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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Aug 04. 2023

감사한 순간은, 나의 하루에 도사리고 있음을 느끼며


무더운 여름이다. 오늘 용인시 최고 기온 35도. 기상청에서 발표한 온도이지만, 실제 체감 온도는 35도를 뛰어넘는다. 내가 사는 곳은 용인시에서 마지막 남은 시골이라고 하는 동네에 위치한다. 실외인 주차장에 주차된 차 내부 온도는 39도. 폭염과 폭설이 시작될 무렵이면 어김없이 내려지는 지령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다.

      

3개월가량의 한 학기를 열심히 달려온 것도 있겠지만, 찌는 날씨와 강추위에는 수업이 어렵기에 내려지는 지령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방학 중에 가장 기다리는 건 아빠의 휴가이다. 어느 계절에나 휴가를 떠날 수 있지만, 여전히 휴가를 말할 땐 여름 바캉스가 아닐까 싶다. 나의 두 아들도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부터 손꼽아 바캉스 떠나는 날을 기다렸다. 마치, 그날만을 위해 태어난 듯 바캉스의 염원은 하염없었다.    

  

그래, 떠나자! 남편에게 말했다. 휴가를 언제 즈음이면 쓸 수 있겠느냐고. 남편은 영어학원 방학이 7월 30일부터라고 하면서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답했다. 남편에게 “내가 영어 학원에 방학 일정 확인 안 해봐도 되겠어?”하고 말했을 때, 남편은 “응! 내가 다 확인했어!”라는 답을 했을 정도로 자신 있어했지만, 여행 둘째 날 알아버리고 말았다. 영어학원 방학 날짜가 변경되었다는 것을. 또르르. 흐흑... 흑흑.......      


나와 남편은 깜짝 놀랐지만, 첫째는 덤덤했다. 남일 보듯이. 왜 아닐까. 평소 그렇게나 영어 학원 가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가야 하는 것을 알기에 억지로 갔던 첫째였다. 나와 남편도 화들짝 놀란 건 잠시일 뿐이었다. 우리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마음껏 놀자며 판을 벌였다. 둘째가 좋아하는 물놀이를 실컷 하고, 첫째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었다.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것도 빠질 수는 없다며 각각 맥주 한 캔을 마셨다. 그러면서 남편과 나는 우리 둘이서만 여행을 떠났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없으면 우리 둘이 실컷 수영하고 물놀이하고 맛있는 것을 먹었을 텐데. 크큭. 애들이 못 먹는 거 있잖아. 회나 곱창 같은 거.”, 하고.     


그제야 기억이 났다. 나와 남편, 단둘이었던 여행들이. 그래, 우리 둘만의 여행이었다면 정말이지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쏙쏙 뽑았을 텐데. 그러기에도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를 텐데. 사랑을 속삭이기에도 늘 시간은 부족한 법이니까. 그런데 사랑을 속삭이는 건 꼭 달콤하고 로맨틱한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걸 아이를 낳고 키우며 어느 순간에 문득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있기까지 남편과 피터지 게 싸우고 울고 불었다. 아이에게는 온갖 짜증을 내고 손찌검을 하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어서야 이건 어미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임을 감각하며 동물이 되지 말자고 되뇌었다. 그렇게 나의 화를 다스렸다. 그러한 세월이 벌써 12년째이다.      


사랑의 속삭임은 굳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아도 존재한다. 우리 가족이 함께한 시간들 속에서. 마음껏 이리저리 헤엄치며 놀기보다는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를 안고 풀장을 누빌 때, 먹고 싶은 음식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를 기꺼이 고를 때, 아이가 잠들기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맥주를 더 마시고 싶지만 자제할 때, 아이를 재우다 내가 먼저 잠이 들어버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다음날이 밝았을 때 등. 우리는 이러한 순간들 속에서 헌신과 배려를 하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나와 남편은 조건 없이 무한한 사랑을 주고 아이들은 그것을 이유 없이 받아들이며.      


두 아이가 각각 먹고 싶다는 음식. 두 번 다신 돈주고 못 살 만큼 비싼 치킨과 랍스터 떡볶이


홍보와 마케팅이라곤 인스타그램에 4개의 게시글을 올린 게 다인데, 감사하게도 매일 어쩌다 하루 걸러 한 번 도서의 발주가 들어온다. 여름휴가를 떠날 때 아이들 짐 만해도 한가득인데, 혹시 몰라 발주가 들어올지 모르니 도서 5권과 포장재 그리고 거래명세서를 프린트해서 챙겼다. 그런데 너무나도 신기한 일은. 여름휴가 날에도 발주가 들어온 것이었다. 나의 여름휴가는 남편과 두 아이가 잠들어 있을 때, 책을 포장하고 거래명세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부산. 용인에서는 차가 막히지 않아도 4~5시간은 걸리는 거리. 그곳에서 나는 숙소 인근에 있는 우체국을 찾아 발주가 들어온 책을 보냈다. 온라인 사전 등록으로 120원 할인까지 챙겨가면서. 책은 용하게도 부산에서 파주까지 하루 만에 배송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의 도서 주문이 감사하고, 여행을 갈 수 있는 돈이 있음에 감사하고, 두 아이가 건강한 것에 감사하고, 책을 보낼 수 있는 우체국이 있어서 감사하고, 몸을 놀려 빠르게 배송한 주시는 기사님께 감사하다. 

     

이틀만 배송이 늦어져도 독촉 메일이 오는데, 하루 만에 배송 완료! 감사합니다. 기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ㅠㅠ 덕분에 살아요. 제 책을 구입해 주신 분께도 깊이깊이 감사드려요ㅠㅠ

이것 외에도 다 쓰지 못할 만큼 감사한 것투성이다. 나는 죽음의 문턱을 두 번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잠드는 걸 두려워하는데, 오늘도 해가 뜬 후에 눈을 뜰 수 있어서 감사하다. 신이 날 버리셨나, 싶은 날도 있었지만, 눈을 뜰 때와 감을 때는 늘 감사함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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