지 않았다. 신촌 세브란스는 진짜 크다...


내가 타고난 길치인데 어리버리 하면서 몇 번이나 안내데스크에 가는 길을 물어봤다. 


한 번은 암병원에서 본관 2층을 가려고 하는데 아무리 가도 본관이 안 나오는 것이다.

결국 안내데스크에 '본관 가려면 어떻게 가냐'라고 물었는데, 여기가 본관이라고 했다ㅋㅋㅋ



코디쌤이 건물 간 연결 통로를 알려주긴 했는데, 세브란스가 산 중턱에 있다 보니 건물 간의 연결 층수가 달랐다. 이게 더 헷갈리는 포인트다.


그냥 내가 눈에 보이는 이정표 보고 건물 밖으로 나가고, 비상계단으로 다니며 마음대로 찾아가 버렸다. 


좀 쉬고 싶은데 검사가 너무 짧아


어제부터 굶은 금식을 해제하기 위해 빠르게 채혈실을 찾았다. 

모든 접수는 키오스크로 하고 있기 때문에 키오스크에 내 바코드를 찍으면 번호표가 나온다.


상급병원 채혈실은 채혈 공장에 가깝기 때문에 생각보다 대기가 많지 않다.

건강검진 수준으로 피를 뽑기 때문에 크게 무리는 없는데, 소변검사가 변수다. 

금식 때문에 물도 못 먹었더니 겨우 할당량을 채웠다..ㅎㅎ


암병원에서 해야 할 검사가 많았지만 본관 핵의학과에 예약이 미리 되어 있는 터라 급하게 이동했다.

전신뼈검사는 바로 하는 줄 알았더니, 예약 시간은 정맥 주사를 맞는 시간이었다.


정맥주사 투여 후 3~6시간이 지나서 검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오후 4시 30분 다시 방문 예약을 잡았다.

다른 검사가 없다면 꼼짝없이 3시간 대기를 해야 하는 검사라니.. 

병원을 한 번가면 소요되는 시간이 앞으로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반해 심전도 측정은 진짜 5분도 안 걸린다.

베드에 눕고 심전도 측정 기계를 붙이자마자, '다 됐습니다'하는 정도? 건강검진 보다 짧게 한다.

그냥 지금 심장 잘 뛰고 있다. 이 정도만 보는 것 같다.


사실 아침부터 병원에 왔더니 좀 더 누워있고 싶었는데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웠다.



10개의 미션이 있어서 아주 바쁠 것이라 생각했는데 5번 외래회상상담실과 6번 암예방센터는 다음 진료를 위한 예약만 하고 끝나는 일정이었다.


세브란스에서 CT를 찍으면 2달 뒤나 가능한 상황이라 외부 병원에서 CT를 찍어서 제출해야 한다고 한다.(파업 제발 빨리 끝나라ㅠㅠ)


그래도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선정해 외래 의뢰서를 써주니 그 점은 좋았다.


그냥 뇌를 비우고 시키는 대로 하자


많이 해본 흉부엑스레이는 다들 익숙할 것이다. 근데 아르바이트 보건증을 받기 위해서 보건소에서 하는 흉부엑스레이 보다 더 빨리 끝난다. 이 점은 좀 의아했다.


다음으로 골밀도 검사. 유방암 수술 전 검사에 필수로 들어 있는 것 같다.

통에 누워서 기계 음성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숨 쉬고, 참기 정도 난이도다.


이때 바지에 지퍼나 버클이 있으면 바지를 갈아입어야 하니 수술 전 검사를 할 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가는 게 편하다. 


상의도 계속 벗었다 입었다 하기 때문에 편한 옷이 최고다.


유방 단층 촬영은 이전에도 많이 해본 가슴을 판으로 눌러 찍는 촬영이다. 이걸 상급병원에서도 또 하네.


확대 촬영은 다음 초음파 검사 때같이 진행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미리 정맥 주사를 해놓은 전신뼈검사를 위해 다시 본관으로 ㄱㄱ


전신뼈검사는 20분 정도 걸리니 시간적 여유를 두고 가는 것이 좋다.


정맥 주사가 조영제 대신인 것 같다. 이것도 통에 누워서 기계 음성이 시키는 대로 숨 쉬고, 참기를 반복하면 끝난다.


처음으로 경험한 유방 MRI


MRI는 전신으로 촬영하는 줄 알았는데, 유방 MRI만 진행됐다.


미리 커뮤니티로 확인한 결과, 많은 환우들이 가장 공포의 검사로 꼽는 것이 유방 MRI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반 MRI와 달리 유방 MRI는 엎드려서 진행되는데, 마사지 베드처럼 동그라미에 얼굴을 넣고 20분은 가만히 있어야 해서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이 유난히 힘들어한다고 한다.


마사지 짬바가 여기서 도움이 될 줄이야. 평소 많이 하던 자세와 비슷해서 나는 사실 어렵지 않았다. 


다만, MRI 조영제가 변수였다.


중간에 조영제가 들어오는데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던 것이다. MRI는 처음이라 조영제 알레르기가 있을 줄 몰랐다.


엎드려 멍하게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쪼이는 느낌과 침이 계속 입안에 고이기 시작했다.

결국 침을 못 삼키고 뱉고 말았다.


사전에 손에 버튼을 쥐여주면서 도저히 못 참겠으면 누르라는 고지가 있었다.


버튼을 누를까 하다 그래도 20분 중에 절반 이상을 했는데 지금까지 버틴 게 너무 아까워서 되는 데까지 참아보기로 했다.


겨우 검사가 끝나고 주삿바늘을 제거하는 곳에 나의 증상을 말하니 알레르기라며 항히스타민을 주사해 줬다.


환자를 많이 만나다 보니 내가 말하는 목소리만 들어도 알레르기라고 바로 알아차렸다. 


이게 알레르기인가요?
지금 목소리 들어보니 코가 막힌 상태입니다.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검사 끝나고 20분은 앞에 앉아있다가 이상 없으면 귀가 조치를 하도록 관찰도 해줬다. 시간이 지나니 코맹맹이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10개의 미션을 끝내고 나니 오후 6시 30분이 됐다. 


아침에 병원에 도착한 게 오전 8시 20분인데.. 10시간은 병원에 있었던 셈이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앱에 깔려있는 만보기를 보니 하루종일 1만보 이상을 걷었다. 


이날은 너무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Tip. 예약 시간보다 검사 빨리하는 방법


검사 시간이 예약되어 있는 촬영이라도, 시간이 뜨면 미리 가서 도착 확인을 하면 빨리해주기도 한다.


안내 데스크에 빨리 오면 빨리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시간 맞춰서 한다고 안내하지만 도착 확인을 빨리하니 예약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예약 시간대로 다 진행했으면, 7시가 돼도 병원 탈출 못했을 듯.


이 키오스크를 빨리 찍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암이라고 쫄지마. 큰 병원은 기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