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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May 08. 2024

아빠를 부탁해


주변엔 아빠를 사랑하는 사람,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세상아빠를 사랑하는 사람과, 너무 사랑하다 자신에 대한 사랑까지 잃은 사람으로 나뉘는 듯했다.


언니와 동생이 각자의 생애주기에 맞춰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사이 나는 부모의 곁에 상대적으로 오래 남아있었는데  시절 빠는 나를 외동딸이라고 불렀다.


나는 삼 남매의 둘째이면서 외동딸이었다. 둘째는 첫째처럼 첫사랑도, 막내처럼 귀한 아들도 아니었다. 부모가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중간에 있는 사람의 입지는 언제나 애매하다. 둘째개성이 강하거나, 독립심이 강한 경향이 있다면 우연 아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던 이야기를 는 동안 외동딸을 키우는 아빠는 곁에서, 뒤에서 아쉽고 헛헛하고 진땀을 흘리고 철렁하는 가슴을 다독였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용서하는 사람. 때때로 아빠에게서 호랑이 같은 눈빛, 바위같이 억세게 쥔 주먹을 발견할 때면 아빠 친절한 사람이지 무르지는 않은 어른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빠 손글씨는 기계로 찍어낸 듯 일정하고 흐트러짐이 없이 정갈하다. 서예를 오래 배운 사람처럼 일정한 문체를 지녔다. 일본어나 기타, 하모니카는 독학으로 익혔지만 아빠에겐 리듬을 타고 멜로디로 표현하는 재주가 있었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아빠는 기타를 쳤다. 내가 노트를 펴듯이, 아빠는 악보를 폈다.


요즘 기타 학원에 다닌다며 새로운 배움에 들떠있는 모습은 아빠의 매력이면서 강박이기도 했다. 포기하고 수용하며 살아온 삶의 구멍이 시려 채우려는 사람처럼 아빠는 연주에 몰두했다.


얼마 전 가족 모임에서 아빠는 나의 삶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언제나 다시 자라기를 꿈꾸는 피터팬 같다. 누구보다 아빠를 닮아 불편한 딸이었지만, 그래도 아빠가 날 더 이상 부족한 사람으로만 보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다.


아빠의 자랑이 되었던 날, 퇴직 기념으로 함께 시드니 자유여행을 떠났던 날, 그동안 속만 썩인 것 같아 죄스럽던 날에 오히려 나를 위로하던 다정한 문장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빠에게도 그 세 가지가 제일 먼저 떠올라서 다른 괴로운 기억은 모두 공기 중으로 사라지기를.


받은 사랑을 다 갚기도 전에 아빠는 더 퍼붓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면 아빠는 누가 지켜주지? 엄마라는 든든한 친구가 있지만, 아빠보다 더 큰 존재가 굽어 살피고 있을 거라 믿는다.


오늘은 날씨가 좋고, 아빠를 만나러 간다.





엄마를 생각하며 썼던 글:

https://brunch.co.kr/@findyourbook/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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