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될 때까지
올봄과 여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바쁘게 시간이 흘렀다. 책을 출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날 이후부터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 날이 없다. 집필과 출간 과정에서 여러 번 벽에 부딪혔고 한계를 넘어섰다. 그럴 수 있었던 건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력이 빚어낸 몰입 덕분이었다.
평소에도 열정이 많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어느 때보다도 하얗게 불태우는 시기를 보냈다. 그 결과는 3달간 세 권의 초고 집필, 투고 다음 날 출간 계약, 계약 시점부터 출간까지 6주라는 시간으로 나타났다. 세 번째 초고는 2022년 6월 2일에 쓰기 시작해 완성까지 18일이 걸렸다. 4번의 퇴고와 5번의 탈고 후 이 주간의 예약 판매를 진행했다. 책은 2022년 8월 12일에 세상으로 나왔다.
예약 판매를 하는 동안 1,800부의 홍보용 가제본을 만들어 돌렸다. 이때는 정말이지 가제본 만들 시간이 부족해 하루에 한 시간 자는 것도 아까웠다.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보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작가도 홍보에 손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출간을 출산에 비유하기도 한다. 내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예약 판매를 마치고 나서야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었다. 2박 3일의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정신이 좀 차려졌다. 휴가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날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내일이 개학이라는 내용이었다. 여름방학이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르겠어서 잠시 당황하다가 아이와 종일 벼락치기로 간신히 방학 숙제를 했다. 등교할 가방을 챙겨놓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가족이 잠든 밤, 그 고요함을 뚫고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겨운 소리에 이끌려 마당으로 나갔다. 공기가 쌀쌀했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방구석에서 원고를 뜯어고치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 동안 여름이 가고 있는 줄도 몰랐다. 시골의 계절은 도시보다 약 2주 정도 빨리 오는 듯하다. 집으로 다시 들어가 얇은 긴 팔 외투를 걸치고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한쪽에 놓아둔 의자에 앉았다.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출간 과정을 거치며 쏜살같이 흘러간 나날이 한 여름밤의 꿈만 같았다.
삼 년간 글을 써오면서 가장 많이 쓴 글이 지나온 삶에 대한 아픔이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 놓은 아픔을 글로 꺼내어 놓은 첫날이 기억난다. 고통스럽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스로를 괴롭히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닌데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한심해 많이도 울었다. 그럼에도 고통을 감각하며 계속 아픈 날을 반복해 글로 써냈다.
삶에서 도려내 버리고 싶은 날을 글로 풀어내며 고통과 함께 찾아온 건 괜찮다는 다독임이었다. 그 다독임 속에서 아픔을 견디며 살아온 과거의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좋았던 날을 떠올리며 밝고 몽글몽글한 글만 쓰고 싶지는 않았다.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글로 과거의 나와 지나온 삶을 마주하다 보니 처음 느꼈던 고통스러움도 점차 옅어지다 희미해져 갔다. 신기하게도 어느 날부터는 아픔을 담담하게 쓰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처음 글을 지도해 주신 선생님께서 언젠가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그건 글쓰기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고통스러워도 반복해 아픔을 글로 마주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상흔에 가려진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글쓰기는 연고가 되어 주었다.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상처를 글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수십 번, 어떠한 장면은 백번 이상 반복해 써낸 아픈 내 삶이 책이 되었다. 세상으로 이야기를 꺼내 놓을 때 작가로서 임무와 책임을 다하고자 애썼다. 그건 누군가 나의 글로 인해 아프지 않도록 여러 번 도정해서 책에 담아내는 일이었다. 세상으로 꺼내 놓은 지금은 더는 상처와 아픔으로 점철된 글을 반복해 쓰지 않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나아가는 글쓰기로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감사한 분들 덕분에 예약 판매 300부를 달성했다. 책이 교보문고 강남점 ‘신간 에세이’ 매대 위에 겉표지가 보이게 놓였다. 독자의 평가를 기다렸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듯했다. 악평이라도 좋으니 무관심만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독자의 평가가 오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다행히도 몇 개의 평 대부분이 긍정적이었다.
