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후기
주인공 윌리 로만은 이미 60세가 넘었다. 한 때는 잘 나가는 영업 사원이었지만 지금은 초라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면 임금도 받지 못한다. 그는 다른 부서로 전직을 원했지만 고령의 나이를 이유로 해고당한다. 친구 찰리에게 보험금을 빌리러 왔을 때 찰리는 자신이 사업주인 회사에서 일하자고 권했지만 그는 끝끝내 거절한다.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산 게 아니라는 듯이.
그는 어릴 적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내어 부자가 되었다는 형의 환상도 본다. 아들들에게 희망을 걸어보지만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상만 쫓는 자식들을 보며 마지막 남은 꿈도 깨졌음을 깨닫는다.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은 윌리 로만이 자신의 삶이 실패로 끝났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들이 좋은 기회를 만나 취직하지 못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정에 헌신하며 쫓아온 꿈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못하는 동안 허망하게 흘러가고 그 사이에 미묘한 감정들은 차곡차곡 쌓인다. 관객들의 마음속에 어느새 쌓여 버린 이 감정 덩어리는 세일즈맨의 허망한 죽음을 알리는 장례식에서 폭발한다.
가족들이 보험금을 타게 하려고 자동차를 폭주시켜 죽음을 맞이하는 윌리 로만. 아들을 향해, 친구를 향해, 아니 세상을 향해 울부짖던 주인공은 세상을 떠나고 부인 린다만 덩그러니 남은 묘지. 극 중 린다로 분한 배우 손숙의 독백을 듣고 있자면 아득해진다.
주택 대출금까지 다 갚은 마당에 남편은 죽고 없는 기가 막힌 상황.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계속 묻게 하는 이야기.
이 연극이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연극을 보게 될 것이고, 제목에서 주인공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다. 하지만 이 연극의 흡인력은 그 죽음으로 달려가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자만이 마지막 죽음에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막대한 대사량을 소화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연기, 3시간 동안 감정을 끌고 가는 힘, 인류 보편의 메시지 세 박자가 맞으니 누가 봐도 감동적이겠지만 한창 일하는 3, 40대에게 특히 의미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일해야 할지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가까우니 누가 보더라도 각자의 메시지를 얻어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