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부터 우울증 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무기력증이 극심해지고 생체리듬이 산산조각나고 악몽을 꾸는 등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에 약을 끊을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 학습된 중독처럼 나는 두려움과 불안에 차서 약을 챙겨먹는다.
약을 먹기 전의 상태보다 약을 복용하다가 갑자기 약을 끊은 상태가 우울증에는 오히려 더 위험하다. 약을 끊으려면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하지만 약에 의존하게 된 지금은 약을 줄이는 것도 불안감으로 인해 쉽지가 않다.
하지만 약의 궁극적인 효과는 우울에 깔려 죽을 정도로 무거워질 때 그 무게를 약간 버틸 정도로 내 마음의 고통을 둔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그친다. 우울증 약도 결국 마약이나 진통제와 비슷하다.
나는 우울증이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루에 백번 이상은 죽고 싶다는 신호를 뇌로부터 전달받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그 신호가 암세포처럼 정신에 퍼져서 천번 만번 죽고 싶다는 반복된 생각으로 그 세뇌에 완전히 빠지면 자살에도 이를 수 있는 마음의 암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우울증 약은 임시방편이며 우울을 치료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외의 방법으로 우울을 낫게 했다는 운동이나 산책, 사람과의 교류, 활동은 잠시 나를 우울증 환자가 아닌 척 애써 밝게 지내게 만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더 강한 반동의 우울이 나를 덮치고는 했다.
치료의 목적이 아닌 우울의 무게를 덜기 위한 일단의 독백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