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육아와 살림에 지쳐도 낮. 밤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출간 준비를 하느라 책을 펼쳐볼 여유가 없어서 독서가 너무나도 하고 싶어서 무리했다. 고단해 잠시 누웠다가 다시 털고 일어났다. 무언갈 쓰고 싶은 욕구는 결국 졸린 눈을 비비고 컴퓨터 앞에 앉게 한다. 이렇듯 쓰고 싶은 마음은 고갈된 힘을 채워주는 에너지 창고가 되어준다.
글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 마음 한구석에 뭉쳐진 감정 덩어리이다. 오전 7시부터 어머니에게 온 메시지 한 통에 종일 마음이 복잡했다. 좋으면서도 슬펐다. 양가감정을 수없이 오갔던 오늘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출간한 책을 읽어 보았노라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집 근처 하천을 따라 10km를 넘게 걷고, 같은 옷을 여러 번 빨래했다고 덧붙이셨다. 마음을 씻어내고 싶어서 그랬던 듯하다며 “내가 너에게 왜 그랬을까?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어. 책이 잘 되면 좋겠다.”하고 말씀해 주셨다.
매일 해야 하는 일과를 마치고 나서야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답을 드릴 수 있었다. “책 잘 되어 가고 있어요.”하고 말씀드렸다. 가슴이 먹먹해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머니에게 다시 연락을 드렸다. “자식이 잘되지 않길 바라는 부모는 없잖아요. 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예요. 같은 글을 수십 번, 어떠한 글은 백번 이상 썼어요. 그 글이 세상의 빛을 보고 사람들이 알아주니까 이제는 아픈 글을 더 쓰지 않아도 되겠어요. 어머니가 말씀하셨잖아요. 나는 어릴 때부터 밝고, 명랑했다고요. 다음 책에는 밝고, 명랑한 글을 담고 싶어요. 제 책을 읽으시면 글을 쓰지 말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글쓰기를 반대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리고 사랑해요.”하고 말이다.
어머니에게 받았던 아픔을 글로 고백했기에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구나. 수아는 더 좋은 글을 얼마든지 잘 쓸 수 있어.”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머니가 내미시는 화해의 손길을 느꼈다. 주고받은 아픔이야 고의가 아니었다는 점과 잘 되기를 바랐던 마음에서 발생한 불협화음이라 여겼다. 그저 지나간 일을 받아들이고 서로가 알지 못하는 그 너머의 삶을 이해하면 된다는 걸 알았다. 부모-자식 사이에도 알지 못하는 그 너머의 삶이 있다. 그러나 이해가 안 되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대신 지난날을 더듬어 감사한 조각의 기억을 찾아내어 붙잡아야 한다. 그럼 화해의 손을 잡을 수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으셨기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부모님 덕분에 나라는 존재가 있고 아픔과 슬픔, 기쁨과 행복, 좌절과 절망, 희망과 용기와 같은 모든 걸 감각하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알지만 어둠에 짓눌려 힘겨워할 때가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지 않고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며 살고 싶던 시절이었다. 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일이 없었더라면 긍정적인 감정이 찾아왔을 때 만족도가 저하되었을 거라는 것과 감사한 마음 또한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고단해도 무언가 쓰지 않고서는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오늘 같은 날. 이런 날 쓰는 글에는 평소보다 짙은 농도의 진솔함이 담긴다.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가 손끝을 타고 흐른다. 진솔하게 글을 쓰다 보면 여러 갈래로 흩어졌던 복잡한 마음이 한 갈래로 자리를 잡고, 여러 감정이 든 이유를 알게 된다.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복잡한 감정으로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오늘 좋음과 슬픔을 수없이 오갔던 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마주 잡은 손은 ‘화해의 손’이었다. 더는 아픈 글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는 글쓰기를 할 수 있을 듯한 희망이 움트고 있다.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그런 날에는 꼭 글을 써야만 한다. 글에 뭉쳐진 감정을 고백하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다시 잡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흩어진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꺼내어 놓기 힘든 마음을 담아낸 글에는 진솔한 목소리가 담긴다. 이러한 글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을 갖고 있기에 어떠한 글쓰기 스킬도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