한바탕 혼이 쏙 빠질 정도로 꿈을 꾸었으니 다시 내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갈 시간이었다.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어느 날 엉덩이에 쥐가 날 때까지 앉았던 컴퓨터 의자에 다시 앉았다. 한 편의 글을 쓰고 만 원을 주고 산 독서대를 펼쳐 글의 밀도를 올려줄 자료를 올려놓았다. 빨리 출간하고 싶어서 앞만 보고 달리느라 참았던 숨이 글을 쓰기도 전에 가쁘게 몰려나왔다. 한 편의 글을 쓰고 나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었다. 긴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같았다.
나의 작업실은 에어컨이 없는 주택의 가장 끄트머리 방이다. 게다가 외벽이라 겨울엔 온기가 잘 돌지 않는 곳이다. 내 몸 하나 겨우 앉을 만한 크기의 의자가 있고 책상 위엔 10년을 훌쩍 넘긴 컴퓨터가 놓여 있다. 환경이야 어떠한 들 나만의 공간이 주는 안온함이 있다. 나를 온전히 풀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이기도 하다. 크고 멋들어진 공간과 사양 좋은 새 컴퓨터를 준다고 해도 바꿀 마음은 없다.
나는 이곳에서 지난 삼 년을 보내며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갔다. 난독증으로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나로서는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수많은 시간을 들인 독서와 글쓰기는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게 해 주었고 두 발로 설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로 살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수동적인 삶이 아닌 능동적으로 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독서와 글쓰기는 나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를 새롭게 지어나가는 이 공간과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사랑하지 않을 재간은 없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이 작은 방에서 나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글쓰기를 익혔다. 몸이 적응하면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기 전에 신체가 먼저 반응한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글 쓸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면서 컴퓨터 방문을 열면 자동으로 의자에 앉게 된다. 몸으로 익힌 감각은 이렇게나 무섭다. 만약 아주 만약에, 치매에 걸려서 많은 기억을 잊는다고 해도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썼던 몸은 기억할 것 같다. 내가 쓰는 몸을 가졌다는 걸 말이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기억은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몸에 익은 활동은 아주 오랜 세월 그림자가 되어 따라다닌다. 평생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밭일을 하며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조개 까는 방법과 계절이 바뀔 때면 무엇을 심어야 하고 거둬들여야 하는지 기억하셨던 것처럼. 낯에는 보이지 않을 뿐 그림자는 늘 따라다니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몸에 익을 때까지 지속해야 한다. 글쓰기를 몸으로 익히는 방법을 소개한다. 무식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이만한 게 또 없다. 파도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의 흙을 퍼내어 꼭 물길을 찾아내고야 말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삽질을 하면 된다.
일단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한 줄이라도 쓰려고 한다. 미흡하더라도 한 편의 글을 완성하려고 온몸을 쥐어짠다. 착즙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와 가슴에서 글을 뽑아내는 것이다. 간신히 만들어낸 한 편의 글을 하루나 이틀 묵힌다. 완성하지 못했다면 시간 간격을 두거나 다음날 바로 이어서 쓴다. 글을 이어서 쓸 땐 큰 공백을 두지 않는 게 좋다. 그 이유는 공백이 클수록 문단과 문단 간의 온도 차가 나서이다.
묵힌 글을 다시 읽으며 퇴고한다. 누군가는 한두 번의 퇴고만으로도 글을 완성해 낼 수 있겠지만 이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글을 묵히고 퇴고하는 과정을 거듭해야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 하는 느낌이 들면 탈고한다. 독서 리뷰와 쓴 글을 SNS에 꼭 올린다. 누군가 눌러주는 공감 표시 하나, 누군가 달아주는 댓글 한 줄은 글쓰기의 생명줄이다. 여기에 의지하며 독서와 글쓰기를 몸으로 익혀 나가면 된다. 무식한 방법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알 때까지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