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급 비기너의 검도 일기
개인이 하는 전쟁이라고 생각하면 돼. 한 번의 시합 안에는 전략이 있고 군수품과 물자가 있어. 군수품과 물자는 체력이야. 내가 체력이, 다시 말해 군수품과 물자가 없는데 전쟁을 오래 끌어봤자 이길 수가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지 승부를 짧게 끝낼 방법을 찾아야 해.
검도는 심폐지구력, 근지구력 모두 필요해. 중심을 잡고 기다리다가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기세와 파워, 속력을 내야 하니까. 검도는 온 몸을 쓰는 운동이니까 꾸준히 하다 보면 체력이 많이 늘 거야.
모조리 맞는 말이다. 전쟁에서 동등하게 겨루는 최소조건이나 다름없는 군수품과 물자가, 다시 말해 상대를 마주한 채 버텨낼 바탕이 되는 체력이 없다면 내가 가진 것을 발휘할 수 없다.
스트레칭을 하고 기본동작을 하고 타격대를 치고 나서 비로소 5키로에 육박하는 호구를 쓰고 나면 이미 내 체력은 반 이상 소진된 상태다. 그러고 나서 상대를 마주하면 아주 중대한 몇 가지 결함이 생긴다.
상대가 치고 들어올 때 겨우 어설프게 맞받아 칠 뿐, 기검체 일치가 되어 체중을 싣는 발구름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힘이 빠진 몸으로는 기합도 제대로 지를 수 없다. 거기다 치고 나가서도 몸과 정신의 집중을 유지하는 존심조차 흐트러지거나 없어진다.
유효타가 되려면 기검체 일치가 되어 = 1. 검과 몸이 하나되어 함께 나가며 2. 기합에 기세를 담아 친 다음 3. 존심을 지켜야 한다.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조건이 모두 흐트러지는 거다. 이런 상태에서 운 좋게 상대방의 머리, 손목, 허리에 타격이 얻어걸렸다 해도 그건 이미 의미가 없다. 검도는 어영부영 얻어걸리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는 수련이 아니다. 망설이고 흐트러지고 기진맥진하면 죽는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집중할 수 없다. 살아남고 베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집념이 있어야 하며, 삶에의 집념은 목에 칼이 겨누어져도 평정을 잃지 않고 집중하는 태도에서 생겨난다. 체력 없이 오기와 악만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집중할 수는 없다.
체력은 실력에, 태도에, 정신력에 우선한다.
내게 가장 필요한 조건은 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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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님 아마 느끼실텐데 제가 호구 쓰고 연습 대련할 때면 거의 항상 정신을 못차리거든요. 힘들어서요.
그런데 그렇게 정신 못차리는 와중에도, 너무 재밌을 때가 있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 내가 지금 상대와 칼을 겨누고 있다는 자각이 문득 들고, 그와 동시에 호면 너머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 정말로 짜릿한 순간이 있어요.
그래서 힘들어도, 제가 잘 못해도 너무너무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