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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둘 이상의 것을 견주어 공통점이나 차이점, 우열을 살핌

by JJ

행복은 공기와 같이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한다. 단지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 행복을 잘 볼 수 없게 만드는 인간의 욕심이란 녀석은 비교라는 친구를 데리고 다니는데, 남들과 나의 상황을 비교함으로써 나의 현 상태를 인지하고 그에 따라서 본인이 우월하다고 생각되면 만족감 혹은 우월감을 주고, 본인이 많이 뒤처져 있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것을 선사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남들이 하면 나도 해야만 하는 획일적인 사회가 되었을까? 사회 분위기가 획일화를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인류의 기원 이래로 인간은 항상 끊임없이 크고 작은 비교를 하며 살아왔겠지만, 이렇게 거대하고 신속하게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은 여태껏 없었다.


비교는 사회적 주요 척도를 구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적 기능을 하지만, 그 쓰임새가 잘못 변질된다면 그로 인한 악영향으로 인해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들 가능성도 농후하다. 모든 독이 적당히 잘 사용되면 좋은 약이 되지만, 그 양을 초과하여 사용하게 되면 말 그대로 독이 되듯이, 비교라는 녀석도 그 중독성이 높아 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비교와 경쟁은 나에게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좋은 촉매제이긴 하지만 그 사용이 반복되고 심화될수록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과유불급이라고 무엇이든 너무 과하면 그 결과가 좋지 못하다. 이러한 정보의 바닷속에서 우리가 익사하지 않으려면 갖춰야 할 한 가지 덕목이 있다.


자제력: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는 힘


자제력은 우리 인간의 감성보다는 이성의 파트에서 관장하는데,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자제력이 개인 훈련 여부에 따라 더 강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미디어의 발전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수많은 정보들을 서로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절제력을 끊임없이 시험당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환경에 노출되게 된다. 개인 채널을 통하여 어떤 이는 투자 정보를 공유하여주고, 어떤 이는 자신의 재력과 아름다움을 과시하기도 하며 또 다른 이는 맛있고 비싼 음식 먹는 사진을 업로드하기도 한다. 서로 만나서 제한적으로 하던 자랑질들을 손가락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는 아주 혁신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보니, 아무리 성인군자라 할 지라도 나의 처지보다 나아 보이는 누군가의 생활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상대적 박탈감에 휘둘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비교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냥 본인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며 내 욕심의 한계를 설정하고, 그에 응당한 삶을 인정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현명한 삶의 유지 방식일 것이다. 본인이 해낼 수 있는 능력적 자질적절한 자산을 겸비하고 있다면 나의 최대치는 당연스레 높아질 것이고, 능력도 없는데 남의 것만 비교질 하며 부러워하고 박탈감을 느낀다면 나의 현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구비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비교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내가 선망하고 싶은 남의 것들을 베끼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이 자랑했던 음식점을 가보는 것에 불과할 것이고, 타인이 자랑하던 그들의 몸매를 따라서 만들기 급급할 것이다. 타인이 좋은 차를 자랑한다면, 나 역시 그들을 따라서 그 좋은 차를 사고, 동호회에 소속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남들이 행하는 방식을 따라만가는 삶을 산다면, 그 삶은 어디까지가 본인의 삶이고 어디까지가 그들의 삶인가? 아니면, 남들의 보기 좋은 인생을 흉내내기 위한 자기만족적인 삶인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을 수는 없으니, 글쓴이의 논리에 부정하시는 분들 또한 있으리라 판단된다. 하지만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여 연구한 결과, 스스로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본인의 분수를 파악하고 그 분수 안에서 본인의 역량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건설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고 본인을 평가절하하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현실을 직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혜안을 갖추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머릿속 비교질은 잠시 내려놓고 내 주변을 잠시 둘러보자. 감사하고 행복할 거리를 찾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요구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짓궂게 노는 모습
사랑하는 배우자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
더운 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나의 집
추운 날 추위를 막아주는 나의 집
집에 돌아오면 미칠 듯이 반겨주는 나의 강아지
힘들지만 삶을 연명하게 해 줄 수 있는 일터
오래되었지만 나를 위해 열심히 달려주는 자동차


나의 삶에 만족한다는 것과 타협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도 없는 상대방들 때문에 본인이 박탈감을 느낀 들 무엇이 바뀌겠는가? 나는 남을 따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획일적인 유행 몰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남들도 하니 나도 해야 한다라는 관념은 나에겐 충분히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수학적으로는 너도 나도 덤벼서 이미 경쟁이 과포화된 상태일 수도 있으니 성공 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세상이 모두 계산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예견은 수학적 방법밖에 없으니 산수를 열심히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도 뒤처질 수는 없기 때문에 시대적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남들이 많이 도전하고 있더라도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계산된다면, 두말없이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하지만 실행 여부의 판단은 항상 주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남들이 하니깐 선동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한 가지 길보다는 여러 가지 길을 알고 있는 게 낫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내가 원하는 나만의 삶과 길을, 그리고 그 길 안에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비교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비교를 나쁘게 하는 게 별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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