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그리고 시간
글을 쓴다는 건 시간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다. 무언갈 쓰고 싶은 욕구가 있느냐와 없느냐의 차이가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게도 없게도 한다. 쓰고 싶은 욕구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동기가 충분한지와도 연관이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의 경우 직장이 없는 사람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글을 쓰고 누군가는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글을 쓰지 않는다.
이건 그간 수많은 글쓰기 관련 책을 통해 알아낸 명백한 사실이다. 출판사의 편집자였던 사람, 기사를 쓰던 기자, 카피라이터와 같이 글 쓰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들 중에는 “이제부터라도 내 글을 쓰겠어!” 하는 마음으로 과감히 퇴사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퇴사를 하기만 하면 글을 쓸 시간이 충분하니까 마음껏 나의 글을 쓸 거야.” 하는 의지는 퇴사 후 온데간데없어지고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고 자신의 책에 고백했다.
정해진 출, 퇴근 시간이 있다는 건 자연스레 하루의 루틴이 된다. 그 루틴이 사라지고 나면 프리랜서(전업 작가)로서의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루틴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이때 가장 요구되는 게 의지력이다. 의지를 갖고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직장을 다닐 땐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글을 썼다면 프리랜서(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는 혹은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글 쓸 시간을 미리 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 글 쓸 시간을 정해 글쓰기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시간을 정해 글을 쓴다고 해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글감이 없다면 쓰지 못할 때도 많다. 이럴 때 주의해야 한다. “시간 많으니까 영감이나 글감이 떠오르면 그때 써야지.”라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자세로 지낸다면 한 편의 글도 아니 어쩌면 한 줄도 쓰지 못하고 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가 버리기 쉽다.
초등생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인 나의 생활패턴은 늘 비슷하게 돌아간다. 아이의 학교와 학운 등, 하교를 돕고 매끼를 차려 먹은 후 식기를 정리하는 게 중심이다. 그 외 매일 빨래를 두 번 이상 돌리고 바닥 청소를 한다. 학교와 학원 숙제를 봐준다. 가끔 화장실 청소를 한다. 이 생활 어디에 글 쓸 시간을 넣을지는 정해져 있다.
직장인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건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두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오전 시간과 저녁 먹은 후이다. 진득하게 앉아서 쓰고 싶은 욕구가 치솟을 때면 밤을 지새워 글을 쓰기도 한다. 다음 날 피로라는 지옥에 떨어져야 하지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새벽을 사랑한다.
지나온 몇 년을 되돌아보면 글을 쓸 시간을 정해 놓고도 쓰지 못하는 날이 숱했다. 그래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정해진 시간엔 컴퓨터 앞에 앉는 걸 원칙으로 했다. 한 줄도 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정해 놓은 시간을 채웠다. 그런 날을 거쳐온 지금은 아무 때나 컴퓨터 앞에 앉으면 무엇인가 한 문단이라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비밀의 열쇠는 다름 아닌 메모하는 습관에 있다. 나의 메모장에는 글감이 들어 있다. 글감과 영감이 없을 땐 책을 뒤적였다. 그렇게 무언갈 쓸 수 있게 만드는 문장을 찾아 나섰다.
명저가 된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을 읽다가 많은 사람이 글이 안 써지는 상황을 흔히 겪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으름을 물리치고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설거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또 무엇이든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핑계를 잡아 수시로 옆길로 새게 될지도 모른다. (p.56)
한동안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일주일 후 작품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친구에게 보여 줄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아, 나탈리! 너는 오전 열 시 전까지는 마음대로 해. 하지만 열 시 이후부터는 반드시 펜을 잡고 있어야 해.”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있을 시간과 공간을 할당하고 제한을 두었다.
3.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어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곧장 책상으로 달려가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글을 쓰기 시작해버린 것이다.
4. 글쓰기 강사 일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글을 쓴다는 일은 정말 귀찮아진다. 그런데 집에서 세 구역 떨어진 곳에 직접 구운 맛있는 초코칩 쿠키를 파는 제과점이 있었다. 손님용 탁자도 마련된 이 제과점의 주인은 손님이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어도 아무런 눈치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 한 시간쯤 지나면 이렇게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나탈리, 지금 그 크로와상 가게로 가서 딱 한 시간 동안만 글을 쓰는 거야. 그동안 너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초코칩 쿠키를 두 개는 먹을 수 있잖아.”
맛있는 초코칩 쿠키에 매우 약한 나는 대개 십오 분 안에 집을 나섰다.
5. 나는 한 달에 노트 한 권 정도는 채우려고 애를 쓴다. 글의 질은 따지지 않고 순전히 양만으로 내 직무를 판단한다. 그러니까 내가 쓴 글이 명문(明文)이든 쓰레기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노트 한 권을 채우는 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이십이 되었을 때 노트가 다섯 장밖에 채워져 있지 않다면, 나는 나머지 오일 동안 전력을 다해 나머지 노트를 꽉 채우고야 만다. (p.58)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나는 책을 읽던 어느 날 대화가 하고 싶었다. 책에서 만난 문장을 누군가와 말하고 싶은 마음이 글쓰기로 향하게 했다. 글쓰기 모임에서 받은 무시는 오기로 글을 쓰게 만들었다.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이 없어서 ‘에세이 연재’ 대상자에서 제외된 설움은 책을 쓰게 했다.
어느 정도 글을 쓸 줄 안다는 말을 듣게 된 이후 글쓰기 동기였던 ‘오기’는 사라졌다. 그 뒤로 나를 위해 글을 써왔다. 내면을 성찰하면서 나와 더 가까워지고 유동적인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출간 이후 글쓰기와 책 쓰기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지독한 애정결핍’으로 바뀌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더 좋은 글을 쓰고 싶게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책을 세상으로 꺼내 놓고 받은 관심은 다음 책을 지어 올리게 하는 동기가 되어주었다. 사랑받고 싶은 만큼 좋은 글을 쓰고, 관심받은 만큼 다음 책으로 보답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이 없거나 피곤하거나 글감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변명과 자기 합리화는 내려놓아야 한다. 글을 쓰고 싶다면 쓰게 하는 동기를 찾아내야만 한다. 하찮아 보이는 것일지라도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독서는 하나의 영감 활동이다. 영감이 오길 기다리지 말고 찾아 나설 생각을 하자. 책을 붙잡고 문장에 매달리며 행간을 오가야 한다. “제발 글감을 주세요.”하고 온갖 구애를 펼치는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독서 이외 다른 영감 활동을 하는 게 좋다. 미술 관람, 음악 감상, 뮤지컬 관람, 영화 감상, 드라마 시청, 타인과의 대화, 자연과의 만남, 낯선 장소와의 조우 등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은 영감 활동에 속한다. 누구나 글이 써지지 않는 시기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나탈리 골드버그처럼 자신을 달래 가며 무언가를 써내려는 애씀이 필요하다.
그래서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제가 하는 방법이 무엇이나고요?
정해 놓은 시간엔 무조건 무식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버티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