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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연 Jul 18. 2023

낯선

빨간선의 의미


친구와 싸웠다. 

함께한 15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싸우고 나니 친구가 낯설게 느껴졌다. 

처음 싸워봐서 그런 건지, 아직 마음이 덜 풀린 건지 대면은 어색하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다툼 한 번에 무너질 쉬운 사이였나.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자존심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 사이가 예전과 같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쉽사리 휴대전화로 손이 가지 않는다. 

미움이 차올라 인연을 끊어버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각자 살아가는 게 서로 불편은 없을 거라는 오기가 생긴다. 

그러다 15년 추억이 나를 다독인다. 

친구의 빈자리는 상상만으로도 쓰리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이와의 싸움은 내겐 너무 낯선 일이다. 

우리에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적용되지 않았다. 친구라는 단어보다 가족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웃기게도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니 친구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떠나지도, 떠날 수도 없는 사이.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그 친구의 삶에 너무 깊게 관여한 것.

그 친구의 가족이 부러웠다. 어머니와 아버지, 동생들과 함께 한 가정이 따듯해 보였다. 

그 안에 속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레 그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있었다. 무슨 고민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어머니가 생겼고,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지만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아버지가 생겼다. 아직 어색하지만 눈에 안보이면 나를 찾아주는 동생들도 고마웠다. 

그 나날이 내겐 행복이었다. 가져보지 못했던 것들이라 더 소중히 여겨졌다. 


그래서였을까. 

내 발 끝에 그어진 빨간색 선의 의미를 몰랐다. 

앞만 보고 가던 내게 그 선이 보일 리 없었다. 내게 향하는 관심과 칭찬이 마냥 좋았다. 

당연한 것이라며 그 친구의 마음을 간과했다. 상처가 될 줄 몰랐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있는 상황을 나만 몰랐다. 


‘가족 같은 너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싫고, 이런 상황이 낯설다’ 


눈물지으며 말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핍된 가족애를 채우기 위해 급급한 나머지 친구가 소외됨을 알지 못했다. 

내 욕심으로 타인의 사랑을 가로챈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걸 인정하자 서러움이 차올랐다. 

가족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버려진 아이가 된 듯 울음이 터졌다. 

편안했던 집이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 다정했던 가족들이 낯설어졌다. 

낯선 공기, 낯선 집안, 낯선 눈빛 모든 게 처음 본 것처럼 낯설었다. 


낯선 감정이 아프다. 

그만큼 멀어짐을 의미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복잡한 머리를 움켜쥐고 나는 뒤를 향해 걷는다. 내가 차마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빨간색 선 앞으로 걸어간다. 돌아가는 길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마음이 울렁인다. 하지만 돌아가야한다.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그 선 앞에 서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한다. 


그래야만 오랜 내 친구를 잃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야만 내가 더이상 울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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