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
입사한 지 여덟 달 째다. M책임님이 시키는 일이면 '이 일은 도대체 왜 하는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며 일의 방향성을 인지했으며, 다른 팀의 사람이 제품에 대해 물어볼 때면 답변으로 궁금증을 해결시켜 주기도 했다. 그렇게 제품의 해당 분야에서 어느덧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담당자로 성장했다.
"우주님, 이 기능은 어떻게 구현되어 있나요?"
"아. 해당 알고리즘은 인증서가 필요해서 키 사용이 필수적이고, 해당 키는 여기에 설정되어 불러옵니다."
"아 감사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질문자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아는 것도 없지는 않다는 자부심이 조금씩 생겼다.
이러한 자부심은 M책임님과의 의견 대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프로젝트에 적용할 기술에 대해서 4일을 검토하여 문서를 만들었다. 검토한 문서를 읽어보신 책임님은 비판적인 한마디를 건네셨다.
"우주야, 이건 적용하면 안 되지 않을까? 다른 문서 더 읽어보고 그걸 검토하는 게 더 좋을 거야"
"아 M책임님 제가 읽어보니까, 그 문서는 RAM 쪽을 건드는 것이라 적합하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이게 맞는 거 같아요"
"아 그래?"
M책임님이 오래 근무를 하셔서 아는 것이 많지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검토한 것에 있어서는 내가 M책임님보다 더 잘 알것이라 생각하며 나의 의견을 주장했다. M책임님은 내가 검토한 문서를 다시 읽어보시더니,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일을 하셨다.
"우주야, 이 테스트 정확한 시간도 체크해야 해. 몇 ms 나오는지 알아봐."
"여기 테스트 항목에는 시간은 없는데, 시간을 체크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위 항목에서 시간을 체크 안 했으니까 여기 항목에서 하는 게 맞아. 예전 문서에도 그렇게 되어 있어."
"하지만, 그건 그 프로젝트 한에서 그렇게 테스트한 것이고 이건 다른 프로젝트니까 이렇게 테스트 결과를 내는 게 맞는 것 같은데요? 고객이 요구를 한다면 테스트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
M책임님은 이 전 경험들을 빗대어 말씀하셨다. 물론 경험들은 이슈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큰 자산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칩이나 프로젝트에서 공통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의 담당자로서 맞춤형으로 문서를 만들거나 개발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우주야, 이거 기존에 이미 메모리에 값이 쓰여 있길래, 에러가 발생하는 거 같은데 다른 영역에 값을 써봐"
"이미 그렇게 해봤어요, 그래서 안된다고 적어놓았습니다."
"아 그래? 그럼 미리 말하지 그랬어"
M책임님이 아직 나를 못 믿는다고 생각했다. 아직 신입이고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내가 검토한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빠진 것은 없는지 늘 체크하셨다. 나는 상황들이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불편했다. 나름,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서 완벽히 검토해서 문서를 작성한 것인데, 이해는 하지만 가끔씩 나를 불안해하는 M책임님이 밉기도 했다.
"우주야, 이거 값 4000으로 바꾸자."
"왜요? 이건 이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고객이 제대로 해당 부분을 이해 못 하고 4000으로 쓰라고 한 거예요. 제가 시스템을 이해하고 확인해 보니까 4040으로 하는 것이 동작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값을 4000으로 하는 게 맞아"
"이유가 뭔가요?"
"..."
나는 일을 할 때, 근거가 필요했다. 일을 할 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일의 방향성을 알고 싶었고, 동작을 바꾼다면 해당 동작이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쩌면, 나의 태도가 M책임님의 말에 반대만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근거와 함께 올바른 판단을 하고 싶었다.
이러한 태도는 주변 사람들이 듣기에는 둘의 다툼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M책임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조금 더 완벽한 제품이 탄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합리적인 근거를 찾고 서로의 입장을 묻기 시작했다. 비판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이해한 바를 공유했다. 또, 상대방이 제시한 근거가 합리적이라면 기존 이해한 것의 틀린 점을 인정하고 옳은 방향으로 이해를 이끌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의견 분쟁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나는 의견 공유라 생각했고 이를 통해서 나와 M책임님은 성장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근거를 요구하는 나의 모습을 어느덧 M책임님도 좋아하셨다. 처음과 달리 M책임님도 마음을 열고 의견 나눔의 장을 통해 자신도 나름 배우는 것이 있다며 자신의 지식을 맘껏 공유하시며 즐기셨다.