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쓰는 마음에 대하여
읽고 쓰는 사람의 태도
몇 주간 선의의 거짓말에 대해 생각에 잠기는 날이 많았다. 나에게 도착한 거짓말에 마치 내가 호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씁쓸함과 함께 그 사람이 한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답을 찾고 싶었다. 진실은 그 사람만이 알 것이어서 답을 찾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인터넷 검색창에 ‘거짓말’을 입력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듯하다.
누군가 써 놓은 이러저러한 선의의 거짓말에 대한 글을 읽다가 법륜스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중년의 여성분이 “선의의 거짓말이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면 선의의 거짓말은 어떤 때 사용하는 게 맞나요?”하고 물으며, 자신이 놓인 상황을 예로 들었다.
법륜스님께서는 선의의 거짓말이 구체적으로 내용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첫째 선의의 거짓말이 되었든, 아니든 안 하는 게 좋다. 딱 바른말을 한다고 상대편에게 좋은 게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한시적으로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가 있다.” 하며 하나의 예를 들어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선의의 거짓말이다. 악의의 거짓말이다. 이런 말을 쓰면 안 돼요.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좋은데, 바른말을 사실대로 말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손해를 보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자를 위해서 그렇게 말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하는 말을 덧붙여 주셨다.
법륜스님의 말씀을 내가 경험한 상황에 대입해 보았다. 그가 ‘자신과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인지?’, ‘사실을 말했을 때 나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해 거짓말을 한 것인지?’를 생각했다. 이건 나만의 추측일 뿐이지만, 그는 나에게 사실을 말하기 껄끄러웠을 테고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 것 같다. 선의는 없는......
난 그에게 어떤 사람이었나, 그와 함께한 시간을 되짚어보았다. 늘 진심으로 대했다고 여기는데, 그는 나의 어떠한 언행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유 없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비호감이어서 싫었을지도 모른다. 때로 사람은 특별한 이유 없이 누군가를 싫어하기도 하니까.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사실을 말해 주어야 하는 게 옳다. 사실을 알고 나서 마음이 상하고 아니고는 그다음 일이다. 감정은 그저 서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법륜스님께서 선의의 거짓말이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듯했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선의의 거짓말은 상대방을 초라하게 만든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만 아무리 친해도 누군가의 선의의 거짓말을 두둔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한 말은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다. 그 말을 두둔하는 건 상대방을 초라하게 하다못해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또다시 누군가 선의로 한 말이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떠올려 보았다. 세 가지를 가장 먼저 기억해내고 싶다.
첫째,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위해 한 말인지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한 말은 아닌지를 구분할 것.
둘째, 누군가의 선의의 거짓말을 두둔하지 말 것.
셋째,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한 말이라면 거짓을 말한 사람을 곁에 두지 않을 것.
법륜스님의 말씀대로 선의든, 악의든, 무엇이 되었든, 거짓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일은 독서와 글쓰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읽고 쓰는 마음에 중요한 걸 꼽으라고 하면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 작가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책 내용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둘, 거짓은 쓰지 않을 것.
셋, 글로 포장하지 않을 것.
위의 세 가지는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태도이기도 하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작가와 작품은 별개라고 말했지만 논픽션을 쓰는 사람이라면 거짓됨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