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오롯한 글쓰기

글이 가진 힘

by 이수아

글을 처음 지도해 주신 선생님께서 내 원고를 읽고 작가가 왔다며, 작가가 될 게 아니라면 삶에 찾아온 풍파를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 말속에는 아픔이 많은 사람일수록 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처음으로 아픔을 글로 꺼내었을 때 느껴야만 했던 고통스러움. 그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글쓰기에 무슨 치유의 힘이 있어? 거짓말.”이라고 여기던 날도 있었다. 참 이상한 일은 고통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같은 장면을 글로 쓰며 마주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미세하게 고통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수십 번 혹은 백 번 이상을 반복해 썼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삶에서 도려내고 싶은 아픈 기억을 담담히 쓸 수 있게 되었다.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펴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나를 에워싸고 있던 아픔의 옷을 벗어내고 있던 것이었다. 글쓰기는 어떠한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던 마음의 상흔을 치료해주는 마법의 도구라는 걸 알았다.




글쓰기는 분노 조절에도 도움이 되었다. 글에 마음을 풀어놓고 나면 내가 품은 화가 가족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노에 찬 글을 다시 읽을 때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올해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던 시기에 한 권의 책을 만났고 분노 조절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그 책은 김민섭 작가님의 《고백, 연결, 손짓》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삶에서 그를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 진정한 복수이며, 복수심에 소진할 에너지를 온전히 나를 가꾸는 데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분노는 받은 대로 되돌려 주지 못해 쌓인 억울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글쓰기로든 말로든 받은 대로 돌려주면 속이 후련할까. 그렇지 않다. 스스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 분노에 찬 글쓰기를 멈추는 게 이롭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책에 적힌 문장 그대로를 실천으로 옮기고자 했다. 글에 분노를 담아내며 에너지를 소진하지 말자고 말이다. 그 뒤로 나는 분노가 일 때면 수영장으로 향하거나 밖으로 나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운동을 한다. 그렇게 복수심에 소진할 에너지를 온전히 나를 가꾸는 데 쓰고, 분노에 차오르게 한 그를 완전히 나에게서 몰아내기 위해서 몸을 썼다.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글이 아닌 몸을 쓰는 일로 바뀌고 난 뒤에야 해롭지 않은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날 힘들게 한 누군가의 일화를 글로 쓰기 시작했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쓰고 상대방과 나의 입장에 서보며 인정하는 것이었다.


분노를 글로 쓰지 않아도 자신을 망가뜨리는 글쓰기를 할 때가 있다. 누군가와의 안 좋았던 일화를 글로 쓸 때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글을 쓸 위험이 있다. 글에 등장하는 누군가를 포장할 필요는 없지만 악한 존재로 만들면 안 된다. 글에 타인을 등장시킬 때 부담을 갖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럴 땐 양쪽 입장에 서서 끊임없이 사유해야 한다. 이해되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꼭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다. 부담은 내려놓고 그저 여러 방향에서 두루 살피는 시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처음으로 지은 책 《외로움을 마주하는 자세》에는 어머니에 대한 글이 나온다. 어머니는 책을 읽어보시고 한동안 힘들어하셨다. 그 시기에 나에게 자주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거셨다. 어머니의 마음도 힘드실 텐데 내 마음을 헤아리고 계셨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화해의 손길을 건네주셨다.


어머니를 많이 사랑하고 존경해도 우리 사이에는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깊은 골짜기가 흐르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내가 쓴 글은 깊은 골짜기를 단숨에 메워주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 엉켜버린 대로 지내 온 관계의 실마리를 풀어 준 것이었다. 글쓰기는 나를 치유하고, 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관계를 풀어주었다. 그렇게 글은 나에게 십자가로 다가왔다.


글이란 무엇일까, 글이 가진 힘이란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가늠 해 본다. 정신과 마음 그리고 체력을 다해 글을 마음껏 토해내고 나서야 글이 무엇인지, 글이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듯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쓰면 쓸수록 알 수 없는 게 바로 글쓰기였다. 글의 정체와 글이 가진 힘을 알 수 있을 때까지, 아니 영영 모른다고 할지라도, 쓰는 삶을 끝까지 걸어야겠다는 다짐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글을 쓸 때만큼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을 위한 오롯한 글쓰기여야 한다. 쓰는 행위는 언제까지나 나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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