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의 중독성
책을 읽다 보면 대부분 문장이 스쳐 지나가지만, 마음에 고스란히 스며드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럼 밑줄을 긋고, 인덱스를 붙이고, 줄줄이 노트에 옮겨 적는다. 그러다 보면 옮겨 적은 문장에 의견이나 생각을 보태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걸 글로 쓰겠다며 처음 컴퓨터 앞에 앉은 날이 기억난다. 쓰고 싶은 게 있는데 한 문장도 제대로 쓸 수 없던 날이었다. 내 의견과 생각을 육필로 끄적일 수는 있어도 컴퓨터 화면 속 백지 위에 활자화시킨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육필로 쓸 땐 문장을 완성하지 않고 휘갈겨 쓰면 그만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백지 위에선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하나의 문장이어도 완성된 문장을 써야 한다고 여겼다. 완성도 있는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꽤나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던 듯하다. 나에게 완성된 문장이란, 주어로 시작해 '다.'로 끝나는 것이었다.
한 문단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 앉아있던 날이 이어지고, 세 줄에서 다섯 줄 정도의 한 문단을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보상처럼 주어진 건 뿌듯함이었다. 뿌듯함은 내일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었다. 이게 아니더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있는 내 모습이 그저 좋았다. 스스로에게 취해 한 문장, 한 문단을 쓰는데 장시간 앉아있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 시간에 다른 걸 했더라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잘 쓰다가도 헛헛함에 허우적거렸다.
컴퓨터 앞에서 제대로 된 글 하나 쓰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내 모습이 한심해 부아가 난 나머지 맥주를 들이켜기도 했었다. 이런 날들을 반복하면서 한 문장에서 한 문단으로, 한 문단에서 두 문단으로, 두 문단에서 서너 문단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하나의 문단을 더 쓸 수 있게 된 날은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서 아이들에게 천사표 엄마가 되고, 귀가하는 남편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A4 한 장을 채우게 된 날은 배달 음식을 시켰다. 캔맥주를 마시며 자축했다. 첫째와 둘째에게 “엄마가 이렇게 많은 글을 썼어.” 하고 말하며 기뻐하면 아이 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에세이 한 편을 쓰는데 짧게는 대 여섯 시간이 걸렸고 많게는 기약 없는 며칠이 걸렸다. 그렇게 일 년을 지나고 나니 두세 시간이면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일 년간 큰 발전을 했다고 여긴다. 주 5일 단 10분이라도 컴퓨터 앞에 앉은 것과 매주 1~2편의 글을 쓰려고 노력한 덕분이었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한 장이라도 아니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매일 활자를 읽으려고 했다. 학교 정문과 학원 앞에서 아이가 끝나길 기다리는 단 몇 분이라도 읽기 위해 늘 책을 들고 다녔다. 정말이지 2~3분도 시간을 낼 수 없을 땐 들고나간 책을 다시 들고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나날이 쌓인 독서는 일 년 뒤 스스로 느낄 만큼 나를 발전시켰다.
하루에 읽는 한 페이지와 한 문장이 별 게 아닌 듯해도 사계절을 지나고 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처음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는 감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하고 일 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는 동안 참 막막하고 막연함의 연속이었다. 읽고 쓰는 데에는 보통 정신력과 체력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난독증을 극복하면서 매일 5시간씩 두 달을 의자에 앉아 책을 부여잡고 끙끙거리기도 했었다. 난독증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독서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부터 정신력과 체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부터 독서와 글쓰기에 정신력과 체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주위에 있는 글 벗 중 몇몇은 독서와 글쓰기에 나처럼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종종 말하기도 하니까. 힘들이지 않고 읽고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노동이라고 여길 만큼 힘이 들어간다고 말하는 글 벗도 적지 않다. 내 경험에 빗대어 보면 노동으로 느껴질 만큼의 강도가 지난 다음에야말로 독서와 글쓰기에 체력(근력)이 붙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지나면 전보다 수월히 읽고 쓸 수 있게 된다. 그럼 재미가 들린다. 여기서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노동으로 느껴지는 때가 온다. 노동과 재미로 느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독서와 글쓰기에 체력(근력)을 붙여왔다. 순전히 경험에서 비롯된 나만의 생각일 뿐이지만 정신력과 체력이 들어간다고 감각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읽고 쓰는 일을 덜 해서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책을 읽다 보면 머리가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고 어려운 책은 두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내 수준에 맞고 마음을 뒤 흔드는 책을 만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빨려 들어갈 때가 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작가가 글로 펼쳐놓은 세계에 빠지는 것이다. 이럴 땐 책장을 덮고 나서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하다. 글쓰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의 세계에 푹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줄줄줄 쓴다. 다 쓰고 나서 이렇게나 긴 글을 썼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나서 몸에서 기가 빠져나간 듯하면 허기가 져 무언가라도 입에 넣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서로 끌어당기는 같은 극의 자석처럼, 한 몸이 되어 지난 삼 년간 나와 함께였다. 나의 하루는 육아와 살림, 운동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독서와 글쓰기로 가득 차 있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글감을 생각하며 주위를 관찰하고 읽은 부분을 다시 복기한다. 틈새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고 정해놓은 시간이 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갈 쓴다. 독서와 글쓰기로 몸과 정신은 너덜거려도 마음만은 알이 꽉 들어찬 알밤처럼 단단해지는 기분이다.
어느 순간부터 소모됨과 즐거움을 느끼며 계속 읽고 쓰는 걸 반복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채워지는 날도 종종 찾아왔다. 여기서 채워지는 건 힘들어도 스스로 읽고 쓰는 행위를 했다는 만족감과 작은 성취에서 비롯된 내면의 풍요이다. 독서와 글쓰기에 중독성이 있다고 느낀 게 이 시기 즈음이었던 것 같다. 독서와 글쓰기가 내 삶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제는 내 삶에서 읽고 쓰는 일을 분리할 수 없다. 생활이 독서와 글쓰기이고 독서와 글쓰기가 생활이 된 것이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이렇게 몇 년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읽고 쓰는 삶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