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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Apr 30. 2024

버튼이 눌리던 날

"자기는 유독 그 얘기만 나오면 못 참더라?"

"... 내가?"

"응... 무슨 독립열사처럼.."

"... 그런 상황을 계속 웃어넘기면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데?"


K는 내게 사회생활이라는 걸 좀 하라고 했다. 여태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서 독립투사처럼 괴로워하지 말라고. '아니, 나는 그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라고 말하고 보니 아니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금 생각해도, 누구에게 털어놔도 한숨만 대신 쉬어주는 불합리하고 무례한 에 나는 유독 버튼이 세게 눌리는 듯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 있었다.


그 버튼이 다른 사람보다 더 세밀하게 분류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종종 잊는다는 것.


이번 대화를 통해서 나는 내 버튼 관리에 돌입했다. 첫 번째로 한 일은 버튼이 많은 사람임을 인정할 것. 그리고 버튼을 언어화하기로 했다. 최대한 세밀한 언어로. 그다음으로 한 일은 만나는 사람에 따라 버튼의 ON/OFF를 조정할 것.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냐고 그럼 왜 진작 그렇게 하지 못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나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좋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받아들이고 나니 모든 게 편해졌다.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귀엽고 큼직한 버튼들을 떠올렸다. 나의 몸에 장착된 버튼들은 어떤 사람들 앞에선 하나도 눌리지 않아서 평온하고 어떤 사람들 앞에서 활화산처럼 이글거렸다.


애초에 내가 출근할 때, 주말에 가족들을 만날 때, 낯선 사람들과 조우할 때 등등 어떤 상황을 100% 대비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 버튼을 인지하고 나면 나에겐 켜고 끌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내게 눈물샘을 통과하지 않고 논리와 공감력을 고루 갖춘 대화의 샘으로 직진하는 힘이 있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본 경험으로는 보통 이런 결심과 깨달음이 있는 날, 바로 테스트가 시작된다. 누군가 비웃으며 바로 깨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하지만 이번엔 자신이 있다. 나는 정말 필요할 때 켜기 위해 사방팔방 온갖 버튼을 켜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전히 그 '필요할 때'에 대한 판단은 혼란스럽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버튼 철학이 있는지 궁금하다. 각자의 성향은 이해나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존중하고 인정하는 영역이므로 그저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걸 판단 없이 들을 수 있는 대화력이 모두에게 있다면 우린 버튼 철학을 운운하거나 관계에 대한 책들을 뒤적거리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